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하루는 정오가 넘어 시작된다. 간밤엔 잠이 들 수 없다. 고등학생인 막내를 이른 아침부터 깨워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때를 놓칠까 봐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다. 일어나기 싫다는 막내를 억지로 깨우고 나면 그제야 이불을 덮는다. 내가 아무리 잔소리해 봐야 소용없다. 해를 거스르는 일이 반복되면 몸에 좋을 리 없다고, 고등학생인 동생이 아침에 못 일어나서 지각한다면 그건 그 애가 책임질 일이라고 말해 봤자다. 엄마는 외려 나에게 역정을 낸다. “너희들도 다 이렇게 키웠어.” 그 말에 나는 수그러들고 만다.
엄마는 티브이를 켜놓고 잔다. 식구들이 드나드는 거실에 잠자리를 펴기 시작한 건 집을 나갔던 큰 딸인 내가 다시 집으로 돌아오고서부터다. 엄마는 내게 안방을 내주었다. 그리 크지 않은 집에 다 큰 자식이 셋이라 남는 방이 없었다. 엄마가 자는 동안 누군가는 늘 불을 켠다. 밥을 먹거나 현관문을 나선다. 감은 눈에 불빛이 거슬리고 들리는 생활 소음에 그 자리가 편할 리 없겠지만 엄마는 상관없다고 말한다. “너희들 감시할 수 있으니 오히려 좋아.” 우스갯소리를 하고 만다.
둘째는 ‘삼식이’이다. 끼니마다 방에서 나와 배가 고프다고 말한다. 엄마는 귀찮다면서도 몸을 일으켜 쌀을 씻는다. 동생 밥을 챙겨주고 집안을 둘러보면 어딘가 지저분해 보인다. 먼지를 훔치고 청소기를 돌린다. 쌓인 빨래를 세탁기에 집어넣기도 한다. 그러고 보면 엄마의 시간은 식구들을 위한 시간으로 채워진다. 나는 괜히 미안해져 설거지를 대신한다. 엄마는 그런 내게 고맙다며 역시 큰 딸내미밖에 없다고 한다.
엄마가 다시 잠이 들기 전까지는 티브이를 본다. 주로 보는 건 드라마다. 특히 저녁 시간대엔 막장 드라마가 많아 걱정이다. 엄마 정서에 좋지 않을 것 같다. 그런데 엄마는 드라마에 그다지 집중하고 있는 것 같지 않다. 같이 드라마를 보다가 지난 내용을 물으면 “나도 몰라.” 하고 만다. 엄마는 티브이와 핸드폰 화면을 동시에 틀어놓고 고개를 왔다 갔다 한다. 요즘엔 그런 엄마 모습이 웃겨서 “엄마, 그렇게 보면 내용은 다 기억나?” 묻는다. 그러면 엄마는 “아니, 그냥 남자 주인공 얼굴 보려고 보는 거야.” 대답한다. 우리는 덕분에 한바탕 웃는다.
엄마는 새로운 음식을 좋아하는 편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새로운 음식을 주문하는 걸 좋아한다. 그런데 엄마 입맛은 까다로워서 먹던 것만 먹는다. 입사하고 얼마 되지 않아 엄마, 막내 그리고 나 셋이서 일본 여행을 간 적이 있다. 유명하다는 어느 우동집에 갔는데 엄마가 뜬금없이 카레 우동을 주문했다. 우리는 맑은 국물에 담긴 기본 우동을 시켰다. 엄마는 맛이 독특했던 그 카레 우동을 다 먹지도 못하고 우리 것을 뺏어 먹는 것으로 배를 채웠다. 그 일이 있은 지 몇 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우리는 “엄마 이상한 거 시키기 좋아하잖아.” 하며 엄마를 놀리곤 한다.
엄마가 편해지기 시작한 건 얼마 되지 않았다. 무서워 다가갈 수 없을 만큼 곧아 보이던 엄마도 세월 앞엔 장사 없다는 듯 물렁 해졌다. 이제야 엄마에게 장난을 걸기도 하고 엄마를 놀리기도 한다. 우리 엄마 별명은 ‘얼음 공주’였다. 별명이라고 하기엔 나만이 엄마를 그렇게 불렀지만. 엄마의 인상은 어딘가 차가웠다. 눈매도 매서운데 눈빛마저 날카로웠다. 내가 사춘기였을 때 나는 엄마를 생채기 내기 위해 엄마 인상을 지적하곤 했다. 언젠가 엄마는 나에게 “나도 처녀 적엔 이렇게 우악스럽게 생기지 않았어. 너처럼 사람들한테 세상 물정 몰라 보인다는 말을 얼마나 많이 들었다고.” 한탄하듯 말한 적이 있다. 살면서 겪은 풍파가 엄마의 인상마저 바꿔놓은 것이 아닐까, 나는 씁쓸해졌다.
나의 하루는 나를 위한 시간으로 가득 차 있다. 나는 나를 위하여 일하고, 나를 위하여 운동한다. 나를 위하여 책을 읽기도, 글을 쓰기도 한다. 엄마의 하루가 엄마만을 위한 시간으로 채워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어떤 땐 나도 모르게 엄마에게 잔소리를 늘어놓는다. “엄마, 엄마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아.” 마음과는 달리 퉁명스럽게 말이 튀어나온다. “그런 거 없어.” 풀이 죽은 엄마의 대답에 나는 또 서글퍼진다.
엄마에겐 새끼들 좋은 옷 입히고 좋은 음식 먹이는 게 낙이었을 테다. 잘 키워야 한다는 생각에 하루하루 버텨온 게 인생이었을 것이다. 나는 그런 엄마의 삶을 내 멋대로 재단하고 있는 게 아닐까. 내게 그럴 자격이 있을까. 그래서 차라리 엄마의 하루에 작은 기쁨이 되려 한다. 오늘은 엄마가 좋아하는 간식거리를 하나 손에 들고 집에 들어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