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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heek Sep 13. 2021

SOHEEK_ 나의 이야기 4부

계속되는 과정 안에 또 과정



기울어져 있어도 나에게는 이뻐 보인다.


본과생 졸업 전시이다 보니 여러 학생들이 한정된 공간 안에서 전시를 준비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전시 디피 날 전부터 이미 사전조사를 마친 나는, 한 달 전부터 입구 바로 옆에 위치한 자리를 원한다고 강력 어필을 했었다. 그 자리만을 고집한 이유는 내 작품이 꽤 컸기에 멀리서 봐야지만 전체적인 화면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보통은 유화 전공과 조소전공이 같이 전시하기에, 나는 개인적으로 내 작품 앞에 조각상이 배치되지 않기를 원했고, 들어가는 입구에는 조각상이 없을 줄 알았다. 근데 전시 디피 당일, 교수님한테 내 작품 앞에 조각상이 위치할 거라고 통보를 받았다. 그것도 2미터는 족히 넘을 큰 조각상 두 개가. 아무리 봐도 조각상을 제외한 벽의 크기는 내 작품을 모두 담아내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어떡할까 고민하던 찰나에 반대편 벽이 비어있는 걸 보고 교수님께 저 벽을 안 쓰면 나한테 줄 수 있냐고 물어봤다. 다행히 교수님의 ok 사인을 받았다. 이제는 두 벽에 어떻게 디피할지가 문제였다.




노란색 옷, 조각상의 작가님, 벽화과 친구


《时间地图: 725,328,000》 / 《시간 지도: 725,328,000》


총길이 합이 족히 16미터는 넘었던 내 작품은 두 벽이 생겼어도 부족했다. 심지어 조각상 뒤까지 자리를 차지해도 작품 두 개의 시야가 부딪히는 바람에 계속해서 방법을 생각해야만 했다. 이 두 개의 벽을 어떻게 활용할까, 꼭 모든 작품을 다 보여줘야 하는가, 나는 어떤 의미를 더 표현하고 전시하고 싶은가. 어떤 의미를 표현하고 싶어 하는가라는 질문은 나에게 있어 그림을 그리고 작품을 준비한다는 것 자체가 모두 시간을 쌓아간다는 과정의 의미를 가진다. '과정', 졸업전시에서 내가 보여주고자 하는 의미, 계속된 과정이고 앞으로를 나아갈 수 있는 지금의 현재를 보여주고자 했다. 그래서 계획에 없던 그동안 연필로 그렸던 스케치들을 모두 모아 전시하기로 했다.




미술관 문 닫기 전, 얼른 사진으로 담아놓았다.


그림 그릴 때 무거운 캔버스 천을 고정하기 위해 붙였던 청테이프를 다시 붙여 놓은 것, 한 작품이 완성하고 나면 또다시 새로운 작품을 그렸기에 마르지 않았던 캔버스 천을 접어 벽에 부착한 것, 돌돌 말아놓은 캔버스 천, 내 작업실에 있던 물건들, 나의 습작들, 이 모든 것들은 나의 습관, 성격 그리고 내 기억에 남아 있는 모든 시간들의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앞으로 이 작품들은 어떻게 변하고 나아갈 것인가.




입구를 들어갔을 때 보이는 전체적인 전시장


근데 또 내 작품 앞에 조소과 친구의 작품이 설치되었다. 이건 진짜 어쩔 수 없던 일, 아쉽지만 미대 전체 졸업생의 전시인 만큼 다 같이 스스로 만족하고 열정을 쏟을 수 있는 전시였기를 바랄 뿐이다.






20210606-07, 우리들의 졸업전시






《时间地图: 725,328,000》 / 《시간 지도: 725,328,000》, 나의 졸업작품들.








앞으로 쌓아 갈 시간 속에서 항상 배우고자 하는 마음가짐이 변하지를 않기를, 그리고 모든 것이 과정이며, 그 과정은 지금의 나를 보여주고, 앞으로의 나를 스스로 기대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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