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여름, 나는 책을 냈다. 정확히 말하자면 ‘우리’는 책을 냈다. 제목은 『나의 낯선 친구들』. 신촌에서의 글쓰기 수업으로 모인 네 사람이 꾸준히 글을 써서 낸 결과물이었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난 지금, 나는 거의 글을 쓰지 않고 있다. 언젠가 나는 작가가 되겠다는 열병에 휩싸이기도 했었다. 다니는 회사를 때려치우고 제2의 삶을 꿈꾸기를 수십 번이었다. 지금에야 다시 생각해 보자면, 솔직히 모르겠다는 결론이 난다. 내가 작가가 되기를 아직도 열망하는지, 내게 새로운 삶에 도전할 힘이 남아있긴 한 건지, 내가 글쓰기를 좋아하는 게 맞는 건지도.
내 생활은 한마디로 이중생활이었다. 회사에서는 운항관리사이지만 집에서는 작가 지망생이었다. 출퇴근길 지하철에선 9시간을 날렸다는 보상 심리로 악착같이 책을 읽었다. 책을 한 자라도 읽지 않는 날엔 내가 나아가고 있지 못하다는 열패감과 수치심이 들었다. 나는 어딘가를 향해 계속 달려가고 싶었다. 그 끝에 서 있는 나는 베스트셀러가 된 내 책을 쌓아두고 어딜 가나 인정받는 작가의 모습이었다. 나는 회사 생활에 온 힘을 다하지 않았다. 내가 진짜로 원하는 건 글을 쓰는 것이라고 믿었기에 운항관리사로 있는 시간이 아깝다고 생각했다. 일을 하는 동안에는 에너지를 최소화하자고 마음먹었다. 그렇다고 작가가 되기 위해 남은 모든 시간을 할애했냐면? 그것도 아니다. 티브이도 보고 운동도 하고 여행도 다녔다. 즐길 건 다 즐기는 채로 이도 저도 아닌 생활을 이어 왔다.
한동안은 쓸거리가 머릿속을 계속 맴돌았다. 쓰지 않으면 버티지 못하는 나날도 있었다. 지금은 도대체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모르겠다. 내 안에 언어가 남아있는 지조차 알 수 없다. 노트북을 켜고 한참을 까만 커서가 깜빡이는 걸 보고 있다가 쓰기를 단념하곤 한다. 도무지 쓰고 싶은 게 없어서 자리를 털고 일어난다. 눕는다. 핸드폰에 뜨는 쇼츠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또 손가락을 움직여 다음 쇼츠를 보는 것을 반복한다. 그렇게 하루, 한 달, 1년이 갔다. 그동안 난 무얼 했는지 모르겠다. 시간은 휘발되어 버렸다.
친구를 만나 진로상담을 했다. “고등학생 때나 했을 법한 고민을 왜 우린 아직도 하고 있는 걸까?” 친구의 상황도 크게 나아 보이진 않는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아는 사람이 우리에게 길을 알려주었으면 좋겠다. 물론 그 사람이 미래를 알려준다 해도 당장에 선택은 내 마음대로 할 거란걸 알지만 말이다.
나는 자기 계발서를 싫어한다. 혐오한다고까지 말할 수 있을 정도다. 그런 내가 오죽했으면 지난달 천 페이지가 넘는 자기 계발서를 각 잡고 읽기 시작했다. 마음이 답답해서 견딜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완전히 ‘유레카’였다. 일단 내게 주어진 일부터 완벽하게 해내야 한다는 게 골자였다. 아주 뻔한 소리였지만 엄마에게 뒤통수를 후려 맞은 듯했다. 내가 운항관리사로서 잘하고 있는가? 반문해 보니 당연히 ‘아니’라는 답이 나왔다.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 수준이면 다행이었다. 나는 일단 내가 하고 있는 일부터 잘하자는 결론을 내렸다. 생전 꺼내 보지 않았던 전공 서적을 다시 펼쳐 들었다. 항공기에 관한 책도 여러 권 사서 읽었다. 나름 재미있었다. 회사에서의 집중도도 올라갔다. 내가 다루고 있는 시스템에서 경고 메시지가 뜨면 끝까지 파고들기 위해 노력한다. 이 메시지로부터 파생될 결과를 예측해 보려고 여러 문서를 뒤진다. 또 모르지 않나. 이렇게 내 분야에서 각혈을 쏟아내듯 일하고 공부하다 보면 언젠가 진짜 전문가가 될지도, 그렇게 진짜 베스트셀러를 써내는 작가가 될지도 말이다.
도무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 몇 날 며칠을 붙잡고 있어 봐야 머리만 아프다. 답이 안 나오는 건 그만 생각하려고 한다. 지금 내게 주어진 일부터 열심히 해봐야겠다. 내게 주어진 일이 있다는 것에 새삼 감사하다. 이렇게 살다 보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게 되는 날도 오게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