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름에 대한 찬양> 버트런드 러셀
지난 8년의 회사 생활을 돌아보면 '나는 쓸모 있다'라는 명제의 끊임없는 증명 과정이었던 것 같다. 때로는 공식을 찾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해답도 없는 문제들과 씨름했다. 물론 지금도 그 명제는 변함없다. 회사에서 재택근무로 환경이 바뀐 것뿐, 매일 '나의 쓸모'를 증명하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니까. 하지만 마음가짐은 확연히 다르다. 거울 속 얼굴 표정이나 걸음걸이에서도 느껴질 정도로.
한 걸음 떨어져 볼 수 있는 '게으름'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버트런드 러셀의 책을 읽으며 생각했다. 그동안 눈 앞의 벽돌을 조각조각 쌓아 올리는 것만 보면서 일했다면 지금은 한 조각을 쌓고 한 숨을 돌린다. 주말에 일한 다음의 월요일에, '주말에도 쉬지 않고 일했다'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은 게으르게 보내야지'라고 생각하는 감각의 차이는 아주 크다.
필요한 것은 특정 정보의 조각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인간 삶이 추구할 목표를 이해하는 능력을 길러주는 지식이다. 예술과 역사, 위대한 개인 삶에 대한 지식, 우주 속에서 인간이 갖는 기이하게 우연적이고도 찰나적인 위치에 대한 이해, 이 모든 것은 보고 파악하고, 폭넓게 느끼고, 이해심을 갖고 생각할 수 있는 인간 고유 특성에 자부심을 느끼도록 자극한다.
- <게으름에 대한 찬양> 중
혼자 일하면서 자주 마주하는 것 중 하나는 내 한계다. 회사에선 그럭저럭 묻혀 있었던 단점도, 무능력도 여실히 드러난다. 직장을 박차고 나올 때의 패기는 바닥을 드러내는 '텅장'에서 꼬리를 내린다. 하지만 버트런드 러셀은 이 '무용함'이 오히려 지식을 숙고하는 습관을 조성해준다고 말한다. 세상에는 너무도 많은 성급함이 존재한다고 덧붙이면서. 내 한계와 무용함, 무쓸모로 인해 더 깊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쓸모’에만 사로잡히기보다 하루쯤은 게으르게 늘어져서 '무쓸모의 쓸모'에 대해 생각해 볼 일이다.
"모든 도덕적 자질 가운데서도 선한 본성은 세상이 가장 필요로 하는 자질이며 이는 힘들게 분투하며 살아가는 데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편안함과 안전에서 나오는 것이다."
- <게으름에 대한 찬양> 버트런드 러셀
버트런드 러셀
목차
1 게으름에 대한 찬양
2 무용한 지식과 유용한 지식
3 건축에 대한 몇 가지 생각
4 현대판 마이더스
5 우리 시대 청년들의 냉소주의
6 현대사회의 획일성
7 인간대 곤충의 싸움
8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가
9 이성의 몰락, 니체와 히틀러
10 내가 공사주의와 파시즘을 반대하는 이유
11 사회주의를 위한 변명
12 서구의 문명을 어떻게 볼 것인가
13 금욕주의에 대하여
14 혜성의 비밀
15 영혼이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