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바 위에 뜬 별 2부 제 13장
1. 장터 모퉁이의 아이
창선동 먹자골목에서 한 블록 떨어진 모퉁이,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 길목에 늘 작은 보자기를 펴고 앉는 황씨 성을 가진 할머니가 있었다.
나이가 칠십은 족히 넘어 보였다. 보자기 위에는 참깨 몇 줌, 메주된장 몇 덩이, 삼추나 시금치등 푸성귀 몇 단이 전부였다. 누가 보아도 번듯한 장사는 아니었다. 그저 산비탈 텃밭에서 조금씩 가꾼 것을 내다 팔며 하루 끼니를 잇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그 보잘것없는 보자기 앞이 따스해 보였던 것은, 언제나 그 옆에 귀남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열 살 남짓한 아이가 늘 반달같은 눈에 작은 웃음을 달고 황 할머니 곁에 앉아 있었다.
귀남이는 몇 시간이고 땡볕아래서 고구마줄기를 벗기거나 잔파를 다듬는 등 할머니를 도우고 있었다. 할머니가 중풍후유증으로 손의 움직임이 많이 더디었기 때문이었다.
새카맣게 그을은 얼굴, 아기 고사리같이 여리고 작은 손가락이 아릴 법도 하고 , 땀방울이 이마를 타고 줄줄 흘러내렸지만, 아이는 불평 한마디 하지 않았다. 오히려 손님이 지나가면 고개를 들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이모, 참깨 사가이소. 우리 할매가 직접 말린 기라예.”
맑은 목소리로 건네는 말에 손님들은 흔쾌히 지갑을 열었다.
노점상들 사이에서도 귀남이는 귀여움을 받았다. 커피 심부름이나 잔돈교환등 자질구레한 심부름을 맡기면, 늘 기민하게 다녀와서 거스름돈을 딱 맞게 내밀었다.
“얘는 애 어른 같다니까.”
“국제시장 전속 심부름꾼이라 해도 믿겠네. 잔돈 한 푼 틀리는 법이 없으니.”
이런 귀남이 덕분에 황 할머니가 가져오는 나물이나 채소는 곧잘 이웃 노점상들에게 가장 먼저 팔려나갔다.
아이를 바라보는 이들의 마음은 한결같았다. 정겹고, 안쓰럽고, 대견했다.
2. 사라진 아이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황 할머니가 장터에 나왔지만 귀남이는 보이지 않았다. 할머니는 혼자 보자기 앞에 앉아 있었는데, 어깨는 평소보다 더 움추려져 있었고, 얼굴은 걱정과 근심으로 뒤덮여 있었다.
나는 그런 할머니 모습에서 " 귀남이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게 분명하다."고 직감했다.
그 날 장사를 마친 뒤, 말숙씨를 붙들고 물었다.
“말숙씨. 오늘 저골목 끄트머리 황할머니가 혼자 나왔던데, 매일같이 붙어있던 아이가 안보이더군요.?”
“아, 갸 이름이 귀남이라고, 안그래도 요 며칠 아이가 안보여 내가 할머니에게 물어봤어요. 서대신동 골짜기 산동네 사는데, 버스비 아낀다고 여기까지 매일 걸어 내려오는 할매 아입니꺼. 며칠 전 귀남이가 열이 펄펄 났는데. 병원 갈 돈도 없고, 약 살 돈도 없어서 이틀, 사흘을 그냥 앓기만 했답니더. 그래서 오늘은 애를 이웃집에 맡기고, 약값이라도 벌어볼려고 억지로 장터에 나왔다고 합디다. 쯔쯧 할머니 혼자 아이 키우는데ᆢ”
늘 그림자처럼 할머니 곁에 있던 아이가 없는, 보자기 앞 풍경이, 나의 마음을 하루내내 어수선 하게 했다.
3. 할머니의 눈물
그날 저녁, 장사를 접고난 후 나는 말숙씨와 함께 황 할머니에게 갔다..
안면만 약간 있다 뿐이지 그다지 친분이 없는 분이었다. 그래도 귀남이가 걱정되어 인사를 하며 성큼 말을 건넸다.
“할머니, 요즘 많이 힘드시죠? 귀남이가 아프다든데 좀 어떻습니까?”
할머니는 갑작스런 나의 출현에 약간 당황한 모습을보이다가 이내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애가 며칠째 앓아누웠는데, 내가 챙길 힘도 없고, 약도 못 사줬심더. 그래서 오늘은 얼매라도 돈을 만져볼라꼬, 이웃집에 봐달라 해놓고 나온 기라예. 나는 산비탈 밭에서 나는 콩으로 된장 담아오고, 시금치 뜯어와 팔고… 그것마저 없으면 막막한 기라예. 근데 손주새끼한테 밥 한 끼, 약 한 번 못 챙겨준 게… 가심을 찢어놓습니더.”
그새 흘러내린 눈물로 할머니의 거칠게 주름진 손등은 눈물에 젖어 있었다.
