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바 위에 뜬 별 2부 제14화.
1.밤새 쓴 글
그날 밤,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귀남이가 병실에서 이를 악물고 피를 뽑히던 모습, 황 할머니가 손수건으로 입을 틀어막고 흐느끼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 얼굴들이 눈앞에 겹치자, 내 가슴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무언가를 해야만했다.
책상 위에 종이를 펼쳤다. 펜을 잡았지만 처음엔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곧 손끝에서 문장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귀남이는 열 살 소녀입니다. 장터 어귀에서 매일 할머니 옆을 지키며 고구마껍질을 벗기고 참깨 한 줌, 된장 몇 덩이, 시금치 몇 단을 팔았습니다. 손님이 오면 누구보다 먼저 눈웃음을 지으며 맞이했고, 고사리손으로 잔돈을 틀리지 않고 내밀었습니다…’
귀남이의 웃는 얼굴을 떠올리며, 글자마다 안타까운 마음을 실었다. 마지막 부분엔 이렇게 적었다.
“우리가 내는 천 원, 만 원이 아이의 생명을 지킵니다. 작은 장터의 연대가 우리 자신과 내가 보는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다.
우리는 가족의 생계를 위해 매일같이 집요한 단속에 이리저리 쫓기며 도로위의 힘든 삶을 사는것은 사실입니다.
그래서
감히 내주위를 돌아보는 것은 고난스런 인생길에 사치라고 밖에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누군가 어려울때. 우리가 우리를 안지 못한다면
뉘라서 우리를 안아주겠습니까,
귀남이는 국가의 보호도 사회의 보실핌에서도 외면 당한 아이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10살소녀 귀남이와 그 할머니를 외면해선 안됩니다
비록 우리가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거리의 삶을 살고 있지만.
오늘만은.
이순간.
우리의 마음이 서 있어야 하는 곳은 거리가 아닙니다.
바로
귀남이와 할머니 곁이여야 합니다.
그 이유는 분명합니다.
그 두사람은 바로 우리의 다른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원고를 덮을 때, 새벽이 다가오고 있었다. 창밖에 새 울음소리가 들렸다.
2. 전단지에 실리는 마음
다음 날, 대책위 동료들을 모아 내가 쓴 글을 읽어주었다. 말숙씨가 끝부분에서 눈물을 훔쳤다.
“성호씨, 이 글… 그대로 인쇄해 뿌립시다. 사람들 가슴을 울릴 끼라.”
구씨형님이 발 벗고 나섰다. “내 인쇄소 잘 아는 데 있다.. 사정 말하면 값싸게 해줄 기라.”
대팔이가 “ 인쇄비는 내가 부담한다. 이 길로 바로 가서 인쇄해가지고 시장사람들에게 확 뿌리뿌자.”라고 코끝이 벌건 얼굴로 말했다.
우리는 인쇄소에 원고를 넘겼다. 주인은 전단을 훑어보더니 한숨부터 먼저 내쉬었다.
“우리집에도 초등학교 다니는 딸내미가 있습니다. 고작 이걸 갖고 기부라고 말하기는 뭐하지만 작은 마음 하나 보탠다고.고마 무료로 찍어드리겠심더.”
오후쯤 수천 장의 전단이 바로 쏟아져 나왔다. 잉크 냄새가 짙게 밴 뭉치를 들었을 때, 손이 떨렸다. 이제 시작이다.
3. 시장 구석구석으로
우리는 아침부터 전단을 들고 시장 구석구석을 훝었다. 장바구니에, 상점 카운터 위에, 버스 정류장 벤치에 전단을 놓았다.
나는 큰 소리로 외쳤다.
“도와주이소! 귀남이는 열 살 소녀입니다! 살려야 합니더!”
사람들은 처음엔 무심히 지나쳤지만, 전단 속 귀남이 사진을 보고 발걸음을 멈추었다. 환하게 웃는 아이의 얼굴과 절절한 글귀가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었다.
“아이고, 이기 무신일이고. 남의 일이 아니라 꼭 내 손주 새끼 같네.”
“다무 얼마라도 보태야지.”
모금함에 동전이 떨어지는 소리.간혹 지폐도 제법 쌓이고있었다
흔들리는 삶속에서 흔들리지 않는 마음들이 점차 힘을 합치고있었다.
4. 500만 원의 기적
며칠 사이, 노점상 하루 벌이에서 내는 돈, 손님들의 성금, 도매상과 인근 상가의 후원이 더해졌다. 처음엔 시큰둥하던 상인들도 전단을 읽고 점점 마음을 바꾸었다.
