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별

작별 1.이상주 600호

by 손병호

임병주는 문화 센터 강좌에 잘 다녀 왔느냐는 아내의 인사는 건성으로 받으면서 서재겸.기타연주연습실로틀어갔다.임병주는 문화 센터 강좌에 잘 다녀 왔느냐는 아내의 인사는 건성으로 받으면서 서재겸.기타연주연습실로틀어갔다.

말이 연습실이지 그냥 아파트 맨 안쪽 방이었다.

벽지는 군데군데 들떠 있었고, 창틀 아래에는 오래된 못 자국이 남아 있었다.


재건축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집주인은 “미리 말해 줄 테니 언제든 나갈 준비는 해 두라”고 했지만, 그 말에는 날짜가 없었다. 날짜가 없는 말은 사람을 계속 준비 상태로 묶어 둔다.


병주는 기타 케이스를 바닥에 눕혔다.

검은색 하드 케이스였다. 모서리에는 잔기스가 있었고, 금속 잠금장치는 닳아 빛이 흐려져 있었다.


그는 잠금장치를 바로 열지 않았다. 케이스를 한 번 밀어 정렬한 뒤에야 천천히 열었다.

안쪽에서 짙은 갈색의 기타가 드러났다.

이상주 수제 기타 600호.


측판과 후판은 인도 로즈우드였다. 빛을 받으면 거의 검게 보이다가, 각도를 바꾸면 붉은 결이 살아났다.


상판은 스프루스였고, 도장은 얇았다. 얇아서 처음엔 불안했지만, 손톱으로 가볍게 두드리면 알 수 있었다. 소리를 가두지 않는 도장이라는 걸.


병주는 기타를 꺼내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무게 중심이 정확했다.


넥 쪽으로 쏠리지도, 바디 쪽으로 기울지도 않았다. 다리를 약간 벌린 상태에서 올려두면, 악기가 사람에게 기대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악기를 받치고 있다는 느낌이 분명했다.


이 기타를 샀을 때, 그는 그 감각 하나만으로도 오래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헤드 안쪽의 플레이트를 손끝으로 짚었다.

600만 원이라는 돈을 들여 무리해서 장만 했던 기타였다.


은행을 그만두고 나왔을 때,. 그는 기타리스트가 되겠다고 말하지 않았다. 다만 기타 없이 다시는 살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그 차이는 컸다.


안정적인 가정이 삽시간에 무너졌다

고생이라곤 모르던 전처는 일년만에 가난때문에 이혼서류를 내밀었다.


지금의 아내는 취미로 개인레슨을 받던 병주와 비슷한 나이의 30대 중반 이혼녀였다.


특별히 사랑한다는 열정도.서로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 있었던것도 아니었다.


둘다 딱히 만나던 사람도 없었고 그냥 개인강습 끝내고 커피 한 잔이, 밥으로. 밥이 술 한잔으로 이어지다 보니 어느날 동거인이 되어 었었다.

법적으로는 동거인이었다.



그 세월이 벌써 십여년에 이르고 있었다.그녀에게 서울 강남에 스타트기업으로 일찍 성공한 아들ㅡ중학부터 대학까지 병주가 어렵사리 강습을 하여 번돈으로 학자금을 대어 주었다. ㅡ이 있었지만 의례적인 안부 전화만 있을뿐이었다.


병주는 기타 줄을 하나하나 탄현해 보았다.

저음은 둔하지 않았고, 고음은 얇게 찢어지지 않았다. 무엇보다 마음에 드는 건 소리가 끝나기 직전의 잔향이었다.


소리가 사라지는 게 아니라, 천천히 정리되는 느낌. 공명통 안에서 남은 울림이 손바닥을 통해 전해졌다.

그는 연주를 하지 않았다.



연주는 지금 이 방에 어울리지 않았다. 대신 아랑훼즈 협주곡의 첫 마디를 떠올렸다. 머릿속에서는 늘 이어졌지만, 손으로 끝까지 완성해 본 적은 없었다. 언제나 중간에서 멈췄다. 완성되지 않은 곡은 이상하게도 사람을 포기하게 만들지 않았다.


