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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기 May 17. 2024

나의 사업 이야기. 7

사업에 실패한다는 것

낯선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경매로 '우리집'을 낙찰받은 사람이라며, 찾아뵙고 퇴거 일정을 얘기하고 싶다고 한다.

저 사람은 낙찰받고 잔금까지 냈으니, 이 집은 이제 더이상 '우리집'이 아니다.

아이들이 학원에 가있을 시간으로 약속을 잡았다.

약속 당일, 아이들은 없고 아내와 둘이 앉아 방문자를 기다렸다.

음료수 한박스를 사들고 들어온 사람들이 점령자처럼, 그러나 조심스럽게 집을 둘러본다.

와, 깨끗하네요.

- 맞다, 우리집은 이사할때 도배와 인테리어를 한 이후로 한번도 수선,수리를 하지 않았지만 늘 같은 상태를 유지해왔다. 우리집을 낙찰받은 사람들은 우리가 이사나가던날 이사들어왔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고 이삿짐만 갖고 들어왔다. 이사차가 기다리는 동안 청소팀이 들어와 청소를 한게 전부였다.

대략 3개월 후로 이사 날짜를 잡고, 방문자들이 돌아간 후 아내는 안방으로 들어가고, 나는 따라 들어가지 못하고 거실에 멍하게 앉아있었다.

그 다음 주부터는 아내와 이사할 집을 알아보려 다녔다. 경매가 진행되고 나면 현 소유주에게 분배되는 배당금이라는게 있는데, 우리에게 돌아올 돈은 거의 없었다. 그나마도 집을 아내와 공동명의로 해두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형제들에게 부끄럽지만 손을 벌리고, 남은 배당금을 합해 아이들 학교가 그나마 멀어지지 않는 곳에 월세집을 얻었다.

집이 작아지니, 집안 살림을 상당부분 버리거나 팔거나 기부했다.

10년을 넘게 쓴 식탁과 의자를 버리고, 책들은 중고서점과 도서관 그리고 같이 일하던 직원에게로 흩어졌다.

TV도, 오디오도, 장식장도 모두 버려졌다.

이사하기 얼마 전에 큰 아이의 중학교 졸업식이 있었다. 주방 아래에 신문지를 깔고 삼겹살을 구웠다. 자기양만큼 먹은 아이들이 각자 방으로 흩어지고, 아내와 소주를 마시는데, 아내가 울기 시작했다. 나는 말없이 소주만 마셨다.


이사간 집에서 겪은 일들은 나쁜 기억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우리는 이사간 집에서 삼시 세끼를 꼬박 챙겨먹었고, 아이들을 더 살갑게 챙기며 살았다. 적어도 사업이 망해서 아이들이 잘못 자랐다거나 할 공부를 못했다라는 소리를 듣고 싶진 않았으니까.

다만, 나쁜 기억이 조금 더 많은 뿐이다.

아무도 없는 낮시간에 오래된 보일러가 터져, 퇴근하고 집에 오니 하나로 이어진 거실과 부엌이 물바다가 되어 있었고, 월세가 나가는 날이 다가오면 아내의 표정은 좀더 굳어졌다.


사업에 실패한다는 건 이런 것이다.

'우리집'이 사라지고,

대화가 줄어들고,

적극적인 소비가 사라진다.

저축은 줄거나 없어지고,

매일 아이들의 표정을 살피게 된다.

그리고, 

오늘도 걱정하고, 내일도 걱정하게 된다.


사업을 시작하기 전에 우리 가족이 모여 했던 얘기가 기억난다.

-아빠가 사업을 시작할텐데 잘되면 좋겠지? 잘되면 지금보다 좋은 집에서 살고, 하고 싶은 것도 더 많이 하며 살 수 있을거야. 

-만약, 사업이 잘 안되면 지금 집이 아니라 더 작은 집으로 옮기고, 한동안 고생도 할 수 있을거야. 다만 아빠엄마는 너희한테까지 그런 영향이 가도록 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사업이란건 앞을 모르니 그럴 수도 있다는 걸 알아야 돼.


그렇게 얘기를 하고, 그렇게 다짐을 해도, 현실이란건 닥치는 순간이 되어야 현실로 인식하게 된다. 그리고 그걸 받아들이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그걸 빨리 현실로 받아들이고, 냉철하게 다음 내딛어야 할 곳을 찾아야 빨리 일어설 수 있다. 

다만, 그게 어렵다. 정말 어렵다.

사업에 실패한다는 건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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