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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런콩 Apr 23. 2022

무라카미 하루키를 읽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도쿄 기담집』을 읽고

어느 날 국어사전이 사라졌다. 당시의 나는 대학교 4학년 마지막 학기를 막 마친 후였다. 취업 준비를 본격적으로 시작할 무렵이라 스트레스가 극도로 심했다. 나는 정신과 약을 처방받았다. 매일 아침, 저녁으로 입에서 녹는 약을 한 알씩 먹었다. 합쳐놓으면 꽤 많은 양이어서 약을 먹을 때와 먹지 않을 때 기분의 차이가 심했다. 약을 먹으면 약간 몽롱한 상태가 되었다. 그 조그마한 한 알이 내 정신을 죽여가는 기분이었지만 그만큼 예민함도 누그러졌다.

 

책상 위에 놓여 있었던 국어사전에 자주 손이 가는 건 아니었다. 그래도 필요할 때마다 펼쳐보았다. 단어의 뜻을 정확히 알아야 책도 읽고 글도 쓸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사전은 내게 ‘언어’로 대변되는 그 무엇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그 두꺼운 국어사전이 홀연히 사라져 버린 것이다. 발이 달린 것도 아닌데 말이다. 사전은 집안을 샅샅이 뒤져봐도 나오지 않았다. 나는 언어를 빼앗긴 기분이었다. 가족들은 왜 그렇게 사전에 집착하냐며 나를 나무랐다. 그 이후론 책도 진득하게 읽지 못했고 글도 쓰지 못했다. 잃어버린 국어사전은 잊어버리고 있다가도 이따금 생각나 나를 괴롭히곤 하였다. 복용하던 약이 점점 줄어들어서 내 기분을 좌지우지하지 않게 되었을 때가 된 어느 날 아빠가 남동생 방에서 국어사전을 들고 나왔다.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사전과 함께 다시 언어를 되찾고 내가 읽고 쓰기를 할 수 있게 되었다면 이 에피소드는 그야말로 기담일 테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그 후로도 오랫동안 나는 읽고 쓰기에 버거워했다.     


『도쿄 기담집』에 수록된 「시나가와 원숭이」에서 미즈키는 이름표를 잃고 자신의 이름을 종종 잊어버린다. 이름표를 훔치는 말하는 원숭이가 나오는 비현실적인 이야기지만 나는 나의 국어사전 에피소드가 생각나 ‘아, 그럴 수도 있지.’ 문득 생각하였다.     


사실 나는 무라카미 하루키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좋아하고 말고를 따져 물을 수 없을 정도로 그에게 관심이 없다. 물론 그의 베스트셀러 두 권 정도를 펼쳐보았다가 이내 덮어버렸지만 말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어쩐지 나의 취향과는 맞지 않는 글을 쓰는 작가라는 생각을 은연중에 하고 있었다. 그러던 내가 이 책을 읽게 된 이유는 사다리를 탔기 때문이다. 한 달에 한 번씩 참여하는 글쓰기 모임에서 각자 읽을만한 책을 선정하고, 사다리 타기 게임을 해 걸린 책을 읽기로 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이라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런데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나는 하루키가 이야기꾼은 이야기꾼이라는 생각을 했다. 나는 담백하여 그 안에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독자로 하여금 숨은 의미를 찾아내게 하는 류의 이야기보다는 이야기 그 자체로 흥미를 끌 수 있는 류의 이야기를 좋아한다. 이야기의 맛이 있고 자극적인 걸 좋아한다고 볼 수도 있다. 『도쿄 기담집』에 실린 다섯 편의 짧은 이야기는 이야기 본연의 맛에 충실했다는 느낌이 든다. 다채로우며 사람을 끌어들이는 무언가가 있다.

  

이를테면 「어디에서든 그것이 발견될 것 같은 장소에서」는 24층과 26층 사이에서 사라져 버린 남편을 찾는 여자가 나온다. 설정 자체로도 충분히 흥미롭다. 이야기의 화자는 ‘남편 찾기’를 의뢰받은 사람으로서 이런저런 탐문을 하지만 그 어떤 실마리도 찾아내지 못한다. 남편은 사라진 지 20일 만에 도쿄에서 한참이나 떨어진 센다이에서 발견된다. 그 20일간의 일은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정말로 그에겐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걸까. 이야기는 끝이 났지만 나는 한동안 그 궁금증에 사로잡혀 있었다.


도입부에서 하루키는 직접 이야기의 화자가 된다. 딱히 거창하지는 않지만 기묘했던 두 가지 에피소드를 들려주며 독자를 이야기 속으로 끌어들인다. 그래서인지 뒤에 나오는 이야기들이 완전한 허구가 아닌 것만 같다. 우연이 겹치고 겹쳐야만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들이지만 어딘가 있었을 법하다. 출판사에서는 이 책을 ‘가장 하루키적인 단편집’이라고 홍보한다. 나는 이 책이 ‘기담’에 충실한 책이어서 좋았다.    

  

이 책은 추천해 준 사람을 많이 닮아 있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는 서로를 깊숙이 알지 못하지만, 서로의 글을 수시로 읽어주는 사이다. 나는 본래 좋고 싫음의 이유를 잘 설명하지 못하는 편이라 그녀에게 긴 피드백을 주지 못했다. 그녀의 글을 읽고 그저 “참 좋네요.”라고 말했을 뿐이다. 나는 그녀가 가진 이야기의 힘을 좋아하는 편이다. 궁금해지고 곱씹어보게 된다.      


하루키에 대한 색안경을 벗게 되었다. 참 이상야릇하고도 재미있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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