문화센터 직원의 사무적인 말이 떠올랐다.

“선생님, 다음 달부터는 강의가 어렵겠습니다.”


수강 신청자가 없거나 강좌개설 최저인원이 차지않았다는 말이다.


냉정한 어투지만 그것은 사실 병주의 자존심을 배려해주는 선택된 단어들이었다.


병주는 고개를 끄덕였고, 직원은 그걸 이해로 받아들였다. 말은 이미 쓸모가 없어진 상태였다.


아파트 엘리베이터 앞 병주네 우편함에 종이가 수북했다. 마치 주인이 살지않는 집 처럼 각종고지서가 범람했다.


아내나 병주다 둘다 외면하여 챙기지 않은결과였다.



여러 달 밀린 관리비 고지서와 전기료 체납 안내가 겹쳐 나왔다. 그는 봉투를 접어 주머니에 넣었다.


아내에게 보여 주고 싶지 않았다. 보여 주면, 그다음 장면이 너무 분명했기 때문이다.


병주는 기타를 다시 내려다보았다.

며칠 전, 그는 이 수제기타를 당근 중고거래에 올렸다. 200만 원. 가격을 입력할 때 마음보다 손이 먼저 떨려 핸드폰 글자입력을 세번이나반복했다.


그날 밤에 당근 메시지가 떴다.

“50대 남자입니다. 백만 원에 바로 거래 가능합니까.”

백만 원.

관리비와 전기료를 합치면 거의 맞아떨어지는 금액이었다.


너무 정확해서 더 잔인했다. 병주는 답장을 하지 않았다. 답장을 하는 순간, 이 기타가 아무런 물건이 되어 버릴 것 같았다.



그는 기타 상판 위를 다시 손으로 천천히 쓸었다. 잘 만든 기타는 연주할 때만 소리를 내는 게 아니었다. 가만히 만져도, 악기는 자기 존재를 입증하는것같았다.


병주는 케이스를 덮었다.

지퍼를 끝까지 올리지 않았다. 중간에서 멈췄다.


그때 휴대폰이 울렸다.

교향악단 협연 오디션 결과였다.

“이번 협연은 다른 연주자로 결정되었습니다.”


병주는 문자를 읽고 화면을 바로 끄지 않았다. 떨어졌다는 사실보다, 이제 더 이상 확인할 것이 그에게는 없는 것이었다.



방 밖에서 아내가 불렀다.

병주는 대답하지 않았다. 지금은 이 방에 있는것이 차라리 더 나았다.


그는 다시 기타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사람처럼. 아니, 사람보다 더 오래 같이 산 것처럼.

이상주 600호는 손에 잘 붙는 악기였다. 로즈우드의 측판과 후판은 각도에 따라 붉은 결을 드러냈고, 스프루스 상판은 얇은 도장 아래에서 결이 또렷하게 살아 있었다. 스프루스는 빠른 패시지에서 소리를 또박또박 내주고, 로즈우드는 음을 반짝이게 만들며 저음을 단단하게 받쳐 준다고들 말한다.


병주는 그 말을 ‘설명’이 아니라 ‘체험’으로 알고 있었다. 손끝을 올리는 순간, 음이 늦게 따라오는 법이 없었다. 박자를 속이지도, 대충 뭉개지도 않았다.


그는 의자에 깊숙히 앉지 않았다. 그렇게 앉으면 연주가 연습처럼 느껴졌다. 오늘은 연습이 아니라 작별 인사에 가까웠다. 왼발 받침을 세우고 기타를 무릎위에 올렸다. 넥은 과하게 기울지 않았고, 바디는 허벅지에 억지로 매달리지 않았다. 무게중심이 기막히게 맞아 떨어지는 악기는, 사람의 자세까지 바르게 만든다.


병주는 손톱을 확인했다. 길이, 각도, 끝의 곡선. 클래식 기타리스트들이 인터뷰에서 자주 말하는 것도 결국 그거였다. 좋은 악기는 손의 작은 습관까지 그대로 돌려준다.


