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은 가난해서 서러운 게 아니라 구원을 잃어서 슬픈 계절이다
내게 있어 겨울은 서러운 계절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우리 집 창문에서 보이는 교회 십자가 아래로 줄을 이어 매달린 전등은 유난히 화려해보였다. 북한산 계곡에서 불어오는 겨울바람이 교회 지붕으로 치닫던 그해 겨울도. 그 이듬해 겨울도.
누군가 말해주지 않아도 겨울은 언제나 춥고 외로웠다. 나이가 어려도 그쯤은 알고 있는데. 겨울을 어떻게 나야할 지 모르겠다는 엄마의 한숨소리는 나를 집밖으로 내몰았다. 겨울이 싫다는 엄마의 넋두리에 반항하듯 나는 뒷골목 전등불빛 아래서 친구들과 히히덕거리며 예수생일 전날에 있을 올나잇에 들떠있었으니.
성탄절과는 아무 상관없는 사람들이 탕자가 되어 흥청거리던 이십대의 어느 겨울 밤, 나는 가난을 감추고 카페에 앉아 장식용으로 켜진 촛불과 와인을 즐겼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바람 부는 밖으로 뛰쳐나가고만 싶었다. 겨울은 추워서 싫다던 엄마의 넋두리가 들리지 않는데도.
길거리의 나무는 얼어 죽은 사람처럼 서있었고 가만히 있어도 슬퍼지는 날이었던가. 나는 그해 겨울 내내 객기를 부리듯 짧은 스커트만 입고 다녔다. 몸이 떨려오는 것을 참으며 겨울에게 퍼렇게 얼어붙은 내 몸뚱이를 보여주고 싶었다. 하지만 겨울에게 나는 깊숙이 숨겨둔 멍든 심장만 들키고 말았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해였던가. 여름 내내 덜덜 떨려서 나는 그게 겨울인 줄 착각했었다. 아마 긴 터널을 지나고 있을 때였을 것이다. 끝도 보이지 않는 시간을 걸으며 나는 여름을 잃어버리고 겨울을 놓쳤다. 안간힘을 다해 붙들었던 것이 겨울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은 겨우 터널을 빠져나온 다음이었다.
지금 나는 겨울의 흉내만 내는 캘리포니아에 살고 있다. "그곳은 한국처럼 춥지 않아서 좋겠다"는 엄마의 전화 목소리가 그 시절로 나를 데려간다. 하얀 눈이 어울리지 않는 도시는 겨울을 그리워하게 한다.
LA의 겨울은 가난해서 서러운 게 아니라 구원을 잃어서 슬픈 계절인지도 모른다. 춥지는 않지만 이민자인 내 영혼은 아직도 수도승의 긴 외투자락처럼 바닥을 끌며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고 있다. 아벨을 죽인 가인은 죽지도 않는지 아직도 내 속에서 꿈틀거리고 물 길러 우물가에 나온 수가성 여인처럼 나는 갈증으로 목이 마르다.
겨울이라고 하기엔 봄날처럼 따스한 날에 나는 가끔씩 최면에 빠지듯 서툰 젊은 날을 떠올려본다. 아니 수도꼭지를 파열시키는 어느 해의 추운 겨울과 뼛속까지 떨리고 눈가에 그렁그렁 맺힌 눈물을 뚝뚝 흘리고만 분열의 시간들을.
하지만 차라리 그 시절의 절망이 더 나았다. 기력이 쇠잔해지는 나이가 되면 지레 겁먹고 포기만 되풀이할 뿐. 포기는 인생에 아무 의미가 없는 데…. 김경주 시집을 한 권 빼들었다. 내가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 되기 전에 차가운 의식 속으로 들어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