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생했어, 나의 우울증

잘 버텼어

by 이열매

그 선생님은 그 외에도 그 선생님이 실수하거나 잘 모르는 것에 대해서 내가 알려주면 "지금 이거 다른 선생님들한테도 다 얘기했어요? 나한테만 하는 거 아니에요?"라며 이상한 소리를 하셨다. 다른 선생님들은 모두 나보다 여기 먼저 일하신 분들이고, 나도 그 선생님들에게 배운 것이기 때문에 내가 그 선생님들한테 알려줄 필요가 없는데 말이다.


그리고 자신이 하기 어려운 일들은 다른 선생님들에게 떠넘겼다. 'crown prep'하는 환자를 맡게 될 때나, 환자 PPT를 만들어야 할 때마다 "선생님이 해주실래요?" 하더니 해주겠다는 말도 안 했는데 "고마워요 선생님~"이러고 가버리시는 것이었다.

그렇게 1년이 지나도 PPT 만드는 것이나, 환자 구강 내 사진을 찍는 것 등은 일이 늘지 않으셨다. 그래서 늘 나나 다른 선생님들이 대신 해주곤 했다.



그러다가 내가 3년 차가 된 후 6월, 결정적인 사건이 터졌다.

그 날은 매우 바쁜 날이었다. 매우 어려운 케이스의 환자가 치과에 왔고, 나는 6시 반 퇴근인데 퇴근도 하지 못하고 2시부터 7시 반까지 한 환자만 봤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땀 흘리며 뛰어다니면서 일하고 있을 때, 그 선생님이 환자 구강 내 사진 찍는데 도와달라고 하셨다.


사진은 총 5장을 찍어야 했다. 나는 사진이 잘 나올 수 있도록 양손으로 기구를 이용해 환자 입술 등을 잡아주어야 했는데, 그 선생님이 사진 찍는데 너무 오래 걸려서 옆에서 불편한 자세로 도와주는 나는 팔이랑 어깨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환자는 입을 최대한 크게 벌린 상태로 엄청 큰 거울을 입안에 넣고 찍어야 하는 상황이라 헛구역질을 하기 시작했다. 환자가 힘들어하는데도 무리해서 계속 찍으려고 시도하시길래, 나는 환자분께 죄송하다고 사진이 잘 나오려면 어쩔 수 없어서 조금만 참아달라고 부탁을 드린 뒤 더 찍을 수 있게 도와드렸다. 그런데 이번엔 헛구역질하는 환자 입에 거울을 넣어놓은 채로 카메라를 세팅하길래 제가 찍겠다고 카메라를 달라고 했다.

그 선생님이 "제가 할게요."라고 했지만 더 했다가는 환자분이 화를 낼 것 같을 정도였고, 나도 바쁜 와중에 도와주러 온 것이었어서 얼른 찍고 다시 갔어야 했다. 그렇게 카메라를 가져가서 내가 찍었다.

그런데 그게 매우 자존심이 상하셨던 모양이다. 그다음부터 나와 아무 대화도 나누지 않고 쳐다보지도 않으셨다.

그리고 며칠 뒤 일을 그만두겠다고 하시길래 나는 그 선생님께 가서 진심으로 사과드렸다. 그 선생님도 아니라고 나도 미안했다고 웃으면서 잘 지내라고 하셨다.



그리고 어느 날 점심시간에, 웃긴 동영상이 있어 내가 친한 동료 선생님들과 같이 보며 웃으며 이야기를 했었는데 그날 퇴근 후 실장님께 메시지가 왔다. 나 때문에 같이 일하는 동료가 그만둔다는데 동영상 보면서 웃음이 나오냐고 나랑 같이 일을 못하겠다는 메시지였다.

나도 실장님과 같이 일 못하겠다고 했다. 그 상황에서 더 도와드리는 건 무리가 있었고, 그 선생님과 잘 얘기해서 풀었으며 약 올리려고 일부러 동영상 보면서 시시덕거린 것도 아닌데 이런 식으로 퇴근 후에 연락하는 것도 아니시지 않냐고 했다. 그리고 그간 있었던 일들 잘 모르시면서 무조건 친한쪽의 편을 들면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도 아니신 것 같다고 했다.

그랬더니 '편'이라는 단어에 꽂히셔서 자기네들이 깡패냐고 어디서 그런 단어를 쓰냐며 나에게 화를 냈고, 기어코 전화까지 왔다. 나는 실장님처럼 배울 게 없는 어른은 처음 본다고 아무것도 배울 게 없다고 말했다.



그다음 날부터 실장님과 실장님 후배 선생님의 본격적인 공격이 시작되었다. 실장님의 후배 선생님을 A라고 하겠다. 출근하자마자 A 선생님이 "나한테 그동안 불만이 많았나 봐요?"라고 하셨고, 내가 일하고 있는 곳 옆에 와서 시비를 거시길래 난 대꾸할 가치가 없다고 느껴져 대답하지 않았다. 그랬더니 그 선생님은 "지금 무시하는 거예요?"라고 말씀하시고 흥분하시더니 원장님 방으로 뛰어 들어가셨다.

곧이어 원장님이 방에서 나오셨고 그간 실장님이 나를 괴롭혔던걸 전부 알고 있던 원장님은 "XX. 내가 이놈의 치과 때려치우던지 해야지."라고 하시더니 오늘 이미 온 환자까지만 받고 뒤에 있는 예약은 모두 취소하고 문을 닫으라고 하셨다.