그래서 거짓 연주가 안 된다. 소리를 가공해 주지 않는다. 대신, 제대로 치면 제대로 울린다. 연주자가 색을 바꾸려 하면 색을 바꿀 수 있게 길을 내준다.


빠르게 반응하고, 음마다 중심이 서고, 비브라토나 터치로 색을 조절하기 쉬운 악기. 병주는 자기 기타가 그런 쪽에 가까운 걸 알고 있었다.


그는 아랑훼즈 협주곡 악보를 펼쳤다. 종이는 오래 만져 가장자리가 부드러워져 있었다. 첫 장을 넘기며 병주는 허탈함에 소리잆는 웃음을 웃었다. 늘 여기서 시작했다. 늘 여기서 “오늘은 끝까지”를 생각했다. 그리고 늘 중간에서 실수를 했다.



첫 악장을 천천히 시작했다. 오른손은 아포얀도와 티란도를 섞어 멜로디를 세웠고, 반주는 음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지 않게 낮게 눌렀다.


어떤 기타는 저음이 커서 다른 줄을 덮어 버린다. 어떤 기타는 고음이 얇아서 멜로디가 멀어진다. 그런데 600호는 줄과 줄 사이가 또렷했다.


화음이 쌓여도 각 음이 서로의 목을 조르지 않았다. “분리감”이라는 말이 이런 거였다.



중간으로 넘어가자, 늘 그를 멈춰 세우던 구간이 왔다. 왼손이 높은 포지션으로 훅 올라가며 바레가 길게 이어지고, 그 위로 빠른 음형이 쏟아지는 부분.


악보는 손을 한 개 더 달아 놓은 사람처럼 써 놓았고, 어떤 연주자들은 거기서 음을 덜어 내거나 자리를 바꿔 해결한다고도 한다.


병주도 한동안 그 ‘타협’을 생각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타협은 그를 편하게 만들지 못했다. 오히려 끝까지 붙잡게 했다.



그는 왼손 엄지를 조금 안쪽으로 숨겼다. 검지 바레의 힘을 줄이고, 대신 손목 각도를 아주 미세하게 바꿨다. 오른손은 음을 쫓지 않았다. 박자를 먼저 잡고 그 안에 음을 넣었다. 그리고, 그 구간이 지나갔다. 놀랄 만큼 말끔하게. “통과”라는 말이 맞았다. 어떤 날은 벽이었는데, 오늘은 문이었다.



그때 병주는 눈을 악보에서 떼지 않았다. 감탄하지도, 만족하지도 않았다. 그저 다음 마디로 넘어갔다. 성공을 크게 느끼는 순간, 손이 흔들리는 걸 그는 여러 번 겪었다. 성공을 바라보지 않는 법을 배운 건, 음악이 아니라 생활 덕이었는지도 몰랐다.



둘째 악장으로 들어갔다. 그 유명한 선율이 나오기 전, 기타는 오케스트라를 기다리는 자리에 앉아 있었다. 병주는 자기 방에서 오케스트라를 갖고 있지 않았지만, 600호는 홀의 뒤쪽까지 뻗어 나가는 종류의 “선명함”을 혼자서도 만들어냈다.


스프루스 상판이 빠르게 반응해 음의 앞부분을 또렷하게 세우고, 로즈우드가 그 뒤를 길게 정리해 주는 느낌.


카덴차가 가까워지자 손가락 끝이 더 예민해졌다. 그 부분은 악보상으로는 기타에 꼭 맞는 글씨가 아니라고, 연구자들도 말한다. 그럼에도 기타는 그 ‘불편함’ 때문에 더 절실해진다. 음이 몰려오고, 아르페지오가 소용돌이치고, 그 끝에서 쓸어 내리는 스트로크가 폭발처럼 터지는 순간이 있다.


관객은 거기서 격정을 듣지만, 연주자는 그 격정을 만들기 위해 손의 질서를 끝까지 지켜야 한다.


