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나의 대모이자 엄마의 20년 지기인 사비나 이모가 집으로 놀러 왔다. 사비나 이모는 내가 살던 칭다오에 아직 살고 있다. 엄마가 막내를 가졌던 시기와 비슷하게 이모도 임신해서 두 집의 막둥이들은 나이가 비슷하다. 엄마와 이모는 “쟤들 언제 다 키우니?” 하며 넋두리하곤 한다. 코로나 동안 이모는 한국에 잘 오지 못했다. 이번엔 비자 문제 때문에 겨우 들어왔다. 이모 덕분에 엄마는 오랜만에 바깥 구경을 했다. 이모가 비자를 신청하러 영사관에 같이 가자고 했던 것이다. 엄마와 이모는 명동성당에 들른 후 시청까지 걸어갔다고 했다. 이모는 내게 우스갯소리로 “너희 엄마 우울증이야”라며 “밖에 데리고 다녀”라고 했다. 엄마의 표정이 달리 보였다. 내가 내 문제로 신경 쓰지 못한 사이 어둠의 그림자가 엄마를 잠식한 것처럼 보였다. 내가 엄마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려고 하자 엄마는 부엌으로 자리를 피했다.
이모가 칭다오로 돌아가고 다음 날 나는 홍콩에 갔다. 엄마에게 같이 가자고 졸랐지만, 엄마는 막내를 깨워줘야 한다는 이유로 한사코 거절했다. 홍콩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상견니>를 마저 보았다. <상견니>는 남녀 주인공 모두가 타임슬립을 하는 대만 드라마다. 대만을 향하던 태풍 사올라가 방향을 틀어 홍콩으로 오는 바람에 나는 이번에 홍콩에서 2박 3일밖에 보내지 못했다. 아쉬운 일정이었지만 아빠와 살던 동네에 다녀온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웠다. 내가 살던 사이완호는 여전했다. 우리가 좋아하던 국숫집, 커피숍, 아파트 앞 공원까지도 그대로였다. 레세종 아파트 29층엔 아빠가 반 테 안경을 쓰고 컴퓨터 앞에 앉아있을 것만 같았다. 사이완호 역에서 내려 우리가 살던 레세종 아파트가 보였을 때 나는 왈칵 쏟아지려 하는 눈물을 참아내느라 애썼다.
한국은 날씨가 맑았다. 오늘은 나가지 않으면 아깝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햇살이 좋았다. 이른 아침부터 샤워하고 옷을 갈아입었다. 반납할 책을 한 손에 집어 들고 집을 나섰다. 내가 좋아하는 양평동 카페에 가는 내내 <상견니> OST를 들었다. 엄마는 아빠와 결혼하기 전까지 한 번도 남자를 사귀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아빠는 엄마에게 첫사랑이자 마지막 사랑일 것이다. 아빠가 떠나고 엄마는 전처럼 맑게 웃지 못했다. 아무리 내가 그 빈자리를 채워주고 싶어도 할 수 없었다. 나는 엄마가 과거에서 벗어나면 좋겠다고 생각하곤 했다. 아빠가 떠난 사실을 받아들이고 다시 예전처럼 맑게 웃어주기를 바랐다. <상견니>를 보면서 엄마가 아빠를 떠나보내고 견디고 있는 이 시간이 얼마나 고통스러울지 생각해 보았다. 문득 엄마를 잃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겁이 났다. 카페에서 나는 오랜 시간을 보내지 못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사비나 이모와 내가 <상견니> 이야기를 할 때 엄마는 보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영상을 보면서 자막을 읽어야 하는 게 눈이 아프다는 이유였다. 오랜만에 밝은 목소리로 돌아오자마자 엄마를 찾았다. “엄마 어디 있어?” 엄마가 대답하지 않을까 봐 두려웠다. 이어폰을 빼고 다시 한번 크게 엄마를 불렀다. “느그 엄마 어디 안 간다, 왜 자꾸 불러 싸” 엄마는 세탁기가 있는 베란다에서 땀을 닦으며 나왔다. 그제야 엄마가 보이는 것 같았다. 요즘엔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난다는 엄마가, 티브이에 나오는 옛날 드라마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엄마가 말이다. 엄마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엄마가 <상견니>를 보기 시작했다. 같은 걸 좋아하게 될 것만 같아 기뻤다. 나는 앞으로의 내용을 스포해도 볼 거냐고 물었다. 엄마는 상관없다고 했다. 나는 신이 나서 드라마의 줄거리를 읊었다. 엄마는 무슨 내용인지 하나도 모르겠다고 했다. 나는 그냥 보면 알게 된다면서도 계속 줄거리를 말했다. 오늘 우리는 냉면을 시켜 먹었다. 막내는 맛있는 걸 먹으면서도 맵다면서 엄마에게 괜히 투정을 부렸다. 꿀밤을 한 대 놓아주고 싶었지만 참았다. 엄마가 오래오래 건강했으면 좋겠다. 정말로 그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