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기억과 얽힌 곳
감추사는 동해 감추해변에 숨어있는 절이다.
신라 진평왕의 딸인 선화공주가 창건한 석실암에서 비롯된 절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감추사가 있는 동해 감추해변이라는 곳은 내 어릴 적 기억이 새겨져있는 곳이다.
나는 초등학교 3학년때까지 여행이라는 걸 다녀본 기억이 없는데, 4학년 때 아버지가 승진을 하면서 조금 넓은 사택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고, 동시에 살림이 조금 넉넉해지면서 그해 여름 처음으로 우리집 다섯 식구가(나가 살던 세식구 제외) 처음으로 물놀이라는 걸 가게 되었다. 그곳이 바로 감추해변이다. 나는 여태껏 그곳을 감추해수욕장으로 불렀는데, 이번에 다시 가보고서야 해수욕장이라고 부르기엔 너무 협소하고 물놀이하기에도 어려운 곳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처음 가본 바다 물놀이라는 점도 있지만, 내가 감추해변을 기억하는 데는 다른 이유가 있다.
우리 가족 다섯은 처음 가는 물놀이라는 이유로 먹을걸 바리바리 싸서 아버지만 빼고 다들 손에 하나씩 뭔가를 들고 버스를 타고 물놀이를 갔다. 꽤나 구불구불한 길로 기억하는데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내 고향과 삼척을 잇는 번듯한 도로가 개통된 것이 꽤나 이후의 일이고, 포장은 되어 있지만 지금도 여전히 구불구불한 길은 존재하고 있으니 예전, 그러니까 수십 년 전은 말할 것도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새벽같이 집을 나서서 해변에 도착해 물놀이를 하며 먹고 놀다가 오후가 되자 다시 짐을 싸들고 우리 가족은 버스를 타러 나왔다. 잠시 후 도착한 버스에는 우리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타게 되었다. 버스는 곧 출발했는데, 아무것도 잡지 못한 채 짐을 들고 있던 엄마가 버스가 갑작스레 출발하는 바람에 넘어지고 말았다. 버스가 갑작스러 출발하니 놀라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 와중에 엄마는 넘어지기까지 한 것이다.
내 기억으로 아버지는 엄마를 그저 딱한-그것이 딱한 눈빛이었는지 아니면 한심하다는 눈빛이었는지- 눈빛으로 바라만 보는 것이었다. 나나 형이 엄마를 부축했을 것이고, 저녁이 다 되어서야 우리 가족은 집에 도착했다. 그날 버스에서의 일은 기억의 작은 편린으로만 남아 내가 이 얘기를 가족들에게 하면 '그런 일이 있었어?'하고 되묻곤 했다. 그런데 나는 그 일 때문에 감추해변으로 놀러 간 가족들의 첫 물놀이를 평생 잊지 못하게 되었다.
얼마 전 친구들과 추억여행을 다니자 하면서 결정된 첫 번째 여행지가 나의 고향이었다. 내가 나온 초등학교를 거쳐-그 초등학교의 올해 입학생이 열명이 채 안된다고 한다-, 내가 처음 간 물놀이 해수욕장인 감추해변을 지나게 되었는데, 그곳에 감추사가 있는 걸 보게 되었다.
정말 우습게도, 우리가 감추해수욕장이라고 걸어 다니며 사진을 찍은 곳은 바로 옆 한섬해변이라는 곳이었다. 왠지 내 머릿속에 각인된 감추해수욕장의 모습과는 너무도 달랐지만 시간이 오래 지나 변했나 보다라고만 생각했는데, 마침 옆에 있는 감추사를 가보자 하고 가게 된 것이 내가 처음 물놀이 갔던 감추해변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오래전 갔던 그곳이었다는 걸 알고는 나는 소름이 돋고, 흥분되는 걸 느꼈다.
그렇게 감추해변을 확인하고 감추사까지 들어가게 되었다. 오래된 어렸을 때는 왜 감추사라는 게 눈에 안 들어왔는지 모르겠다. 내 기억에는 감추사라는 곳은 없으니 말이다.
감추사는 바다를 마주하고 있는 작은 절이고, 신라 선화공주가 오래 앓던 병을 이곳에 와서 치료한 후에 감사한 마음으로 석실암을 중건했다는 얘기가 있다. 그리고 그 석실암을 기초로 현재의 감추사를 세웠다는 말이 전해진다. 용왕각 안에 들어가 절하고 바다를 바라보고, 어릴 적 물놀이하던 해변을 바라보고 있자니 오랜 기억이 새록새록 살아났다.
함께 간 친구들이 고마웠다.
그리고, 내가 나온 초등학교와 놀던 놀이터, 감추사, 감추해변까지 돌아보고 나니, 일 년에 한 번쯤은 고향에 가고 싶다 하고 나를 찔러대던 오랜 그리움과 감추해변에서 돌아오던 버스 안에서 넘어진 엄마를 잡아주지 않고 바라보던 아버지를 탓하던 내 마음도 이젠 편히 내려놓게 되었다.
며칠 전 요양병원에 계신 엄마를 찾아가 친구들과 다녀온 여행 얘기를 하며, 감추해변에서 찍은 사진을 보여드렸다. 오래전 엄마가 버스안에서 넘어졌던 이야기를 하니 '그래? 그런 일이 있었어?'하고 별대수롭지 않은 듯 대꾸하신다. 그러면서도 해변의 사진과 오래전 살던 고향집과 놀이터를 찍은 사진을 찡그린 눈으로 오래도록 바라보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