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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런콩

지난 건강검진 결과는 비만이었다. 나는 원래 정상, 아니면 살짝 더 나가는 지극히 평범한 몸의 소유자였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살이 찌기 시작했다. 20대 중반이었을 테다. 당시의 나는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아르바이트 자리를 전전하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빵집에서 일하게 되었는데, 그곳은 프랑스산 밀가루를 사용한다는 ‘건강’ 콘셉트의 빵집이었다. 당시는 코로나19가 터지기 전이라 손님들에게 만든 빵을 조금씩 잘라 시식해볼 수 있도록 하였다. 그 보드라운 빵을 잘라 입에 넣으면 취업 스트레스 같은 건 잠시 잊을 수 있었다. 나중에는 거의 중독 수준이 되어 내가 맛보기 위해 시식 빵을 썰고 있었다. 몸집은 순식간에 불어났다.


어느 날이었다. 면접 정장을 입어보려고 치마를 올리는데 엉덩이에서 턱 걸리는 것이었다. 아무리 힘을 주어도 치마는 올라가지 않았다. ‘어떡하지, 정장이라곤 이것 하나뿐인데.’ 그다음 날부터 나는 무작정 굶기 시작했다. 미숫가루 같은 것을 물에 타 먹는 게 끼니의 전부였다. 밥을 먹으면 그대로 살이 될 것 같았다. 취업 시즌이라 시간적인 여유도 없었다. 그렇게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아 십 킬로 정도를 뺐다. 아직도 기억나는 건 모 회사 필기시험이 끝나고 친구들과 맥도날드에 갔던 일이다. 거기서 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을 시킨 채 아이들이 햄버거 세트 먹는 것을 그저 바라보고만 있었다. 다행히 면접 때 정장은 꼭 맞았고 나는 무사히 입사할 수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다음부터였다. 영원히 미숫가루만 먹고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먹는 대로 살이 쪘고 나는 또 굶었다. 그렇게 빠지고 찌기를 반복했다. 처음에는 십 킬로가 쑤욱 빠지던 것이 다음 다이어트 때는 팔 킬로 그다음에는 더 적게 빠졌다. 먹는 것에 대한 집착도 심해졌다. 음식물을 한 번 입에 대면 주체할 수 없을 만큼 입에 무언가를 집어넣고 싶어졌다. 순간의 충동을 억제할 수가 없었다. 나는 점점 피폐해져 갔다.


다이어트에 대한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을 때는 연예인 다이어트라 불리는 한 업체를 찾아갔다. 원하는 만큼 살을 빼준다는 소리에 시원하게 카드를 긁었다. 천만 원이 넘는 돈이었다. 예상했던 것보다 살은 빠지지 않았다. 센터에서는 들어갈 때와 나올 때 인바디를 재게 했다. 거의 헐벗다시피 하여 무게를 잴 때마다 내가 정육점에 있는 돼지나 소가 된 기분이었다. 온몸을 감싸고 있는 체지방은 비계덩어리일 뿐이었다. 효과는 꽤 있었지만, 관리 기간이 끝나고 어김없이 요요는 찾아왔다. 그때 아침저녁으로 몸무게를 재던 습관이 여전히 남아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체중계에 올라간다.


‘이런 몸뚱아리로 사느니 차라리 안 사는 게 나아.’라는 생각을 끊임없이 했다. 몸에 대한 생각은 잊어버리고 있다가도 불현듯 찾아왔다. 몸이 뭐라고. 보이는 게 뭐라고 나는 그렇게 나를 갉아먹고 있었던 걸까. 어릴 때부터 우리는 각종 매체에서 “비만은 만병의 근원.”이라는 말을 듣고 자란다. 티브이에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타인의 몸을 평가한다. 비만한 몸을 가진 사람은 나태하고 자기 관리에 실패한 것처럼 비춘다. 다이어트는 평생의 숙제다. 식욕은 참고 극복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세뇌를 당하면 음식물을 섭취할 때마다 죄의식을 느끼고 운동하지 않는 나를 한심하게 바라보게 된다. 어디에선가 본 연구 결과에 따르면 사실 마른 것보다 살짝 비만한 것이 더 건강하다고 한다. 그래도 여전히 살은 무조건 빼야 할 것, 비만한 것은 악의 근원처럼 느껴진다. 건강하지 않아도 좋으니 차라리 마르고만 싶다.


살이 찌는 원인은 너무나 다양하다. 단순 운동 부족이나 과식 때문만은 아니다. 호르몬 균형이 안 맞을 수도 있고 유전적인 요인이 있을 수도 있다. 내 맘대로 되지 않는 것이 내 몸이다. 체형을 바꾼다는 것은 어쩌면 우주의 대질서를 무너뜨려야만 가능한 것일 수도 있다. 못한 게 한심한 게 아니라 해낸 게 대단한 것이다.


작년 나의 목표는 ‘탈 다이어트’였다. 다이어트 강박에서 벗어나 보자. 그리고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받아들여 보자. 그러나 한 해가 지난 지금까지도 나는 여전히 다이어트를 하고 있다. 비만이라는 타이틀에서 벗어나고 싶기도 하고 내가 뭔가 해낼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증명해 보이고 싶기도 하다. 날씬하고 예쁜 내가 되고 싶다는 염원은 아직도 떨쳐버리기가 어렵다. 그래도 체중계와 멀어지고 ‘보이는 나’에 덜 집착하고자 노력한다. 몸에 대한 생각은 잠시 접어두고 싶다. 정말이지 그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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