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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런콩 Sep 25. 2022

물건 줄이기

새해가 되면 일기장을 산다. 속지는 매년 바뀐다. 하루에 한 장씩 채워나가는 두꺼운 것일 때도 있고 일주일 치를 한 장에 쓸 수 있는 비교적 얇은 것일 때도 있다. 나는 매일 쓰는 사람이 아니다. 그래서인지 일기는 어릴 적 숙제하듯 몰아서 쓸 때가 많다. 그렇게 꾸역꾸역 채운 일기장은 생각보다 잘 들여다보지 않게 된다. 몇 해 동안 쌓인 두꺼운 일기장 뭉치는 책장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고 보면 내게 일기장이 꼭 필요한 물건인가 싶다. 그렇다고 일기 쓰기를 포기하자니 어딘가 찜찜하다. 이번에는 일기장을 사지 않아 볼 요량으로 핸드폰에 일기 어플을 다운로드하였다. 하루의 기분을 귀여운 캐릭터로 표현할 수 있고 생각보다 자주 기록하게 되어 만족스럽다. 꼭 필요한 물건이 아니라면 더 이상 들여놓지 않으려고 한다.   

   

나는 미니멀리스트다. 엄밀히 말하자면 미니멀리스트가 되고자 하는 사람이다. 너무 많은 물건은 내게 짐처럼 느껴진다. 그 많은 것을 이고 지고 사는 것만 같다. 언젠가 집 안에 물건을 채 100개도 두지 않는 어떤 일본 사람의 영상을 본 적이 있다. 그는 작은 나무상자 하나를 서랍으로도 썼고 식탁으로도 썼다. 그 상자 하나는 높은 곳에 있는 물건을 꺼낼 때 발을 디디는 용도로 활용되기도 했다. 그의 물건 하나하나는 이렇듯 여러 용도로 사용됐다. 버릴 게 하나도 없었다. 다소 휑한 화면 속 그의 집을 보며 나도 저렇게 비워낸 삶을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내 공간에는 정말로 필요한 물건들만 남아있으면 좋겠다 싶었다.      


그때가 2019년이었다. 당시 나는 혼자 살고 있었다. 종이상자 다섯 개에 옷가지와 책을 챙겨 나왔다. 단출한 이삿짐에 오피스텔 측에서 편히 짐을 옮기라고 엘리베이터까지 깔아놓은 널빤지가 민망했던 기억이 있다. 관리사무소 아저씨는 짐이 이것뿐이냐며 황당해했다. 이삿날 집으로 들어오기로 한 가구는 침대, 식탁, 책장 하나씩이었다. 짐 정리에 채 한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나는 비워진 방 한 칸을 바라보며 이제 좀 가볍게 살아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환경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도 그즈음이었다. 그런 깨우침은 늘 예고 없이 찾아온다. 어느 날 갑자기 찬장  있는 일회용품이 버겁게 느껴졌다. 나는 화장 솜이며 화장지, 면봉 같은 일회용품들을 하나씩 정리하기 시작했다. 치실이나 치약은 유리병에 담아와 썼다. 합성세제도 버거워서 거품이 나는 열매인 소프넛을 구입했다. 빨래는 새하얗게 되진 않았지만 내게는 흰옷이 많이 없었다. 조금 누레져도 상관없었다. 주전자에 수돗물을 받아 팔팔 끓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끓인 수돗물을 유리병에 담고 또 보리차를 끓여 담아내면 마음이 가라앉았다. 저녁이 되면 가게를 마감하듯 행주를 삶았다. 뜨거운 수증기가 주방과 침실이 분리되지 않은 공간을 가득 웠지만, 오늘 하루도 충만하게 살아냈다는 보람을 느꼈다. 일회용품을 쓰지 않으려는 내 일상은 꽤 분주했다. 물티슈 대신 걸레를 빨아 바닥 먼지를 훔쳤다. 외출할 때는 텀블러를 빼놓지 않았고 혹시나 모를 비닐 공격에 대비해 작은 헝겊 주머니들을 몇 개씩 챙겼다.   

  

그것도 잠깐이었다. 사계절을 못 버티고 나는 다시 본가로 돌아왔다. 엄마는 괜히 가구를 늘려왔다며 볼멘소리를 했다. 간소한 짐이었지만 있던 짐에 들여놓으니 놓을 자리가 마땅치 않았다. 방 세 개는 이미 식구들이 각자 하나씩 차지하고 있었다. 돌아온 나는 집안 곳곳을 방랑했다. 내 공간이 필요하다는 계속된 요구에 엄마는 결국 안방을 내어주었다. 그래도 원래 있었던 가구에 손을 대는 것은 허락하지 않았다. 나는 가족들의 짐과 내 짐이 묘하게 섞인 그 방에 둥지를 틀었다.

  

집으로 돌아오니 더 이상 일회용품 사용을 지양하자는 주장은 펼칠 수가 없었다. 물건 하나를 정리하는 데도 가족들의 동의가 필요했다. 나는 비우자는 사람인 데 반해 엄마는 채우자는 사람이었다. 언젠가 쓸모가 있다며 물건을 버리지 않았다. 나는 쉽게 비워내지 못하는 엄마가 답답했다. 그러면서도 있을 리 없는 물건을 집안 한구석에서 발견하는 날이면 엄마의 말을 인정하게 됐다. 무작줄이기보다는 물건을 잘 쓰고 더 이상 쓸데없이 들여놓지 않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뭐든지 닳아질 때까지 쓰여야 한다. 요즘처럼 물건이 차고 넘치는 세상에서는 더 그렇다. 덜 써야 덜 만들어낸다. 분해도 잘되지 않을 쓰레기를 만들어내고 나면 공연히 죄책감을 느낀다. 그런데 나는 그 죄책감을 다른 사람들도 같이 느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잠시 머물다 가는 존재다. 있는 자리를 너무 많이 헤집어 놓으면 안 된다. 남겨진 사람들에게 미안할 일이다. 앞으로의 존재들에게 죄스러울 일이다.

  

옷은 꼬질꼬질하고 몇 번을 기워냈는데도 해져서 도무지 입을 수 없을 때까지 입고 싶다. 유행하는 디자인이라 새로 사서 옷장을 채우고 싶진 않다. 책은 몇 번이고 읽어도 질리지 않을 만한 것들만 남기고 싶다. 누군가 정성스럽게 만들어 낸 물건이 적당한 곳에서 충분히 또 기꺼이 쓰였으면 좋겠다. 손때가 묻고 바래져도 계속해서 쓰다듬고 싶은 물건들로만 내 공간을 채우고 싶다. 우선 채워진 것들을 한 번 더 들여다봐 주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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