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은 대체공휴일이었다. 물론, 나는 그날도 회사에 갔다. 9시간을 무사히 버티고 퇴근해야지, 출근하자마자 퇴근 생각부터 했다. 요즘엔 '하루에 두 끼만 먹기'에 도전 중이라 아침을 굶었다. 새벽 6시부터 시작된 근무는 순탄하게 흘러갔다. 9시쯤 되자 고비가 찾아왔다. 뱃고동 소리가 천둥소리로 둔갑했다. 꼬르륵꼬르륵 우르르 쾅쾅. 옆에 앉아있는 대리님이 그 소리를 들었을까 봐 두리번거렸다. 아마 들었을 것이다. 민망해서 자리에서 일어나 물을 뜨러 갔다. 벌컥벌컥 찬물을 마시니 화장실이 가고 싶었다. 왔다 갔다 하다 보니 어느새 10시, 한 시간만 버티면 슬슬 밥 먹자는 소리가 나올 터였다. '빨리 가자고 했으면…'생각하고 있는데 광주에서 뇌우가 친다고 했다. Shit, 불길한 예감은 비껴가지 않았다. 광주에 내린 항공기가 번개를 맞아 점검해야 한다고 했다. 밥 먹으러 가긴 글렀군, 포기하고 있던 찰나 '점검 결과 이상 없음' 소견을 받았다. 고대하던 밥시간이었는데 메뉴가 영 엉망이었다. 나는 떡국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데 떡국이 나왔다. 회사에서 주는 미트볼도 맛이 없다. 마늘쫑 무침과 깍두기로 대충 배를 채우고 퇴근 준비를 했다.
매일이 짜릿한 크로스핏
- 5월 29일
한동안 운동을 쉬었다. 한 5일쯤 쉰 것 같다. 계속된 밥 약속에 부처님 오신 날이라 체육관이 쉰 탓이다. 슬슬 몸이 찌뿌둥해지기 시작했다. '대체공휴일이라 오늘도 쉬면 어떡하지?'하고 우리 체육관 카페에 들어갔는데 오늘은 한다고 했다. 나이스. 집에 들어오자마자 운동복으로 갈아입었다. 몸에 딱 달라붙는 쫄쫄이 운동복을 입고 침대에 엎드려 이북리더기를 켰다. 하루가 고단했는지 글자가 눈에서 튕겨 나갔다. '5분만 눈 감고 있자' 하고선 한 시간 동안 잠들었다. 다행히 운동 갈 시간보다 늦게 일어나진 않아서 채비를 하고 밖으로 나갔다.
오늘은 유산소의 날이었다. 버피 10개, 풀업 10개, 푸쉬업 10개, 스쿼트 10개를 20분 동안 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하는 게 오늘의 WOD였다. '난 뒤졌다' 속으로 생각하면서 문래역 근처에 있는 크로스핏 박스로 갔다. 수업이 시작하는 시간에 겨우 맞춰 도착해서 급하게 신발을 갈아 신었다. 공휴일이라 그런지 사람이 많았다. 그 좁은 공간에 20명 정도가 있었다. 서로 부딪히지 않게 몸을 풀어주고 본격적인 운동으로 들어갔다. 밴드를 끼고 풀업을 하려고 했는데 발이 잘 닿지 않았다. 코치님이 그렇게 시간을 잡아먹으면 안 된다면서 오늘은 그냥 점프해서 내려오는 방식으로 풀업 연습을 하라고 했다. '개꿀'이라고 생각했는데 꿀이 아니었다. 몸을 버티면서 내려오려고 하니 그것도 힘들었다. 푸쉬업도 무릎을 대지 않고 깊숙이 내려가려고 하니 죽을 맛이었다. 버피야 말해 뭐 해. 스쿼트가 그나마 가장 쉬웠다. 헥헥거리며 20분을 채웠는데 그중 5분은 숨 돌리느라 날려먹은 것 같다.
