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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heek Sep 13. 2021

SOHEEK_ 나의 이야기 3(1) 부

배우고자 하는 마음이 변치 않기를


이전 글에 비해 텀이 길었던 건 아마 스스로 아직 준비되지 않았음에 편히 글을 쓰지 못할까 싶어, 계속 미루고 미뤘던 거 같다. 그래도 내 얘기를 마무리 지어야 할 때라 생각되어 오늘 돼서야 글을 써 내려간다. 


전에 썼던 글 중, 라오지라는 내 친구는 외부로 시선을 돌려 문제를 발견하고, 탐구해나가며 자기를 찾아가는 친구라고 했던 적이 있다. 그와 반대로, 나는 계속해서 내부 안으로 질문을 던지고, 문제를 찾고, 이해하는 과정을 통해 나를 찾고 표현하는 사람이라 생각한다. 뭔가 나를 이런 사람이라고 확신 있게 말하는 것도 어렵다. 하지만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 시선은 항상 내 안의 중심을 찾고자 했던 거 같다. 이렇게 내면 안에 질문을 던지는 과정은 그림을 같이 그리면서 답을 찾고 이해하는 데에 더 큰 시너지 효과를 주었다. 그러기에 그림을 그릴 때만큼은 혼자서 그림을 그려야 한다. 


졸업작품을 준비하면서 나는 생각 이외로 혼자 있는 시간을 내기 어려웠다. 마지막 학기인 만큼, 그리고 중국에서 보낸 7년이라는 시간을 잘 마무리하고 싶었기에 주위 사람들과 시간을 더 보내고, 함께하고 싶었다. 이런 상황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내려면 남아있는 시간을 더 쪼갤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저녁 10시부터 새벽 1~3시는 나 혼자만이 작업실을 혼자 쓸 수 있는 시간으로 만들었다. 


나의 졸업 작품은 시간의 과정을 담아내는 것이 나의 주요 목적이다. 작품은 도안 없이 그어지는 선을 통해 하나의 형태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가진다. 또한 규칙 없이, 의도 없이 그어진 선과 색깔, 그리고 모양을 전체적인 화면 안에 하나의 형상으로 그려내는 것, 이 과정 속에는 수많은 겹침이 축적된다. 


‘겹치다’라는 키워드는 나에게 중요하다. 시간의 과정을 보여주며, 후엔 하나의 공간으로 완성이 된다. 나는 내가 살아온 시간 속에서 매 순간의 과정을 소중하게 생각하기에 모든 걸 담아내고자 하는 바람이 있다. 그러기에 과정을 잘 보여줄 수 있는 요소가 바로 ‘겹침’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불규칙 속에서 형태를 찾아나가는 것으로 내 기억과 의식 속의 형상을 발견해 나간다. 


그동안 내가 바라본 세상은 내 기억 속에 어떻게 남아 있을까.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것들은 어떻게 남아있을까. 


《FACEMAP, 时间地图》 습작 1, 160*120cm

작품으로 나의 과정을 담아내려 많이 시도했던 거 같다. 초반에는 얼굴 형태가 확실히 보여야 한다는 전제하에 선을 그었고, 겹침을 강조하고자 그렸던 작품 위를 갈아엎고 다시 그리고, 또다시 갈아엎고의 과정을 반복하며 작품을 완성하고자 했다. 하지만 이 과정의 반복 끝에는 보이지 않는 형상은 그동안 쌓아 온 나의 시간을 되돌아보기엔 너무 모호한 상태로 남아있었다. 불확실함에 더 혼란해졌었다.



《FACEMAP, 时间地图》 습작 2, 180*120cm


다시 한번 같은 방법으로 시도해보고자 했다. 하지만 애초에 내가 표현하고자 했던 관념과 이 방법은 맞지 않았던 것이다. 그동안 습관처럼 그렸던 방법을 다 내려놓고, 다시 처음부터 새로 그려보자, 나를 내려놓고 새로운 방법을 시도해보자. 


