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표처럼 떠도는 삶 <도바 위에 뜬 별 1부 제17화>
" 손님이 웃으면 지갑이 열린다. "
언어가 과장될수록 표정이 익살맞을수록 효과는
더 극적이 된다고 했던가?
“예끼, 저놈의 쥐들이 요새는 더욱 기가 막혀요.
사람 눈 피해서 벽 타고 다니고, 냉장고 뒤 숨었다가
밤만 되면 쌀독에 다이빙!
이러다간 집 한 채 통째로 털리는 날이 옵니더!”
웃음이 터졌다. 나는 손을 한 바퀴 휘두르며
점점 목소리를 낮추고 표준말로 톤을 바꿨다.
마치 ‘이젠 전문가가 설명합니다’ 하는 듯이.
“그렇지만 여러분, 웃을 일이 아닙니다.
쥐 한 마리 잡자고 약을 놓았다가,
강아지가 잘못 먹어 죽고,
염소도 픽, 닭도 픽—
심지어 작년에 시골 경로당에서
쥐약 묻은 술빵을 나눠 드셨다가
열 분이 한꺼번에 돌아가신 사건, 뉴스로 다들 보셨을 겁니다.”
사람들 표정이 진지해졌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어갔다.
“도시에선 그나마 응급실이 있으니까
비타민 K 주사 맞고 살아나는 분도 있겠지요.
하지만 여기 계신 분들,
병원까지 차로 한 시간 넘게 걸리지 않습니까?
비타민K 이름은 알아도
보건소 약장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게 현실 아닙니까?
게다가 외딴섬에 사는 분들은,
그냥 하늘 바라보고 ‘이만하면 살만했다’ 하며
세상 하직 하는 수밖에 없어요. 이 좋은 세상에 이게 말이 됩니까?”
누군가 ‘참말이네’ 하고 중얼거렸다.
나는 그 소리를 듣자마자, 마치 ‘교수 강의’ 하듯
양복 깃을 추스르고 표준어로 정색했다.
“여러분, 그래서 오늘 소개하는 이 제품!
‘래트 메디신 엑스’— 이름부터 다릅니다.
보사부에서 서울대학교 제약 연구소에
특별 의뢰해서 개발한 최신형 쥐약입니다.
이 약은 인체에 절대 무해합니다.
어린아이가 만져도 괜찮고, 강아지가 실수로 먹어도 안전합니다.
그렇다면 물으시겠죠? ‘도대체 어떻게 그게 가능하냐?’
화학반응식이 다릅니다.
기존 쥐약은 항응고제 계열이지만,
이 ‘래트 메디신 엑스’는 RAT-X,
즉, 단백질 분해 효소를 이용해
쥐의 내장 기관만 작동을 멈추게 합니다.
사람과 동물에겐 전혀 반응하지 않죠.
쉽게 말하면
쥐에겐 천둥번개, 사람에겐 봄바람이라 생각하시면 됩니다.”
군중이 웅성거렸다.
“오―” “그럴 수가 있나!”
나는 잽싸게 웃으며 농담을 던졌다.
“여기 계신 분들 중에 영어 잘하는 분도 계시겠지요?
‘왜 마우스(mice)라 안 하고 래트(rat)라 하노?’
좋은 질문입니다!
미키마우스 할 때 그 마우스는 귀엽고 영화에 나오는 놈,
사람 말귀 알아듣는 ‘도시형 생쥐’고,
이 약이 잡는 건 그게 아닙니다.
지하 하수구에 사는, 손바닥만 한 놈들—그게 바로 그런 쥐를 영어로 ‘래트’라고 부릅니다.
그러니까 ‘래트 메디신’은 진짜 쥐약,
‘엑스(X)’는 뭐겠습니까? 끝낸다는 뜻이지요.
‘쥐를 끝낸다!’ 얼마나 간단합니까, 예?”
군중 사이에서 “하하!” 웃음이 터졌다.