국제시장에서 시작된 모금운동이 전단지를 타고인근 시장으로 쏜살같이 전파되었다.부평동시장.자갈치시장에서 폭발같은 반응이 일었다.쥐틀장사 양사장은 장사 도중,수시로 그의 도바 옆에 모여든 손님들에게 전단지를 나누어주며 그 전설의 당가로 손님들의 관심이 아닌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 사장님,사모님. 내 말 하나도 거짓부렁없습니다. 저어기 국제시장끄트머리 대청동큰길근처에 가서 귀남이가 누구 한번 물어보이소? 열살짜리 가시나가 손이 얼마나 빠른지 수북히 쌓인 고구마줄기 까는데 손가락이 안보인다 아입니꺼?
장사는 병약한 할매가 아니라 지금까지 열살짜리 아이가 다해왔심더. 공부 잘하제. 정말 착하제.전단지 한번 보이소 아이가 얼마나 눈이 초롱초롱 귀여운지? 이래 예쁜 아이가 지금 돈이 없어 죽을날만 기다리고있으니 증말 기가찬 일 아닙니꺼?
사실, 야아가 국제시장 효녀심청이라고,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저거 할무니가 이가 아파 식사를 못드시면 지도 따라 굶는 애 아입니꺼? 심청이는 공양미 삼백석이 없어 뱃사람들에게 팔려갔지만. 이 아이는 고칠라면 천오백만원이라는 큰돈이드 는데 치료비가 없어, 병들고 늙은 할머니를 두고 먼저 떠나야 하는게 정말 기가찹니다?
혹시 여기 불자님도계시고. 예수님믿는 형제 자매님들이 혹 계실지 모르지만. 사실 부처님께 바치는 보시를 꼭 절에 가서 해야되는 법이 있습니까.일체중생 실유불성 처처불심이라꼬 불쌍한 아이 돕는 이 자리가 바로 청정도량이고,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자리가 바로 예배당아니겠습니까? 수양산 그늘이 십리를 간다고 여기 모이신 분들. 모두 십시일반하여 우리가 이 아이의 생명을 살리는 그늘이 되어 주시는 선행을 베풀어주신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양사장이 구수한 입담으로 귀남이 칭찬을 하다가, 갑자기 슬픈 곡조로 병원비가 없어 살릴수 있는 멀쩡한 아이가 죽어간다는 절절한 호소를 하면 .순식간에 모금함에 지폐가 쌓였다.
그렇게 일주일만에, 500만 원이라는 생각도 못한 거금이 걷혔다. 나는 장부를 정리하며 대책위원들에게 말했다.
“오늘까지 모인 금액, 오백만 원 이미 넘었습니다. 모두의 노력과 정성 덕분입니다. 귀남이를대신하여 감사드립니다.”
그 순간 박수가 터졌다. 황 할머니는 시장사람들앞에 무릎을 꿇다시피 하며 고마움에 울부짖었다.
“우리 귀남이가… 이리 큰 은혜를 이리 큰 사랑을 받다니…너무너무 감사합니다. 저승에가서도 내가 절대 잊지않겠습니다.”
하지만 5백만으로는 5개월밬에 못버틴다.남은 돈은 천만원이나 되는 거액이다. 내가 다섯살때 아버지께서 큰빚을 남기고 간암으로 돌아가셨다. 여덟살 때 두살 아래 여동생이 백일해를 앓았다. 약 한첩 제대로 못먹이고 묻어야만 했다. 나는 어째든 틀림없이 귀남이 치료를 위한 돈을 마련힐것이다. 근데 무슨수로 어떻게 ?
5. 시장 사람들, 그러나 불발
그무렵 mBs방송국에 근무하는 후배 민우가 로컬 프로담당피디와 같이 나를 찿아왔다. "선배. 시장사람들 이야기 라는 프로 아시죠. 시장의 정겨운이야기를 담는 프로입니다. 출연 좀 하시죠. 재미있는 에피소드와 함께 국제시장을 소개해주심 됩니다"
궁즉지통이란 말이 딱 맞았다. 귀남이를 살릴 수 있는 길이 생겼다. 마침 담당피디와 민우가 직장동료를 떠나 서로 죽이 잘맞는 사이라고했다.
촬영 날, 나는 마음속에 준비해둔 원고를 품에 넣고 카메라 앞에 앉았다. 기자는 시장 분위기를 물었지만, 나는 곧장 원고를 꺼냈다.
