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쥐 의 부활 <도바 위에 뜬 별 1부 제16화>
자갈치의 전설-양사장
며칠째 내리던 봄비가 지붕을 두드리며 흘러내렸다.
바닥엔 물웅덩이가 점점 깊어졌고, 젖은 니트 상의는 힘없이 축 늘어져 있었다.
4월 중순, 봄장마가 시작된 것이다.
일기예보는 이번 장마가 이주일은 계속될 거라는
우울한 소식을 전하고 있었다.
빗속 장사판은 고스란히 꽝이었다.
말쑥 씨는 장마 끝날 때까지 집에서 쉬겠다는 전화를 해왔다.
나는 창밖으로 쏟아지는 빗줄기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울리는 전화벨 소리에 몸을 일으켰다.
수화기 너머로 귀에 익은 걸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 한 성호. 비 온다고 뒷짐 지고 앉아 있으면
밥은 누가 떠먹여 주나?”
나는 한숨부터 내쉬었다.
“형님, 이 판이 비만 오면 그냥 끝입니다.
젖은 옷을 누가 사겠습니까.”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거야?
사람이 입에 풀칠은 해야지.
일당바리라도 해볼래? 별거 아냐.
몸만 가면 된다. 쪼매 특이한 일이지만,
배울 것도 있을 끼다.”
나는 빗방울이 처마 끝을 때리는 소리를 들으며 잠시 망설였다.
하루 이틀 벌이 없는 건 참을 만했지만,
며칠째 이어지면 사정이 달라졌다.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형님, 어디든 데려만 가주십시오.
비 맞고 손 놓고 있는 것보단 낫겠지요.”
“좋다. 내일 아침 내가 차 갖고 간다.
전화하면 바로 나올 준비 해라.”
전화를 끊자 방 안은 다시 빗소리로 가득 찼다.
창밖의 물웅덩이 속으로 떨어지는 빗방울이
하나둘, 내 마음의 자리까지 파고들고 있었다.
자갈치의 전설, 양사장
다음 날 아침, 악어 형님은 낡은 봉고차를 몰고 왔다.
초량동 구봉성당 앞 도로엔 비가 잔잔히 번지고 있었다.
차창을 닦던 와이퍼가 느린 박자로 움직였다.
봉고는 부산역을 지나며 수많은 자동차와 택시들 사이를 비집고 나갔다.
출발을 알리는 기차의 기적소리 한 줄이 한동안 목이 쉬게 울부짖다 그 소리가 잦아들었다.
중앙동에 들어서자 바다 냄새가 희미하게 섞였고,
신호 대기 중이던 시청 앞 교차로엔 신문을 덮은 노점 좌판이
빗물에 눅눅히 젖어 있었다.
자갈치에 도착하자 비는 여전했지만,
시장 특유의 소음이 비 소리조차 삼켜버렸다.
회센터 옆 도바에는 젖은 우비 차림의 아낙네들이
손수레를 밀며 고함을 질렀다.
비린내와 웃음, 젖은 천막의 물방울이 뒤섞였다.
악어 형님은 삐쩍 마른 사내를 가리켰다.
“이 형님이 바로 자갈치의 전설, 양사장님이시다.
오늘 네가 많이 도와드려라.”
그러곤 손을 휘젓고는 사람들 틈에 사라져 버렸다.
양사장은 홀쭉한 하관과 옹골진 눈매를 가진,
꼭 쥐를 닮은 얼굴이었다.
“아우님 소문은 악어한테 들었소.
국제시장 노점 아우들 중에 한때 극장 암표상 시절부터 내가 데리고 가르친 동생들이 많지.
오늘 이렇게 인연이 됐으니 잘 지내봅시다.”
천막 안으로 들어서자
수백 개의 쥐틀과 쥐약 상자가 쌓여 있었다.
중앙의 리어카 위엔 전시용 대형 쥐틀 하나가 떡하니 놓여 있었다.
사술의 장사
양사장은 나를 앉혀 놓고 쥐틀을 툭툭 두드렸다.
“이중 구조라네. 들어가면 자동으로 갇히고, 미끼에 코를 들이밀자마자 철문이 ‘쾅’— 닫히는 구조 이지. 집 나간 도둑고양이도 울고 갈 정밀함이라니까.”
그는 살짝 비죽이 웃더니 말을 보탰다.
“근데 말이야, 쥐틀은 눈요깃거리일 뿐이네. 시방 돈이 되는 건 따로 있지. 바로 쥐약. 이 판은 기술 반, 말재주 반, 거기다 요만큼의 사술. 오늘 본 건 가슴에만 넣어둬. 입이 가벼우면 지갑도 가벼워지는 법이거든.”