말숙씨가 옆에서 거들고 나섰다.
“성호씨, 아무래도 애 상태가 그냥 지나칠 일이 아닌 것 같애. 애들은 보통하루 이틀 아프다가도 금방 일어나 뛰노는데. 이거 그냥 두면 안 되겠심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채 팔지 못한 곡물과 채소들로 불룩한 할머니의 낡은 보자기가 내 눈에 가득 들어왔다. 평소에 예사로 보았던 그냥 그런 보자기였다. 근데 갑자기 콧등이 물씬 시큰해졌다.
말숙씨와 헤어지고 집 앞에 도착했는데도, 나는 바로 다마스에서 내리지 못했다.
시동을 끄고도 한참을 앉아 있었다. 답답한마음을가라앉히려 담배에 불을 붙였다가, 연기를 들이마시기도 전에 다시 껐다. 그리고 다시 불을 붙였다.
귀남이 얼굴이 떠올랐다가, 이내 지워졌다. 얼굴을 떠올릴 만큼 나는 그 아이를 잘 알지 못했다.
그런 사실이 더 내 심사를 긁었다.
악어형님이 살아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그러나 곧바로 그 생각을 밀어냈다.
그 사람은 이미 죽었고, 그게 이 일과 무슨 상관이 있나 싶었다.
그런데도 차 문을 열 수가 없었다.
지금 내리면, 뭔가 해야 할 것 같았다.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인데, 하지만 하지 않기에도 이미 늦은 것 같았다.
내 말을 들어줄 사람이 없었다. 이유모를 화가 마구 내 온 몸을 태우며 덮어 오는것 같았다.
4. 운영위원회의 토론
지난번 리어카보관 거부 사건 때 만들었던 노점운영위원회를 개최했다. 매달 리어카 보관을 위한 경비지출보고때만 한번씩 열리던 회의체이지만 모임 간사인 말숙씨의 적극적인 주장으로 임시회의를 열게되었었다.
말숙씨가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
“저는 우리가 리어카보관이나 단속반이랑 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웃들과의 관계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시장사람들 심부름이라면 도맡아 하던 귀남이가 아픈 지 며칠이나 되었답니다. 그 집 사정이 매우 딱한데 어떻게 도울방법을 마련봤으면 합니다 .”
회의장은 잠시 조용해졌다. 술렁이던 분위기를 가른 건 박사장이라고 불리는 한 노점상의 퉁명스러운 목소리였다.
“위원장, 우리도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데, 그 할매까지 챙길 힘이 있겠습니꺼? 다들 사정 딱하지 않습니꺼. 게다가 할머니가 우리처럼 운영회비를 내는 정회원도아닌데”
그러자 대팔이가 불끈 화를 내며 맞받았다.
“박사장 행님요. 그라모 포기하자는 기가? 아이 병명이라도 알아야 할 것아이가 눈앞에서 죽어가는데? 우리 대책위원회가 괜히 있는 기 아입니다. 같이 살아남자는 게 정신인데, 회원 아니라고 황할머니 같은 분 외면하면 우린 염소대가리를 욕할 자격없습니다”
운영위원장인 구씨형님이 말리고나섰다.
"대팔아, 귀남이네 사정이 어려운것은 알겠는데, 박사장님 말씀이 틀린 건없다. 내 생각에도 운영위원회 차원에서, 이 건은 힘든다. 우리가 모은 회비들은 리어카 보관과 단속대비를위한 목적이 있는 돈인데 용도외 지출은 안된다는게 맞다 "
대팔이가 욱하는 심사로 구씨형님께 몇마디 더하려는데 내가 그의 소매를 붙잡았다.
참석한 사람들 대부분의 의견이, 딱하지만 운영위규칙에 따라야 한다는 쪽으로 기울었다.
그 때, 대팔이 이모님이 차고있던 전대를 탁자위에 탁 소리를 내며 내려놓았다.
“보래이. 이사람들아! 이 바닥이 언제부터 규칙 따지고 살았노.맨날 보는 아기가 몇날 며칠째 병원도 못가보고 아프다는데.지금 회원 비회원 따질끼가? 엄연히 말하면 너거들도 모두 불법노점상들 아이가? 언제부터 법 따지고 살았노? 다 살아볼라고 길바닥 장사 하는거 아이가? 이 돈 갖고 진찰부터 먼저 받아봐라 ”
대팔 이모님의 단호한 한마디에, 모두들 눈치를 보다 다시 결론을 내었다. 앞으로 3일간 그날 하루 벌이에서 천 원씩 자발적으로 갹출하기로하였다.
5. 갹출과 병원으로
며칠 뒤, 운영위에서 모은 돈과 영숙 씨가 보태준 돈 까지 30만 원이 마련됐다.
“할머니, 이 돈으로 우선 병원부터 가봅시다. 상황이 어떤지 확인해야 쓰지 않겠습니꺼.”
황 할머니는 봉투를 두 손으로 움켜쥐며 울먹였다.
