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 1
가장 아름다웠던 추억은 그저 추억으로
나의 첫사랑은 남들보다 빨리 찾아왔다. 내가 사랑했던 그 아이는'피해자의 이야기 - 왕따 극복기'에서도 썼던 것처럼 중학교 1학년, 아팠던 그 시기에 내 옆에 있어줬던 친구이다. 마음이 참 예쁜 친구였다. 간단히 말하자면 중학교 1학년 때 나는 우리 학년에서 주도권을 쥐고 있던 쌍둥이 여자애들에게 전따 수준의 괴롭힘을 당했다. 친구라고 생각했던 애들마저 이유 없이 나를 욕하고 괴롭히는 데에 동참했던 그 시기에 그 남자아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늘 나에게 괜찮냐며 한시도 나에게 눈을 떼지 않았다.
꽤 인기도 많았고 친구도 많았던, 주변에서도 다 착하다고 칭찬하던 그 남자애는 선생님에게 혼날 때에도, 교실에 들어설 때에도, 그 남자아이가 움직일 때마다 항상 첫 시선은 나에게 향했다. 한 번은 우리 반 여자애가 나한테 시비 걸며 욕하자 그 아이가 대신 시원하게 욕을 날려주기도 했으며, 내가 참다가 욕을 할 때면 시원하단 듯이 웃어주기도 했다. 힘들었던 그 시기에 그 남자아이는 나에게 더운 날 그늘막 같았다.
애들이 지나가며 나를 욕하는 소리가 듣기 싫어 mp3 player 볼륨을 밖에서도 소리가 들릴 정도로 크게 틀어놓고 엎드려있을 때면 조용히 앞에 와서 앉아있어 주다가 어디가 아픈 건 아닌지 걱정해주는 아이였다. 내가 주는 귤 하나도 소중하게 생각해서 얼굴이 발그레해져 고맙다고 수줍어하는 아이였고, 다른 여자애들이 내가 준 걸 뺏으려 하자 한 입에 넣어버리는 아이였다. 그 모습이 귀여워 매일 귤을 갖다 줬던 기억이 난다.
한 번은 나를 괴롭히던 여자애들이랑 내가 치고받고 싸우자, 평소엔 부끄러워 내 눈도 제대로 못 마주치면서 내 다친 얼굴을 어루만져주는 아이였다. 또, 부끄러워 심장이 터져버릴 것 같아 말 몇 마디도 나누지 못하면서 학교에 일찍 와서 나랑 같이 배드민턴을 치고 교실에 말없이 나란히 앉아있었던 날도 있었다.
그렇게 내가 가장 아플 시기를 설레고 따뜻하고 두근거리게 만들어주는 마음이 참 예쁜 아이였다. 이 아이 덕분에 그 시기에 학교 가는 게 두근거리며 기대되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 아이의 가정환경은 그 아이의 마음처럼 아름답지 못했다. 어머니 혼자 어린 형제를 키우셨는데 집에 잘 들어오지 않으셨고, 형과 나이 차이가 꽤 많이 났던 그 남자아이는 집에 혼자 있을 때가 많았다. 물론 어머니가 매일 왔다 갔다 하시긴 했지만 내가 기억하는 그 아이의 집은 설거지통에 설거지도 하지 않은 채 음식물이 눌어붙어 설거지거리가 쌓여있었고, 욕조에는 아무렇게나 벗어놓은 옷가지들이 한가득 쌓여있었으며, 침대나 의자에도 옷가지들이 던져져 있는 모습이었다.
그런 가정환경에서 착하고 예쁜 마음씨를 가지며 자란 이 아이가 대견하고 고맙게 느껴졌고, 내가 오래도록 이 아이의 곁에서 예쁜 마음씨를 지키며 살 수 있도록 많이 사랑해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남자아이와 나는 고등학교도 같은 학교로 진학하게 되었다. 하지만 중학교 때와 다르게 고등학교 선생님들은 공부를 못한다는 이유로, 외모가 남들에 비해 튄다는 이유로, 고등학생이 담배를 피우다 걸렸다는 이유로 그 남자아이를 온갖 문제아들이 모여있는 악명 높은 학교로 전학을 보내버렸다. 다른 학교로 가는 건 상관없었지만 그 학교로 가는 건 어른들이 그 아이의 인생을 멋대로 망쳐놓는 거나 다름없었다.
이미 그 당시에 그 아이는 나에게 그저 좋아하는 남자 친구 그 이상의 내가 사랑하는, 내가 지켜야 하는 소중한 존재가 되어있었다.
전학 가는 날 전학 서류를 들고 내 앞에 나타난 그 아이에게 전학서류를 보여달라고 했다. 그 아이는 전학서류를 보여주지 않으려 했다. 아무것도 모르고 장난치는 그 아이의 모습을 보면서 속상한 마음은 커져만 갔고, 나는 잡고 있던 이성의 끊을 놓아버렸다. 나는 그 아이의 전학서류를 빼앗아 두 갈래로 찢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