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터의 작업노트 22.12.26
저와 제 그림에 관한,
짤막한 생각과 이야기.
27살 즈음에 집단상담 세션을 들은 적이 있다. 8개월 남짓한 기간동안 여러 예술인들을 대상으로 한 상담 프로그램이었는데, 내담자로서의 참여와 이론 교육이 함께 이루어지는 흥미로운 세션이었다.
하루는 콜라주 시간이 있었고, 나는 사방으로 눈치만 살피다가 완성도 못한 채로 발표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내 작업에 대한 짧은 발표가 끝났을 때, 선생님이 건넨 질문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있다.
- 서희 씨는 숨어있다는 표현을 자주 쓰는 것 같아요.
- 고양이가 숨어있다고 표현한 이유가 있나요?
내 콜라주 작업의 오른쪽 구석에는 빼꼼 얼굴을 내밀고 있는 고양이가 있었다. 시선은 앞을 향하고, 오려붙인 벽 뒤에서 얼굴만 빼꼼. 그렇담 당연히 숨어있는 거 아닌가? 생각하고 있는데, 선생님이 말을 이어갔다.
- 숨어있다고 표현하지 않을 수도 있거든요.
숨어있다는 건 서희 씨의 관점이에요.
왜 숨어있는 걸까요?
잠깐 선생님의 눈을 살폈다.
- .. 그러네요.
많은 얘기를 나눠보지 않은 사람의 질문이 왠지 다정하게 느껴졌고, 멀찍이 서 계시던 선생님은 그 질문 하나로 내 앞에 성큼 다가와 있는 것 같았다.
문득 언어가 사람을 구성한다는, 책에서 읽은 문장이 떠올랐다. 정확히 부끄러운 이유도 모르는 채로 부끄러워졌다. 사람이 사용하는 언어는 그의 세계를 짐작할 수 있는 어떤.. 단편적인 지표가 될 수 있다고 하죠.
그.. 하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앞에서 그런 얘기를 발표할 준비는 되지 않은 것 같아요. 저는 항상 주변을 맴도는 사람이고요. 참 별 것이 아닌데도 모든 순간에 가장 들키고 싶지 않은 게 그거예요.
선생님 어깨너머로
함께 교육받는 동기들의 얼굴이 보였다.
저는 지금 여기서도 애쓰고 있거든요. 누군가의 다정한 물음에 언제나 진심으로 답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아마 전 지금은 못할 것 같아요.
- 아.. 제가 수줍음이 많아서 그런가 봐요..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나는 수줍음이 많았다.
어렸을 적에도 엄마는 항상 “애가 숫기가 없어서요..”라는 말로 나를 설명했다. 낯선 사람을 만나거나 불편한 상황에서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내 부끄러움에는 언제나 이유가 있었다. 그리고 그 이유가 사실이든 아니든, 항상 내 머릿속에는 스스로 주변부에 머물러야 할 이유가 다분했다.
지금 생각하면 여러 상황들을 직면할 수 없었던 내가 일부러 만들어놓은 결함이 수만가지로 많았던 것 같다. 그리고 스스로 그 결함이 탈출구가 될 수 없다는 답을 얻기까지, 아주 오랜 시간동안 나는 결과적으로 수줍은 사람과 다를 바가 없었다. 조금 다른 말로 하면 들키고 싶지 않은 모순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때에도 차라리 아주 수줍은 사람이 되어버려서, 이 발표가 거짓말이 아닌 걸 증명하자는 이도저도 아닌 결심을 했던 기억이 난다. 다행히 선생님은 더 질문을 이어가지 않았고, 내 작품이 좋다고 말씀해주셨다. 나는 고작 질문 하나로 붉어질뻔한 얼굴을 달래며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내가 들키고 싶지 않은 것들은 정말 많았다. 들키지 않을 작정을 하면 문제 없을 거라고 믿었던 것 같다. 나에게도 거짓말을 하고, 아등바등 나를 꾸며내고, 말도 안되는 합리화를 시도하다가 실패하면 우울해하는 정말 답도 없는 시절이 있었다.
그리고 언제나 잔뜩 꼬여버린 실타래의 끝을 쥐고 있는 건 내가 아닌 타인이었다. 내 의지는 아무 상관도 없었고, 나조차도 내가 도대체 어쩌고 싶은건지, 스스로 어떤 사람인지 모르겠다고 생각한 시간이 있었다.
좋은 사람이라는 소리는 꽤 들었지만 만약 정말로 내가 그렇게 좋은 사람이라면 누구든 먼저 다가와 오래도록 남아줄거라는 기대가 컸던 것 같다. 그 사람에게는 모든 걸 내려놓을 수 있을 것 같았고, 어떤 나의 진짜 모습-사실은 나조차도 모르는-을 알려줄 수 있을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모두 아시다피시, 첫눈에 반한 상대도 십여년을 함께한 사람도 언젠가 떠나가기 마련인데 누군들 내 곁에 계속 있어줄까? 평생에 걸쳐 지치지 않고 내 옆에서 나를 두드려줄 사람은, 내가 함께 붙잡지 않고는 없을 일인 것이다.
내면을 들여다보고 타인에게도 솔직해질 수 있는 연습을 하자고 마음먹었다. 우리가 분명 가까운 사이라면, 그 시간을 침해하지 않고는 절대 함께할 수 없음을 인정하자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좋은 사람들을 잃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면서, 종종 나를 챙겨주던 지인들의 안부인사나 별 것 아닌 온라인의 좋아요 하트조차도 내 결심에 큰 힘이 되었다. 알면 알수록 또는 오래 곁에 두어도 꽤 괜찮은 사람이 되자는 생각을 했다.
5년도 더 넘은 시간이 지났고, 지금도 노력하고 있는 중이다. 아직도 내가 가진 결함-이라고 느껴지는 것들-을 도무지 받아들일 수가 없고, 누구에게도 손가락질 받고 싶지 않은 마음에 나를 감추기 급급할 때도 있고, 가끔은 남을 위하는 척 뾰족하고 못난 마음이 고개를 쳐들때도 있다.
낯선 곳에 가면 최선을 다해 한 발 물러서고, 언제든 도망갈 수 있는 가장 비겁한 마음을 먹을 때도 있다. 정작 진짜로 하고 싶은 것들은 욕심내지 못하면서 쉽게 남을 부러워하기도 하고, 내가 쉽게 얻은 것들은 보이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럼에도 계속해서 올바른 방향을 가늠해보는 노력은, 다시는 나 스스로에게 부끄러운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서가 큰 것 같다.
이제는 사람의 모든 순간을 과정으로 여길 줄 알게 되었으니 그 관대함을 나에게도 베풀 줄 알아야 하고, 진심으로 나를 소중하게 대하는 사람이 주변에 있다면, 응당 그 마음에 지지 않는 것이 도리일 것이다.
조금 부족한 모습을 보일지언정 주변사람들을 기만하거나 그 관계를 가벼이 여기지 말고, 나 또한 속임 없이 앞뒤가 같은 사람이 될 것. 원하는 모습을 어설픈 말들로 꾸며낼 것이 아니라, 시간이 걸려도 천천히 그 모습을 쌓아나갈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