“국제시장에 최근 일어난 꼭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나는 귀남이네 사연을 낭독했다. 시장 사람들과 상인들이 이미 500만 원을 모았다 하지만 아직 천만 원이 더 필요하다고, 제발 도와달라고 절절히 호소했다.
카메라 뒤에서 스태프들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고, 담당피디가 양팔을 십자모양 으로 포개며 계속 “컷” 사인을 보냈다. 그러나 나는 멈추지 않았다. 목소리는 떨리고, 눈가엔 눈물이 고였지만, 끝까지 다 읽어 내려갔다.
촬영은 계속됐으나, 나중에 확인해보니 그 장면은 모두 편집·삭제되어 있었다. 방송에선 시장의 소소한 일상만 나갔다. 나는 깊은 좌절감에 빠졌다. 내가 그렇게 절실히 말했는데… 결국 세상에 전해지지 못했다.
6. 특별 인터뷰 제안
며칠 뒤, 왕비다방으로 나를 급히 찿는 전화가 울렸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온 목소리는 〈시장 사람들〉의 PD였다.
“성호 씨, 지난번 말씀… 사실 저희도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하지만 프로그램 성격상 내보낼 수 없었어요. 대신 특별 인터뷰를 마련하기로 편성국장님과 합의 보았습니다. 스튜디오에서 정식으로, 선생님의 목소리로 귀남 가족이야기를 세상에 전해주세요”
순간 가슴이 뛰었다. 좌절로 무너졌던 마음에 다시 불씨가 일었다. 이번엔 다르다. 이번엔 반드시 귀남이를 살릴 수 있다.
1. 낯선 건물 앞에서
부산 늦겨울 바람이 유난히 날카롭게 불어왔다. 새벽부터 마음이 불안정했다. 전날 밤, 생전 꿈에 나타나지 않던 여동생이 꿈속에서 나타났다. 어릴때 모습 그대로 였다. 꼭 생시같았다.
초라하고 작은 관이 나가던 그 날. 오열하시던 어머니 얼굴이 떠올랐다.그 아이가 힘들어하며 마지막 눈을 감던 모습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부산MBS 방송국 건물 앞에 섰을 때, 나는 잠시 걸음을 멈췄다. 낯선 건물의 위압감에 심장이 조여들었다. 회색 구름 사이로 햇빛이 스며들어 방송국 입구를 비추고있었다.
2. 분주한 촬영 준비
로비로 들어서자, 대리석 바닥이 오랫만에 신은 구두 밑창에서 딱딱하게 울렸다. 벽면 대형 모니터에서는 앵커의 리허설 장면이 소리 없이 반복되고 있었다. 방송국 직원들이 분주하게 오가며 내 옆을 스쳐 지나갔다.
“한 선생님, 스튜디오 2번으로 안내드리겠습니다.”
조연출이 내게 명찰을 내밀었다.
스튜디오 문을 열자, 생각보다 넓고 큰 공간이 눈에 들어왔다. 천장에는 크레인 카메라가 레일을 따라 움직이고 있었고, 수십 개의 조명이 그리드에 매달려 있었다. 조명 기사들의 목소리가 메아리쳤다.
“탑라이트 30% 줄입시다!”
“오케이, 키라이트 그대로. 백라이트 조금 업!”
바닥에는 엑스 표시가 여러 개 붙어 있었다. 인터뷰 대상이 서야 할 자리였다. 붐 오퍼레이터가 마이크를 조정하며 외쳤다.
“사운드 체크 갑니다. 원투, 원투. 라발리에 주파수 클리어.”
작은 핀 마이크가 내 셔츠 안쪽에 고정되었을 때, 차가운 금속이 닿아 몸이 순간 움찔했다.
3. 스태프들의 표정
카메라 감독은 뷰파인더에 눈을 대고 말했다.
“캠 원, 와이드 샷. 캠 투, 클로즈업 대기. 캠 쓰리는 오버숄더.”
모니터 화면에는 내 어깨 너머 각도가 이미 잡혀 있었다. 사운드 엔지니어가 믹서를 조정하며 내게 말했다.
“목소리 조금만 크게 말씀해 주실래요? 네, 좋습니다.”
분장실에서 간단히 파우더를 바르고 나온 내 얼굴은 긴장으로 굳어 있었지만,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거울을 내밀었을 때 나는 속으로 다짐했다. 이제부터 내 얼굴이 시장 사람들을 대표하는 얼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