그는 곧바로 도바 앞에 서서 목청을 고르고 당가를 풀었다.
“에—이! 집안에서 쥐랑 동거 중인 분, 손들어 봅시다! 밤마다 바닥 긁어대고, 쌀독 파헤치고, 배 밑창까지 들락거리는 그 원수! 오늘, 보건 당국이 서울 큰 학교 연구실에 의뢰해 만든—이름만 들어도 믿음이 솔솔—‘사람에겐 편하고 쥐에겐 쥐약’이 도착했심더!”
분홍 도넛 모양 쥐약을 흔들며 한마디 더 얹었다.
“이게 얼마나 기특하냐면, 냄새만 맡아도 여섯 뼘 남짓 안에서는 그대로 퍼더억! 이제 집안 천장, 헛간, 배 밑창까지 싸그리 정리합시다. 근데 말이야, 아저씨 아줌마—약만 팔면 내가 양사장이 아니지. 실험! 보여줘야 속이 시원하지 않겠어?”
우리 속에서 꺼낸 쥐 한 마리가 군중들의 눈초리에 놀라 바들바들 떨며 쥐틀로 들어갔다. 그 찰나, 양사장이 리어카 밑 어딘가를 발끝으로 쓱— 눌렀다.
‘찍—!’ 금속 울림과 함께 쥐가 뒤로 곯아떨어졌다. 네 다리가 파르르 떨다 멈췄다.
사람들이 일제히 눈동자가 커졌다.
양사장은 기다렸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보입니꺼? 이게 바로 과학과 장사의 만남. 쥐 입장에선 벼락 맞은 거고, 우리 입장에선 평화가 오는 거지. 자, 그다음은 결제 순서다—카드도 받는다 아이가.”
전기의 비밀
나는 살짝 다가가 낮은 소리로 물었다.
“형님, 이거 너무 세지 않습니까. 하루에 몇 십 마리 쓰려면….”
양사장은 집게로 쥐를 들어 올리며 킥 하고 웃었다.
“아우, 걱정이 많네. 이 녀석 죽은 거 아이다. 전기 살짝 맛만 본 거지. 잠깐 까무러쳤다가 금방 깨어난다. 그래서 내가 아까 ‘사술’이라 했잖아. 비밀은 바닥 철판, 밑장에 숨겨둔 배터리, 그리고 발끝 타이밍. 장사는 타이밍이 반이다.”
그는 쥐를 우리 옆 빈 상자에 내려두며 또 한마디를 보탰다.
“세상 일이라는 게 그래. 남이 보기엔 요술 같은데, 막상 뜯어보면 구조는 단순해. 대신 손발이 정확해야지. 사람 속도 비슷하다—요기 눌러주고 저기 풀어주고. 그러다 보면 지갑이 알아서 연다.”
주변에선 벌써 지갑이 척척 열리고 있었다. 쥐틀 밑판은 철판, 선은 리어카 밑 배터리로 이어져 있었다. 발끝이 스위치를 톡— 건드리는 순간, 쥐는 픽 쓰러졌다가 슬그머니 되살아났다.
양사장은 마지막으로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지었다.
“자, 오늘 본 거—입단속. 우리끼리만 아는 비기다. 소문 돌아다니면 맛이 싹 달아난다. 세상일은 원래 그래. 비밀스러울수록 장사가 잘돼.
알겠지, 손사장? 말은 적게, 팔 때만 크게! 그게 양사장표 장사 법칙이다.”
그는 잠시 눈을 찡긋하더니, 목소리를 낮췄다.
“근데 말이야… 솔직히 말하자면, 이 쥐약은 가짜야.”
그는 쥐약 통을 손가락으로 툭툭 두드리며 낄낄 웃었다.
“우리 목적은 쥐약이 아니라 쥐틀이지. 사람들은 ‘약’이 있어야 안심하거든.
그런데 진짜 약을 썼다간 큰일 나. 손님들 앞에서 쥐를 매번 죽이려면
하루에도 몇십 마리를 하늘나라로 보내야 돼.
그게 장사냐, 살생이지. 장사꾼은 팔아서 먹고 살면 되는 거지,
매일 초상 치를 필요는 없잖아?”
그는 손바닥을 털며 헛웃음을 터뜨렸다.
“요즘 쥐들이 얼마나 똑똑한 줄 알아?
옛날엔 쥐약만 뿌려도 제 발로 찾아와 죽더니,
이제는 냄새만 맡아도 ‘아, 이건 위험하구나’ 하고 뒤로 물러선다니까.