치과 문을 닫은 후 원장님은 모든 직원을 불러 모았다. 원장님과 기공 실장님 등 직원들이 모두 있는 앞에서 잘잘못을 가리는 공방이 시작되었다. 그 날 난 단 하나의 지적을 받았다. 아무리 그래도 나보다 나이 많은 선생님이 말씀하시는데 대꾸를 안 한건 잘못이라는 것이었다. 그 외에는 그 누구도 내 잘못이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원장님께선 나에게 공격을 퍼붓는 A 선생님의 말을 자르며 "소영이는 내가 말하지 않아도 먼저 환자 진단해놓고 그런 거 우리 치과에서 제일 잘하고, 우리 치과에 꼭 필요한 존재야."라며 나를 두둔해주셨다. 그렇게 A 선생님과 실장님이 치과를 그만두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주말 동안 실장님이 원장님께 무슨 말을 한 건지 내가 그 치과를 그만두게 되었고, 원장님은 미안하다며 현금을 두둑이 챙겨주시며 나에게 법륜스님의 '행복'이라는 책을 선물해주셨다.




이 직장에서 2년 반이라는 시간을 버티면서 나에게는 우울증이 찾아왔었다. 일하는 중엔 눈물이 터져 나올 것 같아서 아무 말도 못 하고 입술을 깨물며 참았다. 그러다 퇴근하면 "안녕히 가세요."라고 인사하고 선생님들이 시야에서 사라지는 걸 확인한 뒤 참고 있던 눈물이 터져 나왔다.


집이 가까웠던 것도 아니라서 대중교통을 이용했어야 했는데, 눈물을 참을 수가 없어서 버스도 타지 못 했다. 그렇게 나는 퇴근 후 매일 3시간씩 울며 길거리를 헤매야 했다. 내가 우는 걸 보면 부모님이 걱정하실까 봐 집에도 가지 못했다.


나는 술을 못 마신다. 주량이 소주 3~4잔 밖에 되지 않는데, 이 때는 한번 술 마셨다 하면 한병 이상씩 정신 놓고 마시기도 했다.


실장님이 나를 대하는 것을 보면 같이 일하는 직원이 아니라 노예쯤으로 여기시는 것 같았다. 동등한 인간으로서의 대우를 받는 느낌이 아니었다.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수도 없이 생각해봤다. 내가 잘못한 걸까. 그렇게 울며 걷다 보면 내가 한없이 작아져서 나 스스로 쓸모없는 인간처럼 느끼기도 했다.


높은 건물을 쳐다보면 그냥 사라지고 싶단 생각도 들었다. '저곳에서 내가 뛰어내리면 모든 게 다 끝날까.' 그렇게 우울증은 나를 죽음의 문 앞까지도 몰아넣었다.


그 시절의 나에게 가장 미안한 것은 그 직장에서 2년 반이라는 시간을 보내게 내버려 둔 것이다. 모든 직장인들이 나처럼 이직이 쉬울 것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하지만 난 언제든지 직장을 옮길 수 있는 직업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직장에 갔다가 더 힘들면 어떡하지, 더 이상한 사람이 있으면 어떡하지' 등으로 나를 그곳에 묶여있게 한 것이다.


그렇게 2년 반 뒤에는 아예 일하는 것이 무서워질 지경에 이르렀었다. '다시 일을 시작할 수 있을까, 좋은 직장을 만날 수 있을까, 더 안 좋은 사람들이 있으면 어쩌지...'라는 생각에 일을 하기가 싫었다.


하지만 그다음 직장에서 너무 좋은 실장님과 선생님들과 원장님을 만나면서 서로서로 존중해주고 위해주며 일을 할 수 있었고, 상대방의 잘못도 덮어주며 직장이 이렇게 따뜻한 곳임을 배울 수 있었다.




사회초년생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직장에서는 내가 잘못한 것과 상관없이 그저 상대방의 기분에 따라 내가 필요 이상으로 혼나게 되기도 하고, 아랫사람이라는 이유로 폭언을 들을 수도 있다. '실수했다, 잘 모른다'라는 말을 갖다 붙이기에 사회초년생만큼 쉬운 사람이 없기 때문에 내가 한 잘못 이상으로 누명을 쓰거나, 다른 사람의 잘못을 나에게 뒤집어 씌우기도 한다.


하지만 나와 그 사람은 안다. 내 잘못이 아님을. 그 사람도 그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기 싫어 '뒤집어 씌우기, 우기기'정도로 밖에 생각되지 않을 말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나만큼은 나를 의심하지 말아야 한다. 나를 의심하는 순간 모든 게 나의 잘못처럼 돼버리고, 매일 죄송하다고 하며 다른 직장 동료들도 '아 쟤가 또 잘못했나 보네.'라고 생각하는 순간이 올 수도 있다.


상대방의 비위를 맞추며 그냥 웃어넘기는 것도 사회생활일 수 있겠지만, 잘못한 것이 없을 때 잘못했다는 말은 나를 무능력하고 우스운 사람으로 만들어버린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누군가가 나에게 폭언을 할 때에는 그렇게 말씀하시지 마시라고 할 줄 아는 단호함도 필요하다.



오늘 누군가 최악의 하루를 겪었다고 하면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오늘도 고생 많았을 당신에게,

잘 버텼다.

힘든 순간은 모두 지나간다.

당신은 누군가의 자랑이다.

당신은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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