“내 평생 이런 은혜 받아보긴 첨입니더. 아이 살릴 수만 있다면 뭐든 하겠심더.”
그 날, 귀남이를 데리고 병원으로 향했다. 귀남이는 그새 다른아이가 되어있었다. 팔팔하게 시장을 휘젖던 아이가 시든 콩나물같은얼굴을 하고있었다.
“아저씨, 나 괜찮을끼다. 병원 가면 나을 수 있다 아이가?”
나는 대답을 하지 못하고 귀남이 머리를 쓰다듬었다.
6. 의사의 진단
진료실에서 의사는 아이를 살펴보더니 얼굴이 굳어졌다.
“단순한 열병이 아닙니다. 큰 병원에 가서 진찰 받아봐야 할 것같습니다. 마침 부산대학병원에 제 전문의가 동기가 있으니 전화해놓을테니.지금 바로가십시오.”
정밀검사가 이어졌다. 피를 여러 차례 뽑고, 뼈에 바늘을 찔러 골수를 채취하는 과정에서 귀남이는 얼굴을 찡그렸지만 소리 내 울지는 않았다. 할머니는 그 모습을 보며 손수건을 입에 물고 흐느꼈다.
며칠 뒤, 담당 교수가 우리를 불렀다.
그는 꽤 심각한 표정으로 설명했다.
“아이의 병명은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입니다. 조기에 발견했기에 치료하면 완치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치료 과정이 길고 힘듭니다. 항암제를 투여하고, 수혈을 반복하며, 2년 이상 치료를 이어가야 합니다.”
할머니는 귀남이가 백혈병에 걸렸다는 말에 정신이 거의 나간 사람이 되어 아무 말도 못하는것같았다.
나도 처음 진찰한 의사의 소견을 들었던터라 어느정도 각오는 되어있었지만 막상 병명을 듣자 가슴이 무너지는것같았다.
속이 타들어가는 심정으로 물었다.
“선생님, 치료비는 얼마나 들겠습니까?”
의사는 차트를 덮으며 담담하게 말했다.
“입원비와 검사비는 보험 적용이 됩니다. 그러나 문제는 항암제입니다. 수입 신약이라 비급여입니다.대략 한 달에 백만 원 이상, 전체 치료비는 1,500만 원 정도 필요합니다.”
할머니는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 울음을 터뜨렸다.
“아이고야, 집 한 채 값이라니… 나는 움막 하나뿐인데, 그 돈을 내가 어찌 마련하노…”
시약산과 구덕산 사이에 구덕령고개가 있다. 예전에는 서대신동에서 구포로 가는 지름길이었다. 산을 돌아가지 않고 고개를 넘으면 시간이 덜 걸렸다. 짐을 진 사람들이 이 고개에 모였고, 쉬어 가며 물건을 풀었다. 자연스럽게 장이 서기도했다. 부산 바다에서 잡은 생선과 김해들녁에서 낙동강을 건너온 곡식들을 보부상들끼리 교환 하는 고개였다. 지형이 가팔라 사람들의 근접이 어려운 곳이었다.
전쟁 뒤에는 피난민들과 넝마주이 같이 집도 절도 없는, 어려운 사람들이 움막을 치고 살았다. 그 중 일부 사람들이 생계를 위해 묘목이나 꽃을 재배하기시작했다.
농원들이 자리 잡기 시작 하면서 거기서 일하던 인부들 또한 처음에는 주로 비닐막을 치고 지냈다. 그게 무허가 집이 되고, 작은 마을이 되었다. 고개 주변의 비교적 평탄한 곳에는 작은 농원이 여럿 생겼다. 이들은 본격적으로 꽃을 키워 서대신동 쪽으로 내려보냈다. 그래서 이곳은 꽃동네라 불렀다. 행정 이름은 아니었다.
도심은 가깝다. 차로 내려가면 서대신동 시내가 바로 코앞이 다. 대신 고도가 높았다. 평일에는 차도 사람도 드물다. 등산객들이 오르내릴 때만 사람들이 보인다. 날이 맑으면 시내와 바다 쪽이 내려다보였다.
귀남이네 집은 달랑 방 하나, 부엌 하나였다. 지은지 꽤 오래된 무허가 슬레이트 지붕이었다. 할머니가 말없이 문을 열었다. 귀남이가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집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더이상 무슨 위로의 말을 전할 수가 없었다.
차를 세워둔 내원정사 입구 주차장으로 발길을 돌렸다. 마침 사시불공 시간이 막 끝났는지 중년 나이의 여성 불자 몇몇이 절문 앞에서 합장을 하고읺었다.
절집은 크고 웅장했다. 불자들이 탄 외제 승용차 몇 대가 소리도 없이 사찰경내를 빠져나갔다.
나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이동네는 하늘이 가까왔다. 그 아래에서 살아가는 일이 어떤 이들에게는 쉽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들에게는 도무지 쉽지 않아 보였다. 절 입구에 어디서 날아 온 철 이른 낙엽 하나가 떨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