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빠 이야기

by 누런콩

“우리집 가훈이 바뀌었다.” 어느 날 아빠가 선언했다. 아빠가 프린트해 온 종이에는 ‘지지자불여호지자, 호지자불여락지자’라고 쓰여있었다. 아빠는 이게 공자님 말씀이라며 뜻풀이를 해주었다. 아는 것이 좋아하느니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이 즐기는 것만 못하다는 것이었다. 식탁 유리 밑 가장 잘 보이는 자리에 그 종이를 끼워 넣었다. 우리는 다 같이 밥을 먹을 때나 수다를 떨 때, 노트북을 켜놓고 작업을 할 때도 그 문언을 보았다.

빠는 그 누구보다 공자님 말씀을 잘 따르는 사람이었다. 아빠가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재밌잖아.”였다. 아침에 일어나면 아빠가 반테 안경을 쓰고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영어나 중국어 공부를 했고 “좀 쉬어야지.” 하며 바둑을 두었다. 들뜬 목소리로 “딸아 좋은 걸 발견했는데…….”하며 어학 공부 사이트나 책을 추천해 주었다. CNN 뉴스나 고전 인문학책이었다. 아빠가 보여준 것들은 그 당시 내게 터무니없이 어려운 것들이었다. 아빠가 재밌다고 해주는 이야기 중 절반 이상은 알아듣지 못해서 그냥 가만히 고개를 끄덕거리거나 ‘음’, ‘아’ 같은 감탄사만 내뱉었다. 그런데도 아빠는 “우리 딸 수준이 상당한데.” 하며 나를 추켜세웠다.


아빠는 호기심이 아주 많았다. 집에 있는 물건을 괜히 분해한 다음 수습하지 못해 고장을 내기 일쑤였다. 한 번은 화장실에 달려있던 연수기를 뜯어보고 뚜껑을 거꾸로 닫아 수리하는 아저씨를 부른 일이 있었다. 엄마가 화를 크게 내는 바람에 아빠의 ‘일단 뜯어보기’는 잠시 중단되었지만 얼마 안 가 또 들여온 정수기를 뜯어보다 엄마에게 혼이 났다.


아빠는 목소리가 컸다. ‘개그콘서트’를 돌려보며 층간소음이 걱정될 정도로 큰소리로 웃곤 했다. 우리는 거기 나오는 개그맨들을 자주 따라 했다. 한 번은 말꼬리를 비틀며 서로를 엎어 치고 매치는 코너를 보았는데, 입에 쫙쫙 감기는 것이 따라 할 맛이 났다. 우리는 길을 가다가도 서로 발을 걸고 엉덩이를 걷어차며 그들을 따라 했다. 엄마가 정신 사납다고 그만하라고 할 때까지 장난은 멈추지 않았다. 어떤 개그 코너는 지독히도 재미가 없었다. 그런데도 아빠는 자지러지게 웃었다. 그 모습이 기가 막혀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아빠는 무슨 음식이든 가리지 않고 잘 먹었다. 내가 중학생 때 우리는 중국에 살았다. 기름지고 낯선 음식이 입에 안 맞을 만도 하지만 아빠는 언제나 맛있다며 잘 먹었다. 사촌언니가 어학 공부를 한다고 우리집에 잠깐 와 있을 적 있었던 일이다. 우리는 외식으로 훠궈를 자주 먹었다. 하루는 아빠 퇴근이 늦어져 먼저 가게에 가 음식을 시키게 되었다. 다들 깨작거렸다. 음식 줄어드는 속도가 나지 않자 언니가 “이모, 이모부 없으니까 흥이 안 나요.” 했다. 꼭 그런 사람이 있다. 없으면 뭔가 허전한 사람, 함께 있으면 무얼 하든 신이 나는 사람. 아빠는 그런 사람이었다.


이애란의 ‘100세 인생’을 부르며 “못 간다고 전해라.” 하던 아빠는 반백년을 겨우 살고 우리 곁을 떠났다. 이제는 아빠 얼굴도 잘 그려내지 못한다. 흰머리가 성성한 아빠의 모습이 늘 궁금했는데 아빠는 끝끝내 보여주지 않았다. 아빠가 가고 우연히 아빠 회사 동료를 만나게 된 일이 있다. 나는 아빠가 어떤 사람이었냐고 물었다. 아빠는 의외로 조용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아저씨가 “리더는 두 가지 종류가 있잖니, 윗사람들이 좋아하는 리더와 아랫사람들이 따르는 리더. 네 아빠는 후자였다.”라고 말씀하셨다. 내가 눈물을 흘리는 바람에 더는 이야기하지 못했다.

그러고 보면 자식 세 명 중 내가 아빠를 가장 많이 닮았다. 밖에서는 조용해도 집에서는 누구보다 소란스러운 것도, 이상한 노래를 부르고 이상하게 춤을 춰 가족들을 웃기는 것까지.

내가 어릴 때 아빠는 자주 내 얼굴에 뺨을 부비곤 했다. 수염이 조금 자라 까슬까슬했다. 아빠는 그 거대한 몸으로 “누르기 한 판 할까.” 하며 나를 짓눌렀다. 나는 아빠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켁켁거렸다. 너무 귀엽거나 예쁜데 작은 것들을 그렇게 대한다는 것을 내 몸집이 커지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아빠는 엄마가 나를 가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단번에 담배를 끊었다고 한다. 나는 담배를 끊는 것이 쉬운 일인 줄 알았다.


아빠와 사는 25년 동안 행복하지 않은 날이 없었다. 아빠는 보여줄 수 있는 모든 사랑을 내게 보여주었다.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가 될 수 있을까. 아빠가 떠난 계절이다. 이번 기일에도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기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