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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런콩 Aug 17. 2023

안양천을 달리다

안양천을 달리기 시작했다. 어젯밤엔 컵라면에 닭가슴살, 디저트까지 야무지게 먹었다. 꽤 오랫동안 단식을 하지 않은 것 같아 회사에서 저녁을 걸렀는데 집에 오니 배가 고팠다. 침대에 누워 잠을 청했다. 음식 생각이 떠나질 않아 결국엔 몸을 일으켰다. 닭발에 계란찜을 주문해 먹고 싶었지만 애써 참고 냉장고를 열었다. 먹을만한 거라곤 닭가슴살뿐이었다. 두 팩을 뜯기엔 양심에 찔려 한 팩만 뜯었다. 그러다 보니 허기가 채워지질 않았다. 이것저것 손을 댔다. 컵라면에 치즈, 곤약 젤리까지 거한 한 끼를 먹은 것이다. 속죄하는 마음으로 오늘 아침 일어나자마자 옷을 갈아입었다. 정신이 완전히 깨지 않았을 때 집을 나서야 운동하기가 덜 힘들다. 운동하러 가기 싫다는 생각으로 집 나서기를 미루다 보면 어느새 밤이 된다. 캄캄해지면 무섭다는 핑계로 또 나가지 않는다. 의도치 않게 나는 공복 운동을 하고 있다.      

오늘은 뛰고 싶었다. 좀 걷다가 뛰려고 했는데 안양천에 도착하자마자 뛰기 시작했다. 두 번 숨을 들이마시고 다시 두 번 숨을 내뱉었다. 언젠가 배운 마라톤 호흡법이었다. 끽해야 2~300m를 뛸 줄 알았는데 오목교에 닿을 때까지 뛰었다. 신정교에서 오목교까지는 약 900m 정도 되니 적어도 7~800m는 한 번에 뛴 셈이다. 오목교를 넘어서는 걷다가 뛰었다. 돌아오는 길에도 뛰다가 걸었다. 의도치 않은 인터벌 운동을 하고 나서 집에 돌아와 보니 콧등과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혀 있었다. 해결해야 하는 큰 숙제를 끝낸 기분이었다.     

 

달리기에 빠졌던 적이 있었다. 내가 도는 코스로 안양천을 돌면 6~7km 정도 된다. 커다란 타원을 그리듯 도는데 쭉 걷다가 반환점을 넘어서부터는 쉬지 않고 뛰었다. 적어도 3~4km는 뛴 셈이다. 뛰다 보면 더 이상 뛰지 못할 것 같은 순간이 찾아온다. 그 순간을 넘어서면 그냥 뛰어진다. 임계점을 넘는 것이다. 그렇게 매일 달리기를 했다. 몸이 가벼워지고 한층 건강해진 기분이었다. 거울 속 시뻘겋게 달아오른 내 모습을 보는 게 좋았다. 몸매 관리보다는 달리기 그 자체의 매력에 빠져있었다.      


나는 종종 달렸다. 홍콩과 한국에 오가던 시절이라 바다를 건너서도 나는 달렸다. 홍콩 싸이완호에 있던 우리 아파트 이름은 ‘레쎄종’이었다. 강변에 있던 아파트라 나가서 뛰기 좋았다. 달리는 사람이 많아 그런지 달리기 좋게 길도 닦아 놓았다. 그 길을 따라 끝까지 갔다 오면 4km는 될 것 같았다. 안양천만큼 긴 코스는 아니었지만 만족스러웠다. 홍콩은 덥고 습했다. 어떤 때는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그래도 나는 밤마다 나갔고 강변을 뛰며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홍콩을 떠나게 될 때는 ‘작은 이별일 줄 알았는데 큰 이별이었다’라고 생각했다. 아쉬움에 나는 내가 달리던 강변 사진을 찍어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그 순간을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었다.      


한국에 다시 돌아와서 나는 오랫동안 달리지 않았다. 병원에 입원하기도 했고, 취업을 준비하면서 몸을 움직이는 것에서 멀어지기도 했다. 달리지 않는 시간이 길어지자 체력도 뚝뚝 떨어졌다. 이제는 조금만 달려도 숨을 헥헥거린다. 크로스핏을 하다 보면 길게는 400m까지 달려야 할 때가 있다. 처음에는 의욕에 넘쳐 뛰다가도 몇 라운드가 지나면 뛰지 못해 걷는다. 달리기만 나오면 그날의 운동을 끝마치지 못한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달리기 연습을 해야지’ 다짐하다가도 금세 마음을 바꾼다. 막상 안양천에 가더라도 달리기보단 걷는 것을 택한다. 달리는 것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생긴 것 같다. 그냥 뛰면 되는데, 힘들면 걷다가 또 뛰고 싶을 때 다시 뛰면 되는 건데. 마음처럼 쉽지 않다. 그래서인지 오늘 달리고 나선 간만에 스스로가 자랑스러웠다. 뛰다가 걷다가 또 포기하지 않고 뛰다 보면 언젠가는 처음부터 끝까지 달릴 수 있는 체력을 가지게 되는 날이 올 것이다. 그때 나는 겁 없이 달릴 것이다. 달리는 사람이 되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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