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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호 Sep 03. 2019

어른의 일

<자기 인생의 철학자들> 김지수



평균 연령 72세의, 오롯이 자기 인생을 산 어른들과의 대화를 엮은 김지수의 인터뷰집 '자기 인생의 철학자들'. 작가의 말은 읽을 때마다 울림을 준다. "그들에겐 공통점이 있었다. 진정한 어른은 성취의 업적에 압도당하지 않고 '일한다'는 본연의 즐거움을 오래 누릴 줄 알았다."


어떤 어른의 모습으로 일하고, 늙어갈 것인가. 90세 현역 디자이너 노라노 여사는 아침 스트레칭과 산책으로 하루를 열고, 매일 빠짐없이 7시간씩, 토요일에도 정오까지 일한다. '실용적이고 고급스럽게'는 패션과 생활의 신조다. 복잡한 생각, 쓸데없는 생각 안 하고 옷도 허세 없이 실용적이고 멋스럽게 만들려고 했다고. 행복은 일에 있고, 일해야 행복하다고 말한다. 나이 들어도 생산적인 일을 안 하면 죽기만 기다리게 된다면서. 무용지물로 살면서 자기 가치를 잃어선 안된다고 덧붙인다. "70년 동안 쉬지 않았다는 점에선 내가 샤넬을 이겼어!"라고 웃으며 말하는 세계 최장수 현역 디자이너 노라노. 그녀가 남긴 디자인 업적에 대해 잘 알진 못하지만 반듯한 삶의 생김새만은 짐작할 수 있다.


노라노 여사. (출처: 김지수의 인터스텔라)



여사는 90년 산 지혜로 '일할 때 능력과 체력의 한계에서 10퍼센트 여유를 두라'라고 조언하며, 120퍼센트의 에너지를 소진하며 사는 사람들에게 당부한다. 아직 인생을 반도 안 살았는데 위험하게 쓰러지는 삶을 자청하지 말라고. 스스로에게 숨 쉴 공간을 내어주면서, 다만 매일을 꾸준하게 삶을 이어가는 노라노 여사의 모습. 그렇게 쌓인 90년은, 오랜 세월 켜켜이 쌓인 절벽의 지층을 바라볼 때만큼이나 경이롭다.


서른 중반에 접어들며 감히 짐작할 수도 없는 수십 년의 세월을 가늠해 본다. 어떤 길이 내 앞에 굽이쳐 있을지 모르지만 "생각은 옳은 길을 가면 다 만나게 되어 있다."는 여사의 말처럼, 그릇의 생김새만은 이 어른과 닮아있기를 바라본다.



1974년 뉴욕에서 열린 ‘노라노 실크 패션쇼'
노라노가 만든 펄 시스터즈의 판탈롱(왼쪽에서 첫 번째). 70년대 미국 패션지에 실린 노라노 의상들



진정한 어른은 성취의 업적에 압도당하지 않고 '일한다'는 본연의 즐거움을 오래 누릴 줄 알았다.

- 김지수, <자기 인생의 철학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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