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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씨 Apr 08. 2024

대체 내가 무엇을 했다고 이 꽃길을 걷는단 말인가?

눈 떠보니 하늘 가득히 벚꽃이었다.

길을 걷다 왠지 환하다 싶으면 벚꽃 나무가 서있었다. 꽃이 지기 전에 제대로 눈에 담아두고 싶어 버스를 타고 양재천으로 갔다. 개천을 가로지른 다리 아래 끝없이 펼쳐진 풍경은 그야말로 압권이었다.

물길을 따라 양옆으로 빼곡히 늘어선 벚나무들이 바람에 흔들리며 시시각각 부풀어 오르는 듯했고 눈앞의 모든 것이 고스란히 풍선처럼 하늘로 솟아오를 것만 같았다.

벚꽃이 일본의 국화(國花)라고 알고 있었을 때는 벚꽃놀이를 제대로 즐기지 못했었다. 일 년 내 피고 지는 꽃 중에 벚꽃이 제일 예쁘다고 말하고 나면 공중화장실 뒤켠에 쓸쓸히 피어있는 무궁화가 눈에 밟혔고, 떨어져 날리는 벚꽃을 보며 감탄하면 일본에게 영혼을 파는 듯한 기분이 들곤 했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벚꽃 콤플렉스가 사라졌고 너도나도 벚꽃을 거리낌 없이 즐기게 되었다. 왕벚꽃의 원산지가 제주도라는 국립수목원의 발표도 있었지만 일본을 의식하지 않을 만큼 성장한 한국의 경제력과 문화역량 덕분인 것 같다.


2차 세계대전을 치르던 당시 일본은 확 피었다 사라지는 벚꽃처럼 젊은이들이 국가를 위해  참전할 것을 독려했다고 한다.

또 박찬욱 감독의 영화 <아가씨>에서 김민희가 맡았던 상속녀 '히데코'가 만발한 벚꽃 나무에 목을 매달고 죽었던 장면도 떠오른다.

그러고 보면 일본인들이 벚꽃을 보고 느끼는 감정은 비장미(美)와 이어져있다.

한편 한국 사람들은 벚꽃놀이를 하면서도 경쟁하고 노력하는 '바이브(vibe)'를 보여준다.


주말 양재천도 그랬다. 어딜 둘러봐도 사방이 다 아름다운데, 사람들은 공식 포토존 보다 더 아름다운 배경을 찾아냈고 그 앞에서 긴 줄을 서며 인스타에 올릴 사진을 찍느라 바빴다.

게다가 이번 주말에는 총선에 출마한 후보가 포토존 바로 앞에서 확성기를 움켜쥐고 한 표를 읍소했다.

"시민 여러분. 벚꽃이 만개했습니다. 이번에 저희 ○○당을 한 번만 더 밀어주시면 무너져가는 대한민국이 만개하는 시대를 만들겠습니다!"

나라를 무너뜨린 ○○당 후보를 한번 더 뽑아주면 나라를 만개시키겠다니, 누가 들어도 모순이었지만 아무도 귀 기울여 듣지 않기도 했다.

사람들의 탄성과 셔터 소리에 꽃망울이 벌어지고 꽃잎이 분분히 날렸다.

벚꽃을 보며 걷다 보면 문득 삶이 쉽게 느껴진다.


"대체 내가 무엇을 했다고 올해도 이 꽃길을 걷는단 말인가? "


자고 나면 다시 마음대로 안 되는 일들을 부둥켜안고 애를 쓰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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