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도둑이 잡혔다
남자가 붙잡혔다. 마흔 다섯 살인 그 남자는 책 도둑이다. 그가 대구의 한 마트에 있는 서점에서 1년간 훔친 책은 총 162권. 고전문학에서 사회철학까지 장르를 넘나드는 그의 독서 벽은 절도범치고는 지적이고 고상하다.
마르케스의‘100년 동안의 고독’을 좋아하고 카잔차스키의 전집을 섭렵했다던 그가 감명 깊게 읽은 책은 조세희의‘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었다. 하지만 그가 거들떠보지 않는 책도 있었는데 그것은‘30대에 평생 일자리에 목숨을 걸어라’‘성공하는 사람들의 좋은 습관’따위의 자기계발서다. 그런 책은 트럭으로 갖다 줘도 안 읽는 다는 그의 웃음. 참으로 특이한 남자다.
모 방송 프로까지 소개가 됐던 그에게 책은 무엇이었을까. 실직하고 10년 동안 책만 읽었다는 그에게 독서는 실직이라는 현실을 잊고 싶었던 도피처였을지도. 그는 지난날에 누렸던 한 순간의 영광에 갇히고 말았다.
책 도둑은 서점을 찾아가 주인에게 용서를 구했다. 서점 주인은 자신의 행위를 뉘우치는 그에게 책을 선물했다. 그가 제일 좋아한다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그날 밤 남자는 생활정보지를 보며 취업을 위해 이력서를 썼다. 10년 만이다.
여자는 부지런했다. 전문적으로 꽃꽂이와 요리를 배워서 화사한 집안 연출은 물론 주부 능력의 끝판이라 할 수 있는 요리 실력도 수준급이었다. 집안에 들여놓은 피아노 치는 모습을 본 적은 없지만 벽에 걸린 그녀가 그린 풍경화는 그럴듯해보였다. 여자운전자가 별로 없던 시절에도 운전면허를 소지했을 정도로 그녀는 언제나 남들보다 한 걸음 앞섰다. 다들 부러워하는 그녀에게 단지 흠이라면 대학졸업장이 없다는 것.
근사한 상차림으로 지인들에게 요리솜씨를 뽐내고 전시회를 한다고 초대장을 돌려도 가슴 한 켠에 자리 잡은 학벌에 대한 열등의식은 해소되지 않았다. 시험을 쳐서 대학교를 다니지 않는 이상 학사증서를 취득할 방법은 없었다. 그렇다고 늦은 나이에 대입준비를 할 수도 없으니 그녀는 더욱더 취미생활에 집착했고 대학졸업장 대신 지적허영이 그 욕구를 차지했다.
남들처럼, 아니 남보다 더 잘나 보이고 싶은 과시욕으로 심신이 지치는 요즈음이다. 젊은이들은 젊은 대로, 나이든 사람들은 나이든 대로. 남들 다 떠나는 해외여행으로 자극받고 맛 집 소개는 넉넉지 못한 경제력을 견딜 수 없게 만든다. 시각적으로 화려해 보이는 세상에서 비교의식을 내려놓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현실이 만족스럽지 못하다면 상대적 박탈감은 더 클 수밖에.
너무 풍부해서 불행한 세상이라니. 가난했던 시절에는 아끼고 모으기만 해도 행복했다.
하지만 지금은 돈이 없어서 불행한 게 아니다. 다들 잘나 보이는데 자신만 어딘가 초라하고 부족해 보여 내심 괴롭다. 행복해지기 위해 주름살도 펴고 여기저기 기웃거려본다. 하지만 뭔가를 찾아 헤매는 물음 또한 다른 모양의 결핍이 시작될 뿐이다.
누군가의 행복을 훔치려고 하지 말고 어긋난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는 것, 그것만이 유일한 도피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