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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heek Sep 15. 2021

커피 3인방


전에 썼던 이야기들은 나와 내 친구들의 작품과 활동, 그리고 전시까지 마친 것으로 이야기가 마무리되었다면, 이제부터는 소소한 이야기들을 조금씩 풀어나가려고 한다. 얼마 되지 않을 이야기들이지만, 작게나마 기억 속에 남아있는 것들이 빨리 잊히지 않게 하고자 하는 바람에 글을 써 내려간다.


초반에 졸업 작품을 준비하면서 느꼈던 ,  작업실의 공간은  없이 좁았다는 점이었다. 그때 당시 자주 지나쳐 보았던 미대의 거대한 B517 교실은 항상 비어있었길래, 나는 회화과 관리 선생님께 써도 되냐고 따로 여쭤보았다. 선생님은 지금은 어떤 교수님  분이 쓰고 계시는 중이고, 앞으로도  사용될 예정이라 사용 불가라고 했다. 아쉬운 마음에 쉽게 포기하지 못했고,  후로 나는 넓은 공간을 위해   있는 복도 벽을 찾기도 했고, 바닥에서 그림을 그려보기도 했다. 하지만 사람들이 자주 지나다닌다는 것과, 저녁이 되면 어두워진다는  단점이 있어서 다시 방법을 찾아야 했다. 


어쩌다 지도 교수님께 더 큰 그림을 그려야 되는데 개인 작업실은 공간이 부족하다, 큰 벽만 있으면 되는데 학교에서는 제공할 수 있는 공간이 없다고 했다 등등 구구절절 얘기를 드린 날이었다. 와, 얘기를 조용히 들으시던 교수님은 지금 자기 교무실은 아무도 쓰지 않는다고 괜찮다면 써도 된다고 했다. 대신 거의 일 년 동안 아무도 쓰지 않았고, 석사생들의 그림과 물건들이 가득하니 그것을 다 정리해야만 남는 공간을 쓸 수 있을 거라고 했다. 이런 천사 같은 분이 다 있을까. 전부터 본인의 교무실을 안 쓰시고 석사생들한테 제공해 주신 분이라고 들었다. 세상에, 이런 분을 만난 건 행운이었다.


교무실은 등록된 카드로 찍어야지만 문이 열리기에, 그날 바로 나와 라오지 그리고 또 다른 친구 딩딩의 학생카드를 등록해서 교무실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 셋은 큰 공간이 생겼다는 설렘으로 교무실에 쌓여있던 작품과 물건들을 치우고, 바닥을 쓸고 닦으며 서로가 필요한 공간을 나누었다. 나는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완전한 벽 한 면을, 라오지는 아늑한 느낌을 줄 수 있는 코너 한 부분을, 딩딩은 수많은 손 석고상을 만들고 올려놓을 수 있는 기다란 책상을. 이번 학기 동안 우리 셋의 인연은 같은 지도 교수님으로 인해 이루어졌으며, 이 인연은 한 공간 안에서 같이 대화를 나누고 시간을 보내며 자연스럽게 흡수되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라오지

2021.03.26
2021.04.02






딩딩

2021.05.10






짜오시

2021.05.10

이번 글 제목을 커피 삼인방이라고 정한 이유가 있다. 지도 교수님과 문자를 주고받을 때 '커피'이모티콘을 자주 보내셨다. 우리 셋은 그걸 알기에 교수님을 포함한 단톡방을 만들 때도 방 이름을 '커피' 이모티콘으로 했었다. 나에게 있어 교수님이 보내는 커피 이모티콘은 뭔가 여유를 주면서 언제든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이 있다는 뜻인 거 같았다. 정말 한 공간 안에서 창작하고 서로 도와주며 대화를 많이 나누었던 건 사실이다.





2021.05.04

서로가 준비하는 작업을 얘기하며 이해하고, 경험을 해 볼 수 있었던 그 시간들에 감사함을 느끼며 다시 또 그런 시간들이 올 수 있기를 바란다.





2021.06.05


우리들이 애용했던 사다리






이 교무실은 몇십 년 동안 얼마나 많은 학생들을 품고 내보냈을까. 그동안 교수님은 몇십 년 동안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그 학생들과 대화를 나누며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셨을까. 알고 보니 우리 지도 교수님은 학교에서 20년에 가까운 시간을 계속해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보내오셨다. 그 많은 세월 속에서 자신이 내주었던 공간에 얼마나 다양한 학생들이 각자의 생각과 가치관을 고민하고 찾으며 표현하려는 과정을 보셨을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교수님 교무실이라는 공간은 계속해서 사람들을 받고 보내기를 반복하며, 그 에너지를 채우고 퍼지기를 반복하며, 앞으로 또 얼마나 다양한 에너지들이 오고 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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