양사장이 내 뒤에서 팔짱을 끼고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저거 봐라, 이제 톤이 살아있네. 사람들 귀가 쫑긋하지 않나.”
나는 손에 든 쥐약 병을 번쩍 들며 마무리했다.
“오늘 이 자리, 이 비 오는 자갈치 장터에서만
특별히 도매가로 모십니다.
단, 약만 사면 효과 없습니다!
쥐틀과 세트로 쓰셔야 완벽합니다.
쥐는 머리가 좋습니다. 약만 놓으면 피하지만,
틀이 있으면 ‘아이고, 여기 집이구나’ 하며 들어가요!
그 순간 이 약이 향기로 그놈을 보내드리지요.
이게 바로 래트메디신엑스!
쥐는 지옥으로, 사람은 평화로!”
군중이 박수를 쳤다.
누군가는 “그 말 참 잘한다” 하며 지갑을 꺼냈다.
양사장은 뒤에서 나지막이 웃었다.
“허허, 한 사장… 이제 완전히 판 깔 줄 아는구먼.
이래서 내가 사람 보는 눈이 있다 했다 아이가.”
나는 모인 사람들의 얼굴을 훑으며 생각했다.
내가 팔고 있는 게 약인지, 말인지,
그 순간만큼은 나도 헷갈렸다.
오―” 군중에서 탄성이 흘렀다.
"며칠 전 의심 많은 누가 이렇게 묻습디다.
건달은 주먹으로 말하고, 판사는 판결로 말한다지요.
그럼 당신은 무엇으로 입증할래?"
맞는 말씀입니다.
저희는 약품을 소개하는 자리이니,
제가 조금 후 반드시 실험으로 인체에 무해한 것을
여러분 앞에서 증명해 보이겠습니다."
나는 쥐약을 높이 들고 목청을 눌러 쥐어짰다.
"오늘 제가 이렇게 자신 있게 여러분 앞에서 말씀드리는 것은
이 약, 레트메디신 엑스만이 가진 특별한 효능 때문입니다!
이 약의 힘은―
쥐가 냄새만 맡아도 육십 센티 이내에선 그대로 숨이 턱! 막힙니다!
이제 이 기회에 집안 천장, 배 밑바닥, 시골 헛간까지 싹 정리합시다!
오늘만 특별히, 도서 지방에서 오신 분들이 많으니
쥐틀이랑 같이! 국민 보급가로 배포하겠습니다.
특수 제작된 쥐틀 하나 가격에, 쥐약은 공짜입니다!"
군중 속에서 누군가 손뼉을 치자,
나도 모르게 더 흥이 났다.
“한번 보십시오! 자, 이 놈의 쥐! 킁킁거리다… 어이쿠야, 벌써 냄새 맡았네!
어, 어… 쓰러진다―!”
양사장이 슬쩍 발로 스위치를 밟자,
철컥 소리와 함께 쥐가 그대로 뒤집혀 버둥거렸다.
사람들은 “우와―!” 하고 환호성을 질렀다.
나는 배짱이 붙어 한 손으로 쥐약을 흔들며 외쳤다.
“이게 바로 래트 메디신 엑스 약발입니다!
오늘 안 사가면 내일 후회합니다!
내일 와봐야, 오늘 이 가격으론 절대 못 삽니다!”
군중 속에서 여기저기 지갑이 열리고 손길이 뻗었다.
양사장이 뒤에서 빙긋 웃으며 중얼거렸다.
“허허… 역시 사람은 아는 기 힘이네. 되는 거라.
한사장, 오늘 장사꾼으로 제대로 태어난 기라.”
나는 땀에 젖은 손바닥을 꼭 쥐었다.
비릿한 선창가 냄새와 사람들의 환호,
그 순간의 전율이 온몸을 휘감았다.
먹고사는 일에 자존심이고 뭐고 없었다.
나는 이제 진짜로, 장사꾼의 세계에 발을 들이고 있었다.