카덴차가 E단조로 적혀 있고, 저음 선율이 굵게 흐르며 롤드 코드가 끼어드는 구조라는 설명을 병주는 떠올렸다. 그 설명이 맞든 틀리든, 지금 그의 손은 그 길을 알고 있었다.



병주는 그 구간을 지나면서, 슬픔을 꺼내지 않았다. 슬픔이 먼저 나오면 손이 반드시 먼저 무너진다. 대신, 화음이 스스로 만든 그림자를 들었다. 장3도와 단3도가 교차할 때 생기는 그 미묘한 쓸림, 저음이 받치고 위에서 음이 미끄러질 때 생기는 기울어진 울림. 그는 그 울림을 “내 마음”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그냥, 악보에 있는 것이라고 두었다. 악보에 있는 것을 끝까지 내는 것. 오늘 병주에게 가능한 것이었다



셋째 악장을 시작했을 때,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 오늘은 중간에서 깨지지 않을 거라는 걸. 이유는 없었다. 손이 잘 풀린 날도 있었고, 악기가 더 말을 잘 듣는 날도 있었다. 그러나 오늘의 다름은 그런 쪽이 아니었다. 오늘은 떠나보낼 가능성이 큰 악기였고, 그래서 병주는 더 이상 “언젠가”를 믿지 않았다. 오늘이 마지막일 수 있다는 생각이, 오히려 손을 곧게 세웠다.



마지막 마디를 치고 난 뒤, 병주는 기타를 내려놓지 않았다. 무릎 위에 올린 채로 한참을 그대로 있었다. 잘 끝냈다는 기쁨이 먼저 오지 않았다. 대신, 담담함이 왔다. 담담함은 감정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감정이 제자리를 찾은 상태에 가까웠다.



방 밖에서 정순희가 조용히 발을 옮기는 소리가 났다. 병주는 기타를 케이스에 넣었다. .


그는 불을 끄기 전에 휴대폰을 한 번 집어 들었다. 당근 알림이 떠 있었지만 확인하지 않았다. 확인하는 순간, 이 악기는 정말로 ‘물건’이 될 테니까.

병주는 휴대폰을 뒤집어 놓았다.

그리고 손바닥을 기타 케이스 위에 올려 두었다. 짧게, 가볍게. 마치 “수고했다”는 말 대신처럼.

말이 연습실이지 그냥 아파트 맨 안쪽 방이었다.

벽지는 군데군데 들떠 있었고, 창틀 아래에는 오래된 못 자국이 남아 있었다.


재건축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집주인은 “미리 말해 줄 테니 언제든 나갈 준비는 해 두라”고 했지만, 그 말에는 날짜가 없었다. 날짜가 없는 말은 사람을 계속 준비 상태로 묶어 둔다.


병주는 기타 케이스를 바닥에 눕혔다.

검은색 하드 케이스였다. 모서리에는 잔기스가 있었고, 금속 잠금장치는 닳아 빛이 흐려져 있었다.


그는 잠금장치를 바로 열지 않았다. 케이스를 한 번 밀어 정렬한 뒤에야 천천히 열었다.

안쪽에서 짙은 갈색의 기타가 드러났다.

이상주 수제 기타 600호.


측판과 후판은 인도 로즈우드였다. 빛을 받으면 거의 검게 보이다가, 각도를 바꾸면 붉은 결이 살아났다.


상판은 스프루스였고, 도장은 얇았다. 얇아서 처음엔 불안했지만, 손톱으로 가볍게 두드리면 알 수 있었다. 소리를 가두지 않는 도장이라는 걸.


병주는 기타를 꺼내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무게 중심이 정확했다.


넥 쪽으로 쏠리지도, 바디 쪽으로 기울지도 않았다. 다리를 약간 벌린 상태에서 올려두면, 악기가 사람에게 기대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악기를 받치고 있다는 느낌이 분명했다.


이 기타를 샀을 때, 그는 그 감각 하나만으로도 오래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헤드 안쪽의 플레이트를 손끝으로 짚었다.

600만 원이라는 돈을 들여 무리해서 장만 했던 기타였다.


