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만남처럼 영원히 남을 기억이 될 그 순간
“좋아해”
나는 손으로 벌어진 입을 가리고 말았다. 말 그대로 놀랐기 때문이다. 그날은 서로를 알게 된 지 딱 2달 정도가 되었을 때였다. 한국에서 다시 만난 뒤로는 약 3주 정도 됐을 때였다. 아무 생각 없이 그저 새로 준비하는 일 때문에 서점에 갈 일이 생겨 그에게 같이 가자고 했다. 평소와 전혀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주말이었다.
고백이란 걸 여러 차례 경험해왔지만 늘 예상치 못한 순간이었던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런 예상치 못한 때에 맞닥뜨리는 때 느끼는 두려움 같은 것도 있기 마련이다. 왜냐하면 내가 이 사람의 감정과 결정에 대해 커다란 짐을 진 것만 같은 느낌을 받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경우는 좀 달랐다. 서로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도 않을 정도로 사람들로 가득찬 그런 분위기였는데도 이상하게 무엇엔가 이끌린 듯 편안했다. 주말이긴 했지만 일을 마친 뒤여서 조금 피곤하기도 해서 매우 편안한 자세로 앉아 있었다. 엄밀히는 배를 좀 내밀고 비스듬히 누워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소란한 주변과 달리 나는 침착했다. 한편으로는 이게 무슨 상황이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나도 너 좋아해”
이게 내 첫 대답이었다. 여전히 소파 등받이에 비스듬히 누운 채였다. 고백일 거라 생각은 못했었던 것 같다. 이게 그들의 문화에서도 고백인가 싶어 헷갈렸기 때문이다. 또 나도 그가 좋은 건 좋은 거니까 말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다. 사실이니까.
“다른 남자들과 데이트해본 적 있어? (Have you ever dated with other guys?)”
“물론이지”
“언제가 마지막 교제였어? (When is your last relationship?)”
“2016년. 3년 전”
“난 고등학교 때”
“뭐?????????”
하지만 그는 사실이라고 했다. 객관적으로 꽤나 매력적인 외모와 외향적인 성격을 가진 그였기 때문에 믿기 힘들었지만 말이다.
그리고 우리의 대화는 깊어졌다. 꽤 두터운 신앙이 있는 우리로서는 결혼을 염두에 둔 교제 외에는 선택사항이 없기 때문에 서로가 교제를 시작하기에 앞서 우선순위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님과의 교제가 가장 먼저여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해야만 했다.
비단 부푼 감정이 앞서 로맨틱한 환상에 사로잡힌 고백의 정도가 아니라 성공적인 결혼이라는 미래를 현실로 상정하고 진지하게 교제를 제안한 그가 더 믿음직스럽고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너도 날 좋아해?”
얼굴을 감싼 그의 손에서 손가락이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던 장면이 사진처럼 남아버렸다. 그리고 그 손가락 사이로 보이던 긴장한 눈빛도.
“당연하지. 나도 널 좋아해”
나도 목이 탔다. 다 사라져버려서 얼음만 남은 빈 커피잔에서 손을 놓지 못했다.
“어젯밤 너를 안고 돌아서는데 너를 혼란스럽게 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어”
“나도 어쩐지 유럽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포옹이나 키스로 인사해서 아무 것도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미국인들은 그렇게 인사하지 않는다고 들어서... 약간 의아하긴 했어”
“맞아. 다른 여자인 친구들과 가끔 그렇게 포옹하긴 하지만 너처럼 자주 하진 않았어”
확인해본 건 아니지만 그의 말을 진심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러고 싶었다. 앞으로 믿어야 할 사람이라면 의지적으로 그를 믿기로 선택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물었다.
“너도 배우자기도 한 적 있어? 리스트를 적어서라든지...”
“아니, 그렇게까지는 안 했지만 내 아내는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는 사람일 것을 가장 우선으로 기도했어”
그의 대답에 미소가 지어졌다. 그리고 그의 입에서 처음으로 내 아내(my wife)란 말이 나왔을 때가 그를 만나면서 가장 설렜던 순간으로 기억된다.
“그랬구나. 난 사실 리스트를 적어가면서 엄청 자세하게 기도했거든. 그리고 아마도 그 기도가 응답된 것 같기도 하고?”
그 말에 그도 약간 안심한 듯 얼굴에 미소가 비추었다. 그리고 다시 소년모드로 돌아와 발로 내 발을 툭 건드렸다.
우리 사이는 그렇게 공식적으로 특별해졌다. 하지만 공식적으로 데이트를 하는 커플이 되었다는 의미 그 이상으로 더 기념비적인 의미는 따로 있다. 서로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기로 약속한 날이라는 사실이다.
우리 관계의 중심에는 우리 커플을 계획하시고 멋진 스토리로 만나게 하신 매치메이커(matchmaker)이신 하나님이 계시고 모든 영광과 찬양을 그 분이 받으셔야 함을 명확히 했다. 우리는 그 흔들리지 않는 토대 위에서 관계를 시작할 수 있음에 감사드렸다.
그렇게 여러 의미로 잊을 수 없는 우리 둘 사이의 순간으로 남겠지만 그저 고백의 순간으로만 남을 것이 아니라 이후로도 현재의 순간처럼, 그리고 영원으로 이어지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