꽤나 모여든 군중들 가운데,
낮술에 불콰해진 작업복 차림의 중늙은이 한 명이
시비 걸듯 큰소리로 말했다.
“어이, 젊은 양반!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하지 않소?
좀 전에 보여주겠다던 실험, 할 겁니까 말 겁니까?
이제 입은 그만 쉬고, 실험인가 사기인가―
인체에 무독하다는 거, 함 제대로 보여 줘 보소!”
나는 잠시 망설이는 척 액션을 취했다.
하지만 이미 사람들의 눈빛은 호기심과 긴장으로 번쩍이고 있었다.
나는 일부러 긴장한 표정으로 작은 분홍빛 도넛 모양의 쥐약 알갱이를 집어 들었다.
“여러분―!” 목청이 스스로 높아졌다.
“이 약, 가짜 같지요? 말만 요란하지 진짜 무해할까 싶지요?
‘저것도 약장수 구라 아이가’ 싶은 생각, 지금 들지요?”
군중 사이에서 킥킥, 툭툭 속삭임이 흘렀다.
“저걸 누가 믿니.”
“에이, 약장수 수작이지.”
나는 그 반응을 기다렸다는 듯 손바닥 위의 쥐약을 번쩍 들어 올렸다.
“자― 여러분! 의심도 병입니더!
의심 많은 분들은 공짜 보약을 줘도 못 삼킨다 카더이다!
오늘 제가 이 몸으로 증명해 보입니다!
이 약이 가짜라면, 내가 이 자리에서 쭉 뻗어 버릴 겁니다!”
“오―?” 군중이 술렁였다.
분위기가 팽팽해졌다.
나는 심호흡을 크게 한 번 하고, 사람들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모두 숨죽인 얼굴이었다.
그 순간, 나는 그대로 쥐약을 입안에 털어 넣고 우드득 씹어버렸다.
“어―억!” 몇몇 아낙네들이 놀라 손으로 입을 막았다.
“저 미친 거 아이가!” 누군가 소리쳤다.
나는 일부러 얼굴을 찡그리며 목을 움켜쥐고 헉헉댔다.
군중의 긴장이 절정에 달했다.
“어이쿠야, 큰일 나는 거 아이가!”
몇몇은 앞으로 달려들 기세였다.
그 순간, 나는 턱 하니 웃어젖히며 소주 한 모금을 벌컥 삼켰다.
“으아―! 시원하다! 보이소― 아무 탈도 없지예!”
잠시 얼어붙었던 군중은 이내 폭소와 환호로 뒤섞였다.
“허허, 별 거 아니네!”
“저 사람 간 크다, 간 커!”
나는 씹던 알갱이를 보여주며 여유롭게 말했다.
“자, 이게 바로 래트메디신 엑스입니다!
래트는 영어로 쥐, 메디신은 약!
엑스는 인체― 사람에겐 해당사항이 없다는 뜻입니다!
사람에겐 무해하고, 쥐에겐 치명적!
지금 안 사가면 내일 후회합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만 특별 보급가!”
그제야 망설이던 사람들이 앞다투어 지갑을 열기 시작했다.
양사장은 뒤에서 팔짱을 끼고 고개를 끄덕였다.
“허허… 저놈, 이제 완전히 물 만난 고기다.”
나는 심장이 쿵쿵 뛰는 걸 느꼈다.
시장 소란, 사람들의 눈빛, 내 입에서 쏟아지는 말들―
그 순간만큼은 세상을 쥐락펴락하는 기분이었다.
그날 이후, 자갈치의 천막 아래는 언제나 인파로 꽉 찼다.
비린내와 생선 내장 썩는 냄새, 장사꾼들의 고함소리,
그리고 빗물이 천막지붕 틈으로 스며드는 축축한 공기 속에서
나는 점점 ‘무대의 맛’을 알아갔다.
“여―어! 자갈치 한 사장 나왔다데이!”
