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속 썩이는 딸이었다. 뱃속에서부터 그랬다. 산달이 얼마 남지 않은 어느 날 의사 선생님은 아기 심장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고 했단다. 수술을 해야 하나 고민하던 찰나 다시 쿵쾅 심장 뛰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산통이 시작되고 열흘이 지나도록 아기는 나오지 않았다. 군인이었던 아빠가 천리행군을 나섰다가 되돌아오자 내가 세상에 나왔다고 한다. 그래서 엄마는 아직도 가끔씩 나에게 죄그만 게 뱃속에서부터 아빠 기다리느라 애를 먹였다며 푸념 소리를 한다.
엄마는 젊었다. 겨우 스물넷에 나를 낳았으니 말이다. 내가 조르거나 떼를 쓰면 가차 없이 매를 들었다. 살을 맞닿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어쩌다 엄마의 긴 머리카락을 쓸어내리면 하지 말라며 뿌리치곤 했다. 어린 나는 엄마가 참 쌀쌀맞고 정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친구들 사이에서 우리 엄마는 무서운 사람으로 통했다. 나도 애써 부정하진 않았다.
나의 사춘기는 유난했다. 중학생 때 반 여자아이들이 나를 따돌리기 시작했다. 남자아이들까지 가세하자 견디기가 힘들었다. 자존심이 상해 학교에서나 집에서나 울음을 꾹꾹 참았다. 몇 번은 새어 나왔다. 엄마는 왜 친구들과 잘 지내지 못하냐며 나를 나무랐다. 그까짓 거 무시하면 되지 않느냐고 쉽게 말하는 엄마가 야속했다. 미움의 화살은 엄마에게로 돌아갔다. 친구들 엄마를 찾아가 담판을 지었다는 사실은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다.
엄마는 거침이 없었다. 고등학교 시절 나는 대치동에 있는 학원에 다녔다. 우리 집은 영등포에 있었다. 학원이 끝나고 지하철을 탈 땐 퇴근 인파가 몰려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야 했다. 입구에서 사람들을 두 손으로 밀어 넣는 ‘푸시맨’이 있을 정도였다. 나는 그 학원이 싫었다. 하루는 어떤 아저씨가 내 등 뒤로 몸을 바짝 붙였다. 뒷다리에 이상한 느낌이 들어 가방을 뒤로하고 사람들 사이로 이리저리 피해보았지만 소용없었다. 몇 정거장이 지날 동안 성추행은 이어졌다. 나는 집에 와서 며칠 동안 방문을 잠그고 나오지 않았다. 결국 열쇠 수리공을 불러 문고리를 땄다. 엄마는 살아있어 다행이라며 밖에 나와 밥을 먹으라고 했다. 따뜻한 게 목구멍으로 넘어가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있었던 일을 털어놓았다. 그런데 엄마는 위로 대신 학원에 전화해 집까지의 셔틀 운행을 요구했다. 나는 며칠을 앓다가 겨우 입밖에 꺼낸 소리를 엄마는 서슴없이 했다. 나는 그게 싫었다.
엄마는 항상 내가 엄마랑 비슷하다고 했다.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대찬 엄마에 비해 나는 소심했다. 토라지면 입을 닫았다. 그럴 때면 엄마도 내게 말을 붙이지 않았다. 나는 엄마가 내게 자분자분 말을 걸어주길 바랐다. 티브이에 나오는 엄마들처럼 말이다. 드라마나 영화 속 다정한 모습과 사뭇 다른 엄마에게 나는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그럴수록 우리 사이는 서먹해졌다. 엄마는 나를 잘 모른다고 생각했고 나도 엄마를 잘 몰랐다.
아빠가 갑자기 돌아가셨다. 아빠 얼굴이 제대로 나온 사진 하나 없어서 담양에 내려가 가족들과 함께 찍은 사진을 확대해 영정사진으로 두었다. 사진 속 아빠가 낯설게 느껴졌다. 그 자리에 있어야 할 사람이 아닌 사람이 맑게 웃고 있었다. 엄마는 장례를 치르는 나흘을 내리 물 한 모금 삼키지 못했다. 나는 아빠를 어떻게 보냈는지 제대로 기억나지 않는다. 발인을 하고 채 일주일이 되지 않아 나는 아르바이트를 하러 갔다. 엄마는 아빠 지인이 소개해 준 곳에 일하러 나갔다. 십몇 년을 집에서 살림만 하던 엄마였다. 회사에서 컴퓨터를 잘 다루지 못한다며 면박을 주었다고 한다. 엄마는 안경을 새로 맞추고 집에서 타자 연습을 했다.
엄마를 다시 봐야 했다. 그래야 엄마도 나도 살 것 같았다. 엄마가 싫어해도 살을 부볐다. 여유가 되면 함께 여행을 갔다. 엄마는 “젊은것 따라다니려니 무릎이 아파 죽겠다.” 하면서도 혼자 갔다 오란 소리는 하지 않았다.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엄마는 식구 중 누군가가 나가면 들어올 때까지 거실 불을 켜 둔다. 내가 아주 어릴 때부터 그래 왔다. 그 사실을 눈치챈 건 불과 몇 달 전이다. 엄마가 건강검진을 받고 마취에서 깨어나지 못해 비틀거린 적이 있다. 걱정하는 내게 “벼루 바닥에 똥칠할 때까지 살 거니깐 걱정 말어.” 하였다. 책을 좋아하는 나를 이해하지 못하겠다면서도 오디오북은 어떻게 듣는 거냐며 묻는다. 나도 엄마가 보는 막장 드라마를 본다. 보니까 또 재미있다. 이제 엄마를 조금은 알 것 같다.
엄마에게 말하지 않은 비밀이 있다. 어릴 적 고모나 할머니가 집에 오면 늘 내게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하고 묻곤 했다. 나는 일부러 보란 듯이 아빠라고 대답했다. 그런데 그건 엄마의 질투심을 유발하기 위한 작전이었다. 엄마는 아마도 내가 거짓말을 퍽 잘한다고 할 테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이건 사실이니까. 엄마가 오래오래 건강했으면 좋겠다. 나는 이제 엄마 없이 살 수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