은행을 그만두고 나왔을 때,. 그는 기타리스트가 되겠다고 말하지 않았다. 다만 기타 없이 다시는 살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그 차이는 컸다.


안정적인 가정이 삽시간에 무너졌다

고생이라곤 모르던 전처는 일년만에 가난때문에 이혼서류를 내밀었다.


지금의 아내는 취미로 개인레슨을 받던 병주와 비슷한 나이의 30대 중반 이혼녀였다.


특별히 사랑한다는 열정도.서로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 있었던것도 아니었다.


둘다 딱히 만나던 사람도 없었고 그냥 개인강습 끝내고 커피 한 잔이, 밥으로. 밥이 술 한잔으로 이어지다 보니 어느날 동거인이 되어 었었다.

법적으로는 동거인이었다.



그 세월이 벌써 십여년에 이르고 있었다.그녀에게 서울 강남에 스타트기업으로 일찍 성공한 아들ㅡ중학부터 대학까지 병주가 어렵사리 강습을 하여 번돈으로 학자금을 대어 주었다. ㅡ이 있었지만 의례적인 안부 전화만 있을뿐이었다.


병주는 기타 줄을 하나하나 탄현해 보았다.

저음은 둔하지 않았고, 고음은 얇게 찢어지지 않았다. 무엇보다 마음에 드는 건 소리가 끝나기 직전의 잔향이었다.


소리가 사라지는 게 아니라, 천천히 정리되는 느낌. 공명통 안에서 남은 울림이 손바닥을 통해 전해졌다.

그는 연주를 하지 않았다.



연주는 지금 이 방에 어울리지 않았다. 대신 아랑훼즈 협주곡의 첫 마디를 떠올렸다. 머릿속에서는 늘 이어졌지만, 손으로 끝까지 완성해 본 적은 없었다. 언제나 중간에서 멈췄다. 완성되지 않은 곡은 이상하게도 사람을 포기하게 만들지 않았다.


문화센터 직원의 사무적인 말이 떠올랐다.

“선생님, 다음 달부터는 강의가 어렵겠습니다.”


수강 신청자가 없거나 강좌개설 최저인원이 차지않았다는 말이다.


냉정한 어투지만 그것은 사실 병주의 자존심을 배려해주는 선택된 단어들이었다.


병주는 고개를 끄덕였고, 직원은 그걸 이해로 받아들였다. 말은 이미 쓸모가 없어진 상태였다.


아파트 엘리베이터 앞 병주네 우편함에 종이가 수북했다. 마치 주인이 살지않는 집 처럼 각종고지서가 범람했다.


아내나 병주다 둘다 외면하여 챙기지 않은결과였다.



여러 달 밀린 관리비 고지서와 전기료 체납 안내가 겹쳐 나왔다. 그는 봉투를 접어 주머니에 넣었다.


아내에게 보여 주고 싶지 않았다. 보여 주면, 그다음 장면이 너무 분명했기 때문이다.


병주는 기타를 다시 내려다보았다.

며칠 전, 그는 이 수제기타를 당근 중고거래에 올렸다. 200만 원. 가격을 입력할 때 마음보다 손이 먼저 떨려 핸드폰 글자입력을 세번이나반복했다.


그날 밤에 당근 메시지가 떴다.

“50대 남자입니다. 백만 원에 바로 거래 가능합니까.”

백만 원.

관리비와 전기료를 합치면 거의 맞아떨어지는 금액이었다.


너무 정확해서 더 잔인했다. 병주는 답장을 하지 않았다. 답장을 하는 순간, 이 기타가 아무런 물건이 되어 버릴 것 같았다.



그는 기타 상판 위를 다시 손으로 천천히 쓸었다. 잘 만든 기타는 연주할 때만 소리를 내는 게 아니었다. 가만히 만져도, 악기는 자기 존재를 입증하는것같았다.


병주는 케이스를 덮었다.

지퍼를 끝까지 올리지 않았다. 중간에서 멈췄다.


그때 휴대폰이 울렸다.

교향악단 협연 오디션 결과였다.

“이번 협연은 다른 연주자로 결정되었습니다.”