- 5월 30일
오늘의 WOD는 데드리프트 4개, 덤벨 프레스 8개, 클린 4개였다. 총 8라운드. 데드리프트와 클린을 같은 무게로 해야 해서 데드리프트는 수월하게 할 것 같았다. 어깨까지 바벨을 올려야 하는 클린은 운동을 쉬기 전에도 기껏해야 85파운드밖에 들지 못했다. 다시 시작하니 무게를 확 낮출 수밖에 없었다. 데드리프트 45파운드는 '좀 심한데?' 싶어도 더 높은 무게로 클린을 할 순 없기에 45파운드로 무게를 맞췄다. 코치님은 "오늘 WOD를 끝내지 못하면 문제는 둘 중 하나예요, 내가 너무 무거운 무게로 운동했거나 아니면 운동 중간에 너무 많이 쉬었거나" 하셨다. 그만큼 할만한 WOD라는 말이겠지만, 느림보인 나는 운동을 다 끝내지 못할까 봐 겁을 먹었다. 중간에 쉬는 시간을 많이 가지는 걸 들키기는 싫었다.
본격적인 운동이 시작됐다. 데드리프트 4개는 역시나 수월했다. 8킬로짜리 덤벨 두 개를 양손에 들고 누워서 팔을 올리는 덤벨 프레스도 할만했다. 역시 문제는 클린이었다. 스쿼트 클린이라 바벨을 어깨에 올리면서 스쿼트 자세를 취해주어야 했는데 허벅지가 터질 것 같았다. 일어나지 않고 주저앉아버리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그렇게 몇 세트를 반복하니 금세 6라운드가 지났다. 마지막 7,8 라운드는 고비였다. 코치님 눈을 속여 개수를 빼버리고 싶었다. 마지막 라운드는 안 하고 8라운드까지 다 했다고 뻥치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운동은 결국 나 자신과의 싸움이다. '이대로 포기하면 죽도 밥도 안 되는 거야' 속으로 되뇌면서 마지막 클린 한 개를 마쳤다. 타이머를 보니 딱 16분이었다. 다행히 시간 안에 WOD를 마쳤다.
쉴 틈이 없었다. 빨리 집에 가서 출근 준비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물도 안 마시고 기구를 정리했다. 심장은 튀어나올 것 같고 팔이며 얼굴이며 벌게져 있는 상태로 뛰다시피 걸었다. 샤워를 하는데 팔이 잘 안 올라갔다. 근육통이 세게 왔다. 회사에서 팔을 들어야 할 때마다 아이구구, 앓는 소리를 했다.
- 5월 31일
오늘은 런지 20개와 토투바 20개를 4라운드 했다. 토투바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동작이기도 해서 기대가 됐다. 철봉에 매달려 발끝을 철봉까지 들어 올리는 토투바를 사실은 하지 못한다. 그래서 그전 단계인 매달려 무릎 올리기까지만 한다. 처음 크로스핏을 시작했을 땐 단 1초도 철봉에 매달려있지 못했다. 지금은 1분 가까이 그냥 매달려있을 수 있다. 철봉에 매달릴 수 있다는 사실이 좋아서 토투바를 좋아한다. 바벨을 어깨 뒤에 올리고 하는 런지는 죽을 맛이었지만 20개만 참으면 20개의 행복이 기다리고 있었다. 크로스핏은 오늘도 짜릿했다. 무슨 정신으로 집까지 걸어왔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밀리그램을 지우다
핸드폰에 '밀리그램'이라는 앱이 깔려있었다. 먹는 것과 체중을 기록할 수 있는 앱이다. 할 일도 체크할 수 있어서 나는 크로스핏과 하루 두 끼 먹기를 매일 할 일로 설정해 놨다. 그런데 문득 '운동도 내가 즐기면서 하는 거지 강박적으로 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먹는 것도 마찬가지다. 배가 고프면 먹는 거고 배가 안 고프면 끼니를 거를 수도 있는 거지 그걸 강박적으로 기록할 필요가 있을까? 식탐이 생기지는 않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앱을 지워버렸다. 나는 건강한 몸을 가지려고 운동을 하는 것이다. 건강한 몸을 만들려고 식단을 하는 것이지 내 몸을 옥죄려고 끼니를 제한하는 게 아니다. 몸무게야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것인데 체중을 일일이 기록하면서 빠지면 기뻐하고 늘면 낙담하고 싶진 않다. 내 몸을 재고 속박하는 것에 질려버렸다. 나는 조금 더 나은 내가 되고 싶어서 앱을 지웠다. 내 꼴리는 대로 할 것이다. 신나게 운동하고 먹고 싶으면 먹고, 먹고 싶지 않으면 안 먹을 것이다. 체중계도 조만간 갖다 버려버려야겠다.
몸에 대한 생각이 바뀌고 있다. 좋은 신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