누군가 외치면, 사람들은 걸음을 멈추었다.
구경꾼은 곧 손님이 되었다.
나는 쥐약을 손에 들고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여러분, 오늘도 의심이 가득하지요?
‘저거 어제 본 거 쇼 아이가?’ 싶을 수도 있겠지요.
근데 장사꾼은 매일 새로 태어나야 손님 마음을 잡는 법입니다.”
군중이 킥킥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일부러 손바닥 위에 쥐약 여러 알을 올려놓았다.
그리고 소주병을 꺼내 들었다.
“보이소― 어제는 한 알! 오늘은 서너 알!
이거 먹고 내가 쓰러지면 오늘 이 도바 문 닫아야 지예.
하지만…”
나는 쥐약을 우적우적 씹고 소주를 들이켰다.
“끄으아―! 이 맛이 살아있다 아이가!”
군중 속에서 비명이 터졌다.
“와, 저 양반 진짜 미쳤다!”
“저래도 괜찮나!”
“이 약, 뭔가 다르네…”
나는 쐐기를 박듯 외쳤다.
“여러분의 두 눈으로 똑똑히 보입니까? 제가 아직 숨 쉬고 있지요?
사람에겐 무해! 쥐에겐 지옥!
이래도 안 믿으실 겁니까?”
사람들의 표정이 달라졌다.
의심이 믿음으로, 믿음이 사야겠다는 결심으로 바뀌는 그 찰나―
나는 그 눈빛을 낚아채는 데 이미 도가 텄다.
아이 손을 잡은 아낙이 속삭였다.
“야야, 저거 사두자. 밤마다 천장 뛰는 소리 듣기 싫다.”
“맞다. 약국 것은 힘도 없다카더라.”
배 타는 어부 차림 사내들이 앞다퉈 지갑을 꺼냈다.
나는 목청을 돋우었다.
“쥐약 두 통에 쥐틀 하나! 오늘 선착순 30명!
지금 안 사면 내일 울어도 소용없심더―!”
군중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양사장은 팔짱을 끼고 중얼거렸다.
“허허… 저놈, 이제 내 당가보다 한 수 위구만.
이 판은 한 성호 거라 해도 아무도 토 달 놈 없겠어.”
나는 속으로 묘한 전율을 느꼈다.
쥐약이 진짜든 가짜든 중요치 않았다.
사람들이 내 말에 웃고, 놀라고,
결국 지갑을 여는 그 순간―
그게 바로 내가 살아 있음을 증명하는 무대였다.
무너지는 다리.
자갈치 장사를 마치고, 공동어시장 골목 끝 허름한 포장마차에 앉았다.
빗방울이 아직도 추적추적 떨어지고, 지붕 위로 흐르는 물이 탁주잔 속에 몇 방울 떨어졌다.
양사장은 술을 한 모금 들이키더니, 뭔가 허무한 눈빛으로 중얼거렸다.
“한 사장, … 인생이란 게 말이다… 바다 위에 던져진 부표 같더라. 떠다니는 거지, 내 힘으론 방향을 못 정한다 아이가.”
그는 손에 내게 잔을 건네며 씁쓸하게 웃었다.
“나도 한때는 꿈이 있었지. 젊었을 적 외항선 타고, 세상 구경 좀 했던 때가 있었지/. 항구마다 불빛이 달랐고, 술맛도 달랐어. 근데 신기한 게 있더라. 못 사는 나라나 잘 사는 나라나… 사창가 아가씨 하룻밤 꽃값이 꼭 구두 한 켤레 값이더라고. 화폐가 뭐가 됐든, 그 나라 장인이 만든 수제 구두 값이랑 똑같았다. 그때 알았다, 세상이라는 게 참… 잔인하게도 공평하구나 하고.”
그는 잠시 잔을 내려놓고 허공을 바라봤다.