장사하려면 쥐가있어야하니
내가 직접 생포하러 다니는데, 이놈들이 완전히 지능형이야.
사람 그림자만 봐도 도망치고.웬만한 사람 머리 꼭대기에서 놀아요.
어쩔 땐 내가 쥐 잡는 게 아니라 쥐한테 농락당하는 기분이라니까.
그는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이며 웃었다.
“한 번은 새벽에 덫 놓고 잠복하다가,
쥐랑 눈이 딱 마주쳤어.
서로 가만히 한참 쳐다보다가
그놈이 갑자기 고개를 홱 돌리더니 도망가더라.
아마 속으로 ‘야, 그 덫 구식이야’ 이랬을지도 몰라.
내가 더 놀랐지 뭐야. 세상에, 쥐한테 기죽는 날이 올 줄이야.”
그는 연기를 길게 내뿜더니, 입꼬리를 비틀며 말했다.
“그래서 결국엔 전기충격이 최고야.
쇼는 쇼대로 하고, 쥐는 기절만 시키고, 손님은 ‘이야, 과학의 힘이다’ 하면서 지갑을 여는 거지.
그리고 우리는? 쥐약을 사려는 사람에게 꼭 쥐틀을 세트로만 팔아.
‘약만 사면 효과 없다’고 살짝 겁을 줘야 해.
결국 손님은 약이든 틀이든 뭐라도 사야 속이 편한 법이거든.
그게 장사야. 우리는 약 안 팔아도 쥐틀로 돈 벌고,
손님은 쥐 잡았다며 만족하니, 세상에 이보다 평화로운 거래가 어딨겠어
이게 장사고, 이게 인생이야—죽이진 말고, 놀라게 해야 돈이 된다.”
그의 웃음소리가 천막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 사이로 묻혀 퍼졌다.
정말, 먹고사는 길도 가지가지였다.
비릿한 선창의 냄새와 호객의 고함, 젖은 천막에서 또르르 떨어지는 물방울 사이로
나는 그날 처음으로, 부산 바닥 세계의 ‘진정한 속살’을 들여다보았다.
그가 나를 힐끗 보며 손가락을 턱에 대고는 싱긋 웃었다.
“아우, 이제 구경만 할 게 아니라 한 번 해보라. 장사꾼은 품목 가릴 처지가 아니다. 입으로 밥 벌어먹는 재주가 있어야지. 옆에서 내가 코치해 줄 테니, 오늘 한 판 제대로 해보자.”
나는 속으로 심호흡을 하고 떨리는 손으로 쥐약을 집어 들었다.
“형님, 저 이런 건 진짜 자신 없습니다. 망치면 어쩌죠?”
양사장은 혀를 차며 손사래를 치더니, 슬쩍 각을 잡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아이다, 한 사장. 구라는 타고나는 기다. 내 눈에 벌써 장사꾼 피가 흐르는 게 보인다. 일단 해봐라, 배우면서 배팅하는 기라.”
그는 리어카 앞에 서서 한 손을 크게 흔들며 장내를 가리켰다. 사람들 몇이 흥미로 모여들었다. 나는 심장 박동 소리를 참으며 목을 가다듬고 한마디를 던졌다.
장터의 래트메디신 엑스
나는 일부러 손님들에게 친근감을 주기 위해 첫머리를 부산 사투리로 열었다.
목을 한 번 가다듬고, 리어카 옆 고무 대야를 “땅!” 하고 발로 쳤다.
“자―아! 아지매, 아재, 여기 잠깐 내 좀 보고 말 좀 듣고 가이소!
밤마다 천장에서 쥐가 ‘따닥따닥’ 뛰는 소리 듣고 계신 분들은 주목 한번 하고 가이소
사람은 잠도 못 자고, 쌀독은 비어 가고, 아가야 젖통까지 갉아 묵는 이놈들.
그 쥐 놈들은 그냥 쥐가 아이라— 도둑놈이라!”
사람들이 킥킥 웃었다. 아이 손을 잡은 아주머니 하나가 “맞다, 맞다”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 반응을 놓치지 않고 더 끌어올렸다.
작가의 말
참 소설같은 이야기지만 실화바탕입니다.생존의 현장은 늘 소설보다 더 잔혹하죠 자갈치에는 쥐약을 파는 곳이 많았지요. 섬이나 배안에 쥐들이 드글 거리기때문입니다. 사람들에게 피해를주는일은 아니였지만 경쟁이 심하다보니 이렇게 사술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성호의 지금까지 캐릭터와 약간 결이달라 여러분의 의견에 따라 본 이야기는 종이책 출간시에 뺏으면하는데 적극적인 댓글로 의견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