병주는 문자를 읽고 화면을 바로 끄지 않았다. 떨어졌다는 사실보다, 이제 더 이상 확인할 것이 그에게는 없는 것이었다.



방 밖에서 아내가 불렀다.

병주는 대답하지 않았다. 지금은 이 방에 있는것이 차라리 더 나았다.


그는 다시 기타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사람처럼. 아니, 사람보다 더 오래 같이 산 것처럼.

이상주 600호는 손에 잘 붙는 악기였다. 로즈우드의 측판과 후판은 각도에 따라 붉은 결을 드러냈고, 스프루스 상판은 얇은 도장 아래에서 결이 또렷하게 살아 있었다. 스프루스는 빠른 패시지에서 소리를 또박또박 내주고, 로즈우드는 음을 반짝이게 만들며 저음을 단단하게 받쳐 준다고들 말한다.


병주는 그 말을 ‘설명’이 아니라 ‘체험’으로 알고 있었다. 손끝을 올리는 순간, 음이 늦게 따라오는 법이 없었다. 박자를 속이지도, 대충 뭉개지도 않았다.


그는 의자에 깊숙히 앉지 않았다. 그렇게 앉으면 연주가 연습처럼 느껴졌다. 오늘은 연습이 아니라 작별 인사에 가까웠다. 왼발 받침을 세우고 기타를 무릎위에 올렸다. 넥은 과하게 기울지 않았고, 바디는 허벅지에 억지로 매달리지 않았다. 무게중심이 기막히게 맞아 떨어지는 악기는, 사람의 자세까지 바르게 만든다.


병주는 손톱을 확인했다. 길이, 각도, 끝의 곡선. 클래식 기타리스트들이 인터뷰에서 자주 말하는 것도 결국 그거였다. 좋은 악기는 손의 작은 습관까지 그대로 돌려준다.


그래서 거짓 연주가 안 된다. 소리를 가공해 주지 않는다. 대신, 제대로 치면 제대로 울린다. 연주자가 색을 바꾸려 하면 색을 바꿀 수 있게 길을 내준다.


빠르게 반응하고, 음마다 중심이 서고, 비브라토나 터치로 색을 조절하기 쉬운 악기. 병주는 자기 기타가 그런 쪽에 가까운 걸 알고 있었다.


그는 아랑훼즈 협주곡 악보를 펼쳤다. 종이는 오래 만져 가장자리가 부드러워져 있었다. 첫 장을 넘기며 병주는 허탈함에 소리잆는 웃음을 웃었다. 늘 여기서 시작했다. 늘 여기서 “오늘은 끝까지”를 생각했다. 그리고 늘 중간에서 실수를 했다.



첫 악장을 천천히 시작했다. 오른손은 아포얀도와 티란도를 섞어 멜로디를 세웠고, 반주는 음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지 않게 낮게 눌렀다.


어떤 기타는 저음이 커서 다른 줄을 덮어 버린다. 어떤 기타는 고음이 얇아서 멜로디가 멀어진다. 그런데 600호는 줄과 줄 사이가 또렷했다.


화음이 쌓여도 각 음이 서로의 목을 조르지 않았다. “분리감”이라는 말이 이런 거였다.



중간으로 넘어가자, 늘 그를 멈춰 세우던 구간이 왔다. 왼손이 높은 포지션으로 훅 올라가며 바레가 길게 이어지고, 그 위로 빠른 음형이 쏟아지는 부분.


악보는 손을 한 개 더 달아 놓은 사람처럼 써 놓았고, 어떤 연주자들은 거기서 음을 덜어 내거나 자리를 바꿔 해결한다고도 한다.


병주도 한동안 그 ‘타협’을 생각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타협은 그를 편하게 만들지 못했다. 오히려 끝까지 붙잡게 했다.



그는 왼손 엄지를 조금 안쪽으로 숨겼다. 검지 바레의 힘을 줄이고, 대신 손목 각도를 아주 미세하게 바꿨다. 오른손은 음을 쫓지 않았다. 박자를 먼저 잡고 그 안에 음을 넣었다. 그리고, 그 구간이 지나갔다. 놀랄 만큼 말끔하게. “통과”라는 말이 맞았다. 어떤 날은 벽이었는데, 오늘은 문이었다.



