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주조차 예측할 수 없는 삶의 주인공, 바로 나다.
사람? 너무도 흔하고 익숙한 단어여서, 문득 궁금했었다. 국어사전을 들췄다.
생각하고 언어를 사용하며 도구를 만들어 쓰고 사회생활을 하는 고등동물이란다. 한국말을 하고 집안일을 하며 컴퓨터를 다루며 돈벌이를 하는 걸보면 나는 사전이 정의한‘사람’이 맞는 것 같긴 하다. 내가 지렁이가 아니고 사람이라니. 굉장한 일이다. 뚱딴지같지만 내가 사람이란 사실이 새삼스럽다. 나는 사람이다.
뭔가 충분치 않다. 다시 책을 뒤적였다. 화학자나 재료 공학자에 의하면 인체를 구성하는 원소는 대략 47종이며 생명 현상을 유지하는 필수 원소는 25종이라고 한다. 필수 원소에는 수소가 있겠고 산소나 탄소 따위를 말하는 것이리라. 그래서 사람이 죽으면 흙이 되는 건가보다. 화단의 흙을 만져보았다. 부슬부슬한 흙가루가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갔다. 잘난 척 할 게 아니다. 나는 흙이다.
그래도 어딘가 허전하다. 종교에서 인간이 완전해지기 위해서 신의 존재를 인정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하는 것도 일리가 있다. 47종의 원소로 구성된 내가 로스앤젤레스 거리를 활보할 때 원소들이 움직이고 있다고 생각하면 공감은 하면서도 왠지 어색하게 느껴진다. 백인할머니의 미소에 나도 손을 흔들어 미소로 답을 한다. 그 부분도 딱히 마음에 안 든다. 개도 길거리를 어슬렁거리다가 사람을 보면 꼬리를 흔들지 않는가.
낯선 남자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냄새도 색깔도 없는 수소를 보듯 무미건조하게 말이다. 멀찍이서 간을 보다가 한 줌의 말투와 두 숟가락의 겉모습을 섞어 좋아할 사람인가 내 편이 될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서로에겐 대수롭지 않은 존재로 비껴갈 테지. 선입견의 마스크를 쓰고서 다음에 인연을 맺을지 판단할 테니까. 수평적으로 연결된 사람관계는 오해가 생기기도 쉽다.
나는 엄마의 머리숱을 닮았다. 얇고 힘없는 엄마의 머리카락은 또 외할머니의 머리숱과 판박이다. 아버지의 성격을 닮은 나는 어느 할아버지의 후손일까. 혈연으로 맺은 관계는 수직으로 연결된다. 사회는 사람을 관계로 얽어매고 기업은 상품을 팔기 위해 관계를 부추긴다. 관계가 어긋나면 미움이 생기고 관계가 좋으면 살가죽을 맞대고 싶어진다. 사랑과 미움은 관계가 뿜어내는 에너지의 다른 이름이다.
타인으로 이루어진 수평의 끝은 어디일까. 평균 키가 2미터가 되지 않는 사람들의 끝에는 나와 같은 존재가 서있을 것이다. 어쩌면 지구 한 바퀴를 돌아 바로 옆 사람이 수평의 마지막 지점일 수도 있다. 내게 없어서는 안 되는 소중한 존재라면 다행이지만 마음의 불편함을 주는 사람이라면 지옥이 따로 없을 것이다.
행과 불행은 마음의 작용이 아니라 수평적 관계에 대한 심리적 반응이다. 그래서 사람은 복잡하다. 불가사의한 존재, 미스터리 그 자체다. 아마도 두 개의 세계를 동시에 포함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선한 것 같으면서도 악한 것 같고 나약한 것 같으면서도 때론 놀랍게도 초인적이다.
가끔 수직의 끝을 바라보긴 한다. 영혼이라는 피난처, 영혼은 수평적인 관계에 시달린 사람에게 존재의 본질을 확인시킨다. 자연재해가 몰아닥치면 사람처럼 처량한 존재도 없다. 하지만 태풍이 휩쓸고 간 자리에 사람은 다시 나무를 심고 뚝닥뚝닥 집을 짓는다. 고립되어 물만 먹고도 버틸 수 있고 희망을 버리지 않으면 어떤 악조건도 이겨내는 게 사람이다.
창조주조차 예측할 수 없는 삶의 주인공, 바로 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