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사계절 중 여름과 겨울만 남았다더니 한국에 도착한 날부터 연일 무더위로 숨을 죽여야 했다. 올해는 나 혼자 현충일에 대전 현충원을 가야 했다. 다행히 대전으로 가는 하행 길에 한차례 소낙비가 쏟아지더니 먹구름이 하루 종일 그늘을 만들어주었다.
참배객이 늘어난 걸까. 전에 없이 느껴지는 인파와 차량들로 뒤엉켜 오도가도 못했다. 유족을 태운 버스가 주차장을 찾지 못해 일단 현충문 앞에서 모두 내려야 했다.
‘구암사 무료국수’라는 현수막이 눈이 띄었다. 실은 그 현수막을 본 게 올해만은 아니었다. 현충원을 찾을 때마다 같은 자리에 그 현수막이 나부꼈었다.
마침 버스가 국수 배급장소 가까이에 정차했기에 나도 용기를 내어 배식 줄에 섰다. 실은 이미 유족들에게 제공된 도시락으로 대충 점심식사를 하긴 했다. 입맛이 변한 건지, 혼자 먹어서 그런지 도시락에 담긴 닭튀김과 고등어조림은 모양만 그럴듯하고 퍽퍽해서 더는 먹을 수 없었다. 하얀 쌀밥에 무말랭이무침만 깨작거리며 먹다말았으니 여전히 속이 허전할 밖에. 국수가 떨어져 새로 삶고 있다는 말에도 나는 체면 차리지 않고 기다렸다.
5분이 지났을까. 묵은 김치를 고명으로 얹은 국수에 따뜻한 육수를 부은 그릇을 건네받았다. 국수 한 그릇으로 배를 채우니 가족끼리 바리바리 싸온 음식들을 펼쳐놓고 먹고 있는 모습에도 군침이 돌지 않았다.
비슷한 비석사이를 헤매다 장교1묘역 208묘판으로 들어서자 그제야 낯이 익다. 아버지 비석 앞에 꽂아놓은 조화가 꼴이 말이 아니다. 메르스 사태로 유족들에게 버스가 제공되지 않아 작년에는 가족들이 참배를 오지 않은 탓이다. 탈색된 조화를 버리고 새빨간 조화로 바꿔 꽂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옆의 비석의 유족들은 아직 오지 않은 모양이다. 조화는 햇빛에 탈색돼 비에 젖은 강아지 털처럼 추레했다.
일 년에 한 번 뿐인 현충일이지만 참배를 하는 건 쉬운 일은 아니다.
압박골절로 허리에 지지대를 차고 있는 여든 살이 된 친정엄마의 육체는 슬픔이었다. 공휴일이라 남동생이 집에서 쉬고 있어도 따라나서지 않으면 강요할 수 없는 일이다. 식구들 눈치를 살피며 비행기를 타고 현충원을 찾아오는 내 고집도 내년을 보장할 수 없다.
‘죽은 혼령이 내가 왔다간 걸 알 리가 없을 텐데….’
하지만 더운 열기에 땀을 뻘뻘 흘리며 국수를 삶아 무료로 국수공양을 하는 구암사를 생각하면 이런저런 핑계도 무색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