그때 병주는 눈을 악보에서 떼지 않았다. 감탄하지도, 만족하지도 않았다. 그저 다음 마디로 넘어갔다. 성공을 크게 느끼는 순간, 손이 흔들리는 걸 그는 여러 번 겪었다. 성공을 바라보지 않는 법을 배운 건, 음악이 아니라 생활 덕이었는지도 몰랐다.



둘째 악장으로 들어갔다. 그 유명한 선율이 나오기 전, 기타는 오케스트라를 기다리는 자리에 앉아 있었다. 병주는 자기 방에서 오케스트라를 갖고 있지 않았지만, 600호는 홀의 뒤쪽까지 뻗어 나가는 종류의 “선명함”을 혼자서도 만들어냈다.


스프루스 상판이 빠르게 반응해 음의 앞부분을 또렷하게 세우고, 로즈우드가 그 뒤를 길게 정리해 주는 느낌.


카덴차가 가까워지자 손가락 끝이 더 예민해졌다. 그 부분은 악보상으로는 기타에 꼭 맞는 글씨가 아니라고, 연구자들도 말한다. 그럼에도 기타는 그 ‘불편함’ 때문에 더 절실해진다. 음이 몰려오고, 아르페지오가 소용돌이치고, 그 끝에서 쓸어 내리는 스트로크가 폭발처럼 터지는 순간이 있다.


관객은 거기서 격정을 듣지만, 연주자는 그 격정을 만들기 위해 손의 질서를 끝까지 지켜야 한다.


카덴차가 E단조로 적혀 있고, 저음 선율이 굵게 흐르며 롤드 코드가 끼어드는 구조라는 설명을 병주는 떠올렸다. 그 설명이 맞든 틀리든, 지금 그의 손은 그 길을 알고 있었다.



병주는 그 구간을 지나면서, 슬픔을 꺼내지 않았다. 슬픔이 먼저 나오면 손이 반드시 먼저 무너진다. 대신, 화음이 스스로 만든 그림자를 들었다. 장3도와 단3도가 교차할 때 생기는 그 미묘한 쓸림, 저음이 받치고 위에서 음이 미끄러질 때 생기는 기울어진 울림. 그는 그 울림을 “내 마음”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그냥, 악보에 있는 것이라고 두었다. 악보에 있는 것을 끝까지 내는 것. 오늘 병주에게 가능한 것이었다



셋째 악장을 시작했을 때,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 오늘은 중간에서 깨지지 않을 거라는 걸. 이유는 없었다. 손이 잘 풀린 날도 있었고, 악기가 더 말을 잘 듣는 날도 있었다. 그러나 오늘의 다름은 그런 쪽이 아니었다. 오늘은 떠나보낼 가능성이 큰 악기였고, 그래서 병주는 더 이상 “언젠가”를 믿지 않았다. 오늘이 마지막일 수 있다는 생각이, 오히려 손을 곧게 세웠다.



마지막 마디를 치고 난 뒤, 병주는 기타를 내려놓지 않았다. 무릎 위에 올린 채로 한참을 그대로 있었다. 잘 끝냈다는 기쁨이 먼저 오지 않았다. 대신, 담담함이 왔다. 담담함은 감정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감정이 제자리를 찾은 상태에 가까웠다.



방 밖에서 정순희가 조용히 발을 옮기는 소리가 났다. 병주는 기타를 케이스에 넣었다. .


그는 불을 끄기 전에 휴대폰을 한 번 집어 들었다. 당근 알림이 떠 있었지만 확인하지 않았다. 확인하는 순간, 이 악기는 정말로 ‘물건’이 될 테니까.

병주는 휴대폰을 뒤집어 놓았다.

그리고 손바닥을 기타 케이스 위에 올려 두었다. 짧게, 가볍게. 마치 “수고했다”는 말 대신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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