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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heek Sep 20. 2021

베이징 변두리 생활 1부

단순한 여유


졸업을 마친 뒤, 나는 비자 만기일에 맞춰 최대한 오래 베이징에 남아있고 싶었다. 딱 비자가 끝나기 삼일 전 날짜에 비행기 표를 구했고, 앞으로 더 알아볼 건 그동안 머물 장소였다. 학교에서는 이미 졸업생들한테 기숙사를 비우라고 했기에, 방을 비우고 2주 동안 머물 장소를 알아봐야 했다. 원래는 귤과 함께 중국 여행을 하고 바로 한국으로 넘어갈까 계획도 했었지만, 이것저것 일을 마무리하다 보니 여행 계획은 무산되었다.


때마침 라오지와 디아오쒜도 잠시 동안 베이징에 남아있을 생각이기에 우리는 같이 머물 장소를 알아보기로 했다. 하지만 너무 바빴던 나머지 우리는 미쳐 방을 알아보지 못했다. 어쩌지 싶었던 그때 우리와 가깝게 지내시던 교수님이 우리의 사정을 아시고는 자기의 작업실에서 머물라고 하셨다. 잠시 동안 쓰고 있지 않았던 집이기에 정리와 청소를 조금만 한다면 큰 문제가 없을 거라 했다. 이런 행운이 갑자기 또 찾아왔다.



2021.07.01


2021.07.01

베이징 변두리에 위치한 교수님의 작업실 주위에는 주거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고, 가까운 곳에 바로 넓은 숲길이 있어 한적하고 아늑했다. 밤에 바람이 불면 나뭇잎이 바람에 스치는 소리를 아직도 기억한다. 신기한 구조였던 이곳은 두 개로 크게 나누어져 있었다. 한쪽은 교수님의 작업실로, 다른 한쪽은 2년 전 교수님의 지도 학생이었던 벽화 전공인 선배가 살고 있었다. 문 하나로 쉽게 드나들 수 있어서 우리는 이 선배의 작업실에 자주 가서 같이 그림을 그리고, 늦은 밤까지 대화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나에게는 여전히 좋은 기억으로 선명하게 남아있는 나날들이다.



옆방 선배의 작업실에서





아기새와 디아오쒜

지금 와서 생각해도 너무 미안했던 일이다. 당시 우리는 마당에 무성히 자라난 대나무들을 가지치고 있었을 때였다. 나무 위를 살피지 않고 베었더니, 이미 베어진 가지들 사이에서 새 둥지를 발견했다. 두 마리의 아기 새들이 벌벌 몸을 떨며 숨죽이고 있었다. 얼른 어미 새에게 돌려주고 싶었지만 방법을 몰랐기에, 우리는 높은 선반 위에 둥지를 올려두어 어미 새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몇 분 뒤 들려오는 큰 소리의 지저귐에 유리창 너머로 본 마당에는 돌아온 어미 새가 입에 애벌레를 문채 선반으로는 내려오지 못하고 그 주위에만 서성거렸다. 그렇게 한두 시간쯤 집 마당 주위를 서성거리며 큰소리로 아기 새들을 찾는 듯한 어미 새는 돌아오지 않았다. 우리는 배고플 아기 새들에게 밥을 먹이고 어미 새가 돌아오길 바라는 마음으로 둥지를 선반 위에 다시 올려놓았다. 하필 그날 밤, 큰 비가 내렸기에 아침에 먹이를 주러 확인한 둥지 안에는 이미 세상을 떠난 아기 새 두 마리뿐이었다. 우리는 밖으로 나가 숲 속에 있는 나무 한 그루 밑에 새끼들을 묻어주었다. 다음 생에는 사람들이 살지 않는 큰 자연에서 태어날 수 있기를.



2021.07.04



저녁을 먹고 여유롭게 산책을 하는 것은 또 다른 즐거움

첫 일주일 동안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물건들을 치우기 시작했고, 점심이 되면 우리는 털레털레 걸어 나가서 점심을 먹고 다시 돌아와 낮잠을 잤다. 그리고 일어나면 또다시 청소를 하고, 저녁이 되면 간단하게 차려 먹고 각자의 시간을 보내거나, 옆방 선배 작업실에 놀러 가 밤늦게까지 대화를 나누고, 밤이 되면 셋이서 같이 씻으며 잘 준비를 했다. 일주일 동안 큰 변화 없이 작업실을 꾸리며 느리게 시간을 보낸다는 여유, 정말 바쁘게 졸업을 마친 우리에게 선사받은 상과 같았다.



주위에 옥수수밭이 가득이었던 베이징 변두리


벌써 너의 에너지가 그립다, 디아오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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