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친애하는 비건 친구들에게』를 읽고
『나의 친애하는 비건 친구들에게』라는 책을 읽었다. 책 제목부터 ‘비건’을 언급하고 있는 만큼 비거니즘을 주로 다룰 줄 알았는데 내용은 그렇지 않았다. 그보다는 논비건과 비건의 관계, 육식주의를 대하는 방법 등 비건이 살아가는 법을 다룬 일종의 안내서였다. 아주 안 읽히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썩 흥미롭지도 않았다. 어쩌면 당연한 소리였다. 상대방을 휘두르려 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둥 뻔한 소리가 주를 이뤘다. 300페이지가 조금 넘는 책을 다 읽는 데까지 일주일이 걸린 것 같다. 오늘 내가 3시간짜리 비행기를 타지 않았고, 와이파이 연결이 가능한 환경 속에 있었다면 아마 이 책을 읽는 데 시간은 더 오래 걸렸을 것이다. 며칠을 붙잡고 있어 그런지 마지막 페이지를 넘길 땐 속이 다 후련했다.
비건이 되는 일은 내 숙제와 같다. 나는 논비건이지만 육식주의자는 아니다. 동물을 먹지 않는 것엔 동의하지만 실천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이라고나 할까. 동물을 먹지 않으면 충분한 단백질을 섭취하지 못할 것만 같은 두려움이 있다. 근육이 쭉쭉 빠질 것만 같은 두려움이다. 또 비건으로 사는 일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가까운 곳에 가족이나 친구가 있을수록 더 그러하다. 나도 언젠가 가족들과의 저녁 식사 중 “동물을 먹는 일을 그만두고 싶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다지 놀랍지 않게도 가족들의 타박이 이어졌다. “단백질은 어떻게 채우려고?”, “나도 동물이 불쌍해. 하지만 동물을 먹지 않으면 우리가 먹을 수 있는 건 거의 없어” 같은 말들이었다. 어제는 친구와 이야기하다가 “비건이 되어야 할 것만 같아”라고 털어놓았더니 “이 험한 세상에 먹고 싶은 것도 맘대로 먹지 못하면 무슨 재미로 살겠니?”라는 반응이 돌아왔다. 동물을 먹지 않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어디서 기인한 것일까? 동물의 사체가 영양가 높고 맛이 좋다는 건 우리가 그 동물이 도축당하는 장면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책에서는 돼지나 소를 먹는 것을 개나 고양이를 먹는 것으로 바꾸어 생각해 보라고 말한다. 물론 그렇게 주장하는 일은 오히려 논비건의 반발심을 살 수 있기 때문에 썩 권장하지는 않지만 말이다. 비거니즘의 신념을 가지고 사는 일은 세상과 맞서 ‘싸워야’하는 일이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지난봄 광화문에 있는 정독도서관으로 피크닉을 간 적이 있다. 글쓰기 모임을 하기 위해서였다. 나는 비건이신 참석자 한 분을 위해 채식 김밥을 샀다. 그 과정에서 비건으로 사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동물의 몸이나 동물로부터 나온 것 가령 닭의 알이나 소의 젖이 들어가지 않은 음식을 파는 식당은 거의 없었다. 그나마 찾은 곳도 중국 음식집이라 포장하기가 애매했다. 생각난 건 김밥이었는데 계란과 햄을 넣지 않는 곳을 찾으려니 그것도 일이었다. 약속 시간에 늦어 억지로 들른 곳에 곤드레 김밥이 있었다. 아무래도 외국인이 많은 관광지여서 그런 듯했다. 곤드레 김밥을 찾았을 때의 그 희열은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약속 시간보다 한참이나 늦게 도서관에 도착할 수밖에 없었지만 누구도 불편하지 않은 식사였다.
책에서 그나마 위로가 되었던 건 우리는 비건마저도 완벽하게 비건으로 살 수 없는 세상에 살고 있다는 말이었다. 비건이 되고자 마음먹었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을 하면 된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육식주의에서 벗어나자고 마음먹었다. 매일 먹던 동물의 사체를 최대한 피하는 것부터 시작해야겠다. 비건에게 도움이 될만한 말도 있었다. 비건이 논비건보다 도덕적으로 우월하다고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물론 나는 비건이 더 도덕적인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 말에 완전히 공감할 수 없었지만, 그 우월감을 가지지 않으려 노력해보려고 한다. 앞으로 다가올 험난함이 눈에 보이듯 선하게 그려지는 것 같지만 더 이상 미룰 순 없다.
육식주의의 환상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동물을 먹고 싶지 않다. 생명체를 인도적으로 죽인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인간에게나 동물에게나 늙거나 병들어 죽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늙거나 병들어 죽은 동물은 먹지 않지 않나. 인도적으로 동물을 죽여 먹는다는 건 일종의 환상이다. 죄책감에서 벗어나기 위한 자기암시일 뿐이다. 영양소가 부족하지 않게 먹는 법을 연구해야겠다. 그렇게 한 발짝 한 발짝 육식주의로부터 벗어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