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 이직 바람이 불고 있다. 업계 1위이자 경쟁사인 K항공에서 경력직 채용 공고를 낸 것이다. 2년 이상 경력의 운항관리사라면 누구든 지원할 수 있었다. 영어점수도 필수가 아니었다. 이례적인 채용이라 내 또래 직원들이 특히나 관심을 보였다. 얼마인지는 모르지만 꽤 많이 서류를 냈을 것이다.
며칠 전 저녁 식사가 끝나고 사무실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이번 채용 공고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식사를 같이한 과장님은 내게 서류를 제출했는지 물었다. “아니요.” 짧게 대답하니 자리에 같이 있던 후배가 의아하다는 듯 “왜요?”라고 되물었다. “아직 회사에 정이 남아서 그래.” 나는 농담 섞인 진심을 이야기했다. 우리는 가볍게 웃고 말았다. 늘 싫증이 났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면서도 회사에 정이 많이 들었다. K항공이 더 좋은 회사일 것이라는 건 알지만 이직하고 싶은 마음이 들진 않는다.
회사에 정이 남은 이유는 따로 있다. 이 회사는 사실 나에게 특별하다. 돌아가신 나의 아버지는 여기서 20년을 넘게 일하셨다. 아버지의 녹봉으로 먹고 입고 자고 대학도 갔다. 아버지는 화물과 관련된 일을 하셨다. 내가 이쪽 업계에 발 담그게 된 것도 아버지의 영향이었다. 고등학생이던 내게 아버지는 이런 곳이 있다며 운항학과가 있는 학교를 추천해 주셨다. 조종사가 될 것을 제안하셨지만 여의찮아 항공교통 관련 학부에 입학했다. 대학을 다니는 내내 아버지는 내가 관제사가 되기를 원하셨다. 아버지 직장 동료가 된다고는 생각지도 못하셨을 것이다. 아버지 살아계실 적에 입사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같이 회사에 다녔다면 출퇴근도 같이 할 수 있었을 텐데. 아버지 어깨에 힘을 잔뜩 실어드릴 수 있었을 텐데. 아직도 회사엔 나의 아버지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남아있다. 그 생각만 하면 어쩐지 마음이 짠해진다. 무슨 일이 생겨도 나는 이 회사가 좋을 것 같다. 그럴 수밖에 없다.
취업을 준비하는 동안 힘들었다. 나는 회사원이 되고 싶지 않았다. 부푼 꿈을 가졌다. 이 사회에서 더 인정받는 일을 하고 싶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지 않고 집에 경제활동을 하는 사람이 있었더라면 나는 아마 아직도 그 생각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예기치 않게 나는 현실에 눈을 떴다. 가족들을 먹이고 사는 일이 이렇게 버거운 일인 줄 몰랐다. 사회구성원으로서 노동의 대가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 이렇게 감사한 일인 줄 몰랐다. 그저 하루하루 살아가기에도 벅찬 게 인생인 줄 몰랐다.
동생은 조종사가 되려고 한다. 이 역시 아버지의 영향이다. 나에게 그랬듯 내 동생에게도 아버지는 하늘이었을 것이다. 그저 그가 밟은 길을 따라가면 무엇이든 괜찮을 것만 같은 그런 사람이었을 것이다. 우스갯소리로 우리는 항공사 하나 차려도 될 집안이라고 말하곤 한다. 누군가를 이렇게 사랑하고 그리워할 수 있을까. 오늘따라 그가 보고 싶어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