샛길에도 끝은 있다
나는 주로 샛길을 이용한다. 110번 고속도로와 나란히 이어진 브로드웨이 뒷길도 내가 즐겨 다니는 샛길이고 실버레이크에서 글렌데일로 넘어가는 샛길도 내가 좋아하는 좁은 길이다.
특히 내가 좋아하는 샛길은 25가와 버논 시를 가로지르는 좁다란 도로다. 그 길은 화물차가 다니는 철길 옆으로 나있다. 녹슨 철조망 너머 철길에는 고장 난 듯 보이는 화물칸이 한 대가 멈춰있고 그 맞은편에는 볼품없는 공장들이 줄지어있다. 간혹 커다란 트럭이 앞을 가로 막을 때는 추월도 못하고 그 트럭 꽁무니를 따라가야 하기에 답답할 때도 있다. 하지만 대체로 재수가 좋아서 한적한 그 길에 들어서면 달리는 건 나 혼자 뿐이다.
한적해서 황량함마저 느끼게 하는 도로에 들어서면 난 이상하게 마음이 차분해지고 깊은 상념에 빠지게 된다. 화려하지 않아서 조급함이 사라지는 것일까. 움직이지 않은 화물칸에 연민이 느껴지고 얼기설기 놓여 진 녹슨 철기구들이 내 눈길을 사로잡는다.
큰 길을 놔두고 좁다란 샛길을 더 좋아하는 것도 심리적인 이유가 있겠지만 미국에 살다보니 나도 모르게 긴장감이 쌓여가는 지 이렇게 외진 곳에 들어서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번화한 도시 뒤편에 자리 잡은 이 샛길에만 들어서면 문득, 한 가지 생각을 떠올린다. 성공이라는 단어. 아마도 그 길은 넓고 화려할 테지.
인생에 있어서 샛길은 다르다. 게다가 성공과 거리가 먼 샛길이라면 어리석은 선택이 되어버린다. 엉겁결에 나는 문학이라는 샛길에 들어서고 말았다. 운명적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분명한 것은 그 선택은 내가 했다. 그런 나를 보고 어쩌면 돈 버는 일은 그렇게 잘도 피해 가냐며 주변 사람들은 혀를 찬다. 세상 돌아가는 잣대로 본다면 그들의 눈에는 내가 인생자체가 꼬인 것으로 보일 것이다. 한국도 아닌 미국에서 한국말로 글을 쓰는 나는 명예는 둘째치고라도 소설만 써서는 전혀 생활을 할 수 없으니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은 없다.
남들은 빠르고, 넓은 길로 질주할 동안 나는 좁고 울퉁불퉁한 길을 달리고 있다. 속도를 내봤자 앞서 달리는 차가 비켜주지 않으면 그 뒤를 따라가야 한다. 그래도 내가 샛길을 즐기는 것 몇 가지 이유가 있어서다.
샛길도 달리다 보면 속도를 낼 순 없어도 속도를 늦춘 만큼 주변을 즐길 수가 있다. 앞만 보고 달리면 볼 수 없는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흐드러지게 자란 잡초더미에서 질긴 생명력을 배우고 버려진 폐품에서는 내 가치를 돌아보게 만든다.
내가 보고 싶은 세상은 백합이 아니라 제멋대로 자라는 들풀이다. 사실 그게 잡초에 불과하겠는가. 어릴 적 흔히 보았던 까마중, 달맞이꽃, 민들레는 어릴 적 흔히 보았던 잡초들인데 그중에 보라색 들국화는 우리들의 눈길을 받았다. 버려진 땅 어디에도 어김없이 자신의 생명력을 자랑하는 잡초들.
샛길은 내게 위로다. 샛길에도 끝은 있어서 곧 큰길로 이어질 거라는 걸 안다. 시간이 멈춰버린 것 같은 후미진 샛길을 지나면서 나는 다짐한다.
‘잠시 속도를 늦춰. 멈춰 서지 않으면 세상이 안 보이거든. 앞만 보고 달려가면 알 수 없다고. 사랑할 것들이 무엇인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