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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소희 Sep 29. 2015

엄마의 구닥다리 핸드폰

서울방문 중 나는 지하철을 오고가며 친정엄마의 구닥다리 핸드폰에 저장된 메시지를 다 지웠다. 일 년 전에 처음 핸드폰을 갖게 되었다고 자랑하던 엄마는 수신전화만 받을 뿐이어서 문자함에는 메일이 수백 통이 쌓여있었다.


 그리고 용기를 내어 지하철 옆자리에 앉아있는 남자에게 핸드폰을 들이밀며 자음과 모음을 조합하는 방법을 물어보았다. 그는 핸드폰문자를 아직도 사용할 줄 모르냐는 듯 의아한 표정을 짓더니‘ㅡ ’와 ‘ㅣ’ 그리고 ‘아래 ․’모음 3개로 글자를 만드는 법을 알려주었다. 손에 익지 않지만 손가락이 누르는 대로 이내 몇 글자가 떠듬떠듬 액정화면에 나타났다. 내게 문자사용법을 알려주던 남자는 버튼 음을 줄이라는 충고도 해주었지만 그 말을 따르진 않았다.


 하지만 그의 충고는 옳았다. 그가 내리고 난 다음에 젊은 여자가 내 옆에 앉았다. 나는 정신없이 문자 연습에 빠져 틱, 틱. 틱 자음과 모음을 눌러댔다. 내 옆에 앉았던 여자는 버럭‘시끄러워!’하며 다른 자리로 옮겨 앉았다. 무안했지만 어떻게 소리를 줄여야 하는 건지. 누군가에게 물어볼까 두리번거리다 핸드폰을 가방 안에 집어넣었다.


‘수신’‘발신’‘부재중’이라는 입력된 낱말이 영 낯설게만 느껴진다. 엄마도 그랬던 것일까? 그 말뜻을 몰라 신호가 오는 전화만 받았을 것이다.


 삭제된 문자들은 모두 광고메일이었다. 혼자 사는 노인에게 세상은 흥미가 없거나 관계할 이유가 없는 일인지도 모른다. 이따금 근처에 사는 남동생이 찾아오긴 하지만 핸드폰을 사용할 줄 모르는 엄마에게 핸드폰이 무용지물이라는 걸 헤아리지 못했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엄마에게 문자를 받는 방법과 작성하는 법을 알려주었다. 역시 무리다. 몇 번을 반복해도 엄마의 굼뜬 손동작은 엉키기만 했다. 내가 엄마 닮아서 기계치인가? 다른 건 다 잊어버려도 좋으니 문자가 오면 열어보기만이라도 하라고 학습을 끝냈다.


 기계에 길들여지지 않는 엄마는 실은 은연중에 문명을 거부하고 있었다.

 아마 스티브 잡스가 살아있다면 그는 남은 생애를 문명을 거부하는 노인을 굴복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썼을 것이다. 그의 죽음을 두고 세상은 떠들썩했지만 그도 신제품개발이라는 이유를 들어 소비를 부추기며 인간의 존재가치를 물질세계에 끌어다 놓은 인물 중 한 사람에 지나지 않는다.

 아무도 지하철에서 책을 읽지 않았다. 사람들은 저마다 스마트 폰을 들고 있었고 한시도 손을 가만두질 못했다. 죄다 문자를 보내거나 게임을 하고 있었다. 힐끔 옆자리를 훔쳐보았다. 스마트 폰으로 쫓는 영상은 저급한 쇼프로였다. 지하철은 사색하지 않는 영혼을 일깨우듯 덜컹거렸다.

 헤이, 스티브 잡스! 그대가 사는 곳에서 바라본 이 세상, 정말 맘에 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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