“근데 말이다… 내가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알아도, 집은 못 지켰다. 배 타고 들어오니, 아내가 젖먹이 애기 두고 집을 나가버린 거라.. 집 살라고 모은 돈도 깡그리 가져가서, 도박과 술에 절어 살다가 끝내 소식마저 끊기더라. 그날 이후로 내 속이 술독이 돼버렸다.”
나는 조용히 잔을 들어 올렸지만, 말은 하지 않았다.
양사장은 이어지는 말에 스스로 목이 메는지, 천천히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그때부터 내 길은 딱 정해져 있었어. 사람들 발길 닿는 길 위에서만 살았다. 구덕야구장 앞에서 오징어 팔고, 어떤 날은 부영극장 앞에서 암표 팔고… 세월 따라 여기저기 흘러 다니다 보니, 인생이란 게 결국 천막 도바 아래서 가짜 쥐약 팔고 앉아 있는 거라.”
그는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허허롭게 웃었다. 하지만 그 웃음뒤엔 서늘한 쓸쓸함이 묻어 있었다.
“웃기지 않나, 한 사장? 남들은 인생을 다리 놓고 집 짓는 걸로 채우는데… 내 인생은 그냥 ‘사라지는 사람들 발자국 소리’만 쫓아다닌 거라. 오늘도, 내일도, 길 위에서 팔고 또 팔고… 그게 다야.”
그의 눈빛이 술기운에 붉어졌지만, 그 속엔 지독한 생의 애환이 묻어 있었다.
그 순간 나는 알 수 있었다. 양사장이 파는 건 쥐약이나 쥐틀이 아니라 지난 세월에 갇혀버린 그 자신이라는 것을.
그날 밤, 포장마차를 나서자 비는 이미 잦아들었지만, 골목마다 고인 빗물이 네온사인을 일그러뜨리고 있었다. 양사장의 목소리가 계속 내 귓가를 떠나지 않았다.
“인생이란 게 부표 같다, 떠다니는 거지, 내 힘으론 방향을 못 정한다 아이가.”
그 한마디가, 어디선가 불어오는 차가운 바닷바람보다 더 깊숙이 내 가슴속을 파고들었다.
자갈치기 길 모퉁이 곰장어 냄새, 술 취한 군중들의 고함, 고래고기 할머니들의 손님 부르는 소리그 와중에 , 끼룩끼룩 먹이 찾는 갈매기 울음 … 그 모든 것이 갑자기 낯설고도 서글프게 다가왔다.
마치 앞으로 나의 운명도 저 안에 내 던져질 것만 같았다.
양사장이 살아온 궤적 — 바다 위를 떠돌던 젊은 날, 배신과 가출, 술에 잠긴 세월, 그리고 결국 길 위에서 흘려보낸 인생.
그게 단순히 한 남자의 과거가 아니라, 누군가가 밟아가고 있는 내일의 그림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지금 가는 이 길 끝엔… 저 양사장 같은 삶이 기다리고 있는 건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들자, 오늘 낮의 그 뜨거웠던 가슴이 갑자기 싸늘하게 식어버렸다.
그 순간, 어디선가 양사장의 담담한 음성이 다시 나의 뒤통수를 때렸다.
“사람들은 집을 짓고, 다리를 놓고, 삶을 쌓아 올리며 살지만… 나는 그냥 사람들 발자국 소리만 쫓아다녔다.”
나는 양사장이 남긴 말이 단순한 고백으로 만 들리지 않았다.
그것은 마치 앞서 걸어간 자가 뒤따르는 자에게 남기는 경고처럼 느껴졌다.
어둠 속, 자갈치 바다 건너 영도 남항의 네온 불빛이 무심히 반짝이고 있었다.
나는 그 불빛을 보면서 속으로 독백처럼 외쳤다.
“부표처럼 떠밀려가긴 싫다. 내 닻은… 내가 내려야지.”
그러나 마음 한편, 나의 청춘이, 노점이란 길 위에서 표류하고 있다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끝없이 맴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