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모하비 사막에 대해 알지 못했다
초중고시절 나는 줄곧 걸어서 등하교를 했다. 초등학교는 동네여서 버스를 탈 필요가 없었고 역촌동에 있었던 중학교는 거리는 가까운데 버스를 타려면 두 번을 갈아타야 했다. 오히려 지름길로 학교에 가는 게 더 빨랐다. 고등학교도 불광동과 붙은 대조동이어서 버스를 탈 필요가 없었다.
특히 버스를 타기엔 불편했고 걷기에도 무리가 있었던 중학교 3년은 내게 특별한 시간이었다. 몇몇 아이들은 손에 단어장을 들고 영어 단어를 외우며 걷기도 했지만 나는 그 시간 내내 공상에 빠져들었다.
내가 사는 독박골과 달리 이층집이 많았던 깔끔한 주택가는 우리 동네처럼 북적거리지 않았고 시끄러움과는 거리가 멀었다. 정적이 흐르는 골목길에 들어서면 나는 저절로 몽유병 환자가 되어 허적허적 걸었다. 이따금 피아노소리가 아련하게 들려왔다. 이런 집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그 의문은 호기심이 아니라 부러움이었다.
집에서 학교까지 40분도 족히 걸리는 그 골목길을 가로지르는 동안 나는 어느 집 딸이 되어 피아노를 뚱땅거리기도 했고 라일락꽃이 포도송이처럼 늘어진 정원에 앉아 그림을 그리는 상상 속에 빠져들기도 했다. 간혹 방해꾼을 만나기도 한다. 같은 반 친구나 동네 친구가 같이 가자고 내 이름을 부르면 달갑지 않았다.
중학생이었던 그 시절 나는 현실과 공상을 분간하지 못했을 뿐더러 그 괴리감을 감당하지 못해 남몰래 가슴앓이를 해야 했다. 몽상가에게 현실은 고통이었다. 게다가 비루한 현실은 치유 할 수 없는 열병마저 안겨주었다. 현실이 아닌 곳에서의 삶은 마냥 행복하지만 공상을 빠져나오는 순간 밀려드는 좌절감은 경험한 사람만이 알 수 있으리라. 그래서 나는 아예 소설가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종이 한 장에 그려지는 무한의 세계. 꿈과 현실을 분간 못하는 그 속에서 나는 꿈을 꾸었다가 허물고 또다시 허무맹랑한 세계를 지었다. 꿈속에서는 무엇이든지 가능했고 어떤 것이든 만들어냈다. 한계도 제한도 없고 구속도 없었다. 어차피 꿈인걸.
꿈속에서 나는 언제나 길을 떠난다. 덜컥거리는 기차를 타고 한 번도 가보지 못했던 낯선 도시에 내리고 처음 보는 사람에게 길을 묻는다. 꿈속에서 나는 겁도 없고 대담해진다. 마음이 따뜻하다고 느껴지면 쉽게 마음을 푸는 용기는 꿈이기에 가능하다.
이따금 나는 꿈을 꾸지 않은 어른들을 대한다. 그들의 빠른 걸음걸이는 빡빡하고 틈이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내일이 불안하기 때문에 오늘을 움켜쥐지 않으면 안 된다고 했다. 나처럼 꿈을 꾸기 위해 무작정 걷지도 않을뿐더러 멍 때리면 시간을 허투루 쓰는 거라고 질색했다.
사람들은 모하비 사막에 대해 알지 못했다. 그러니 내가 보았던 모래바람에 대해 이야기를 들려줄 수가 없다. 고향을 찾아온 여행객의 그리움에 인색한 그들의 무표정한 얼굴을 보면 나는 다시 꿈속으로 빠져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