손을 놓았던 습작들은 후에 완전히 뒤바뀌었다. 어차피 탐구할 작품, 실험 삼아 내가 하고 싶은 대로 그림을 그렸다. 완성된 두 작품 모두 미대 5층 복도에 몰래 걸어 놓았는데, 학기 내내 걸려 있었다는 점, 나에게 나름 스릴이었다. (2부에서 완성작 사진이 있을 예정) 



《时间地图: 725,328,000》 #1, 220*240cm, 과정과 완성작


새로 시도한 방식은 무작위로 색을 선택하고 선을 긋고, 모양을 그리면서 형태를 찾아나가는 과정이었다. 애초에 뭐가 그려질지 모르는 상태에서 완성하는 그림은 나의 비(非) 의식과 의식의 경계선에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는 계속해서 두 사이의 관계에서 고민하고 판단을 하며 그림을 완성시켰다. 어느 순간 '아, 여기까지다'라는 생각이 들면, 붓을 내려놓았다. 그때는 나의 비(非) 의식과 의식, 이성과 감성 사이의 갈등이 종지부를 찍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매 순간 내 그림을 보면서 생각과 느낌이 달라지는 나를 보며, 어제가 다르고 오늘도 다른 게 바로 나인지 않을까 싶다. 순간을 중요시하다 보면 다채로워지는 '나'를 표현하기 위해, 그리고 쌓아지는 시간을 나타내기 위해, 그림 하나가 완성이 되면 또다시 새로운 화폭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时间地图: 725,328,000》 #2, 과정

작품을 그리는 도중에 작품 속 형태가 또다시 나를 답답하게 만들었다. 원인을 찾고 방법을 찾던 도중, 기존의 작품은 멈추고, 새로운 화면에서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번엔 바닥에 캔버스 천을 내려놓고, 내가 붓을 조절하는 힘, 습관적으로 나오는 붓 터치들을 되새기는 작업을 했다.




여전히 과정

다시 그린 그림을 통해 과거부터 지금까지 쌓아 온 나의 습관, 혹은 습관적으로 그리는 선과 얼굴 형태를 다시 떠올리고 기억했으며, 한편으로는 새로운 힘과 쓰이는 방식이 다른 붓 터치도 습득하게 되었다. 되새김과 새로 습득한 나를 통해 기존의 작품에서 새로운 화면이 완성되었다.



공용 작업실에서, 이때가 아마 새벽 두 시 넘어서였다지.



《时间地图: 725,328,000》 #2, 220*240cm




2021년 5월 중순, 《时间地图: 725,328,000》 #4, 과정


하나를 마치면 다시 새로 그림을 시작하는 과정은 계속 반복이 되었다. 아마 이번 졸업 작품을 준비하면서 쓰였던 캔버스 천은 세로 2미터, 가로 16미터는 될 것이다. 그 긴 캔버스 천 안에서 계속된 나의 내부 안의 갈등과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기까지 다양한 과정과 큰 변화가 있었지만, 모든 과거가 쌓이고, 새로운 내가 쌓여있기에 지금의 내가 있게 됐다. 다른 말로 얘기하자면 매 순간 다 다른 나이지만 그러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 나의 전체는 나로서 존재하지만 요소로서 본다면 매 순간 쌓이고 더 입체적으로 쌓여가는 과정이라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전의 나의 작품들(천천히 블로그에 기록할 예정)은 목적이 없는 상태에서 나를 찾았던 것이라면, 지금은 ‘시간을 쌓는다’라는 목적을 가지며, 주동적으로 화면을 완성하고 그 과정 속에서 나를 찾아 작품과 함께 성장하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쓰다 보니 제법 길어진 글을 발견하고 1부와 2부로 나눠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1부는 졸업작품의 과정을 얘기하고, 2부에서는 그림을 완성시키는 과정과 목적을 통해 나의 생각 정리를 얘기해보고자 한다. 

그럼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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