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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기 May 24. 2024

나의 사업이야기. 10

어느 직원과의 힘들었던 이야기

예전에 사업을 정리할 때 큰 낭패를 겪었다.

마지막 달에 통장 잔고마저 제로여서, 남은 직원의 두달 치 급여를 챙겨주지 못했다.

그때 회사 자산이라고 있는 것이, 

-하드웨어를 만들기 위해 필요했던 수입 부품 

-직원이 쓰고 있던 고가의 고성능 노트북

-그 외 노트북 2대, 책걸상 등


이미 노트북은 직원이 쓰기로 한 상태였는데, 급여를 포함해 밀린 것에 대해 많이 억울해 했다.

'그럴 수 있다'


이미 퇴사를 하고 출근을 하지 않고 있던 직원은 회사를 정리한다고 하자, 다음날 고용노동부에 임금체불로 신고를 했다.

나는 노동청에 불려가 조사를 받았다.

노동청 조사에서 나는 회사의 현황, 자산 현황 등을 얘기하며, 지급 의사가 없는 것이 아니라 지급할 돈이 없으니, 자산을 근거로 대지급금을 지급하고, 남은 자산을 근거로 구상권을 청구하는 방법이 있지 않냐고 했다.

그리고, 회사의 자산으로 있던 수입 부품을 해당 직원이 며칠 전 저녁에 와서 가져갔다라는 얘기도 했다. 

노동청의 근로감독관은 오히려 사업 진행 현황 얘기를 들으며 안타까워 했고, 진행되는 건에 대해 알려주겠다고 했다.

후에 근로감독관이 연락해 온 바로는, 수입 부품의 가격이 체불 임금보다도 높고, 법인 파산을 진행한다고 했으니, 시정 지시(밀린 임금을 지급하시라)는 하되 이걸로 종결처리하겠다고 했다.


며칠 후 난 법인 파산을 신청했다. 법인 파산 신청을 할 때는 자산을 정리한 목록을 함께 제출한다. 

(기록을 확인해보니 일부 다른 내용이 있어 수정보완합니다)


파산신청을 한 것은 다니던 직원이 임금체불로 노동청에 신고하기 전이었다.

근로감독관의 호출로 노동청을 방문한 나는 현황(직원이 노트북과 부품을 가져간 사실과 법인 파산을 진행중인 사항 등)에 대해 공유하고, 체당금 지급이 가능한 지, 내가 해야할 것들에 대해 문의했다.


이후 근로 감독관은 파산 관재인에게까지 연락해 법인 파산의 진행 현황, 자산 상황, 직원이 가져간 물품의 처리 등에 대해 상세히 얘기를 듣고 나눴다고 한다.

이후, 근로감독관이 연락해, 해당 직원의 임금 체불건은 이미 가져간 노트북 부품 등으로 인해 이유 없음으로 종결 처리할 것이라고 알려왔다.

그리고, 며칠 후부터 직원은 내게 직접 연락을 해왔다.



법인 파산 절차를 진행하는 중, 직원의 전화가 오기 시작했다. 

첫번째 전화에서는 '미지급 급여 어떻게 하실 거예요?'로 시작해, '빨리 정리 부탁합니다'로 끝나던 것이, 

두번째 전화부터는 쌍욕이 나오기 시작했다.

개**부터 시작해, 살면서 들어본 적없는 욕을 전화로 들어야 했다.

'내가 너같은 새끼를 믿고'부터 시작해, '당장 해결하지 않으면 진짜 가만있지 않겠다'는 식의 말을 들었다.

이런 전화를 일주일 한번 정도 받았다.


나는 파산 관재인에게 임금 대지급 제도라는 것이 있다고 들었다며, 혹시 이걸로 미리 처리를 할 수 없겠냐고 부탁했다. 나는 직원이 급여에 대해서도 저렇게 얘기하는게 이해는 된다며 선처를 요청했다. 파산 관재인은 알아보겠다고 답을 했고, 며칠 전화가 왔다.

담당 판사에게 질의하고 요청했는데, 이미 부품을 가져간 것이 확인된 상태이기 때문에 지급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 인간적인 측면에서 방법을 찾아 급여를 처리해주고 싶은 마음은 이해가지만, 그거와는 별개로 이미 노트북과 부품 등 상당한 액수의 현물을 가져간 만큼 처리는 불가하다고 알려왔다.

다시 전화를 걸어온 직원과의 통화에서, 해당 내용을 얘기했지만 막무가내였다. 

살면서 이사람 저사람에게 욕을 들었겠지만, 그때 들은 욕이 살면서 들은 욕의 거의 대부분이다. 


파산 관재인에게 전화를 걸어, 내가 하도 힘들어서 그러니 어떻게 방법이 없겠냐고 애원을 하자, 며칠 후 밤 늦게 전화가 걸려왔다. 나는 그때 너무 피곤해서 잠들어 있었는데, 아내가 받은 전화에 파산 관재인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대표님이 들으면 좋아하실 소식이라, 늦었지만 전화드렸습니다. 내일 아침에 전화 부탁드립니다.

아침에 일어나자 마자 전화를 했다.

파산 관재인은 담당 판사에게 지금의 어려운 상황을 다시한번 설명드리며 요청을 드렸고, 판사가 이를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단 조건부로.

-가져간 부품과 노트북을 되돌려 놓으면 임금 대지급으로 처리해라. (수정됨)


내가 직원에게 '임금 대지급으로 처리해 줄 것이며, 자세한 내용은 파산 관재인과 얘기해라'라고 전하기로 했다. 그날 오후 파산 관재인에게 다시 연락이 왔다.

-이 사람 뭐하는 사람이예요? 

-왜요?

- 임금 대지급으로 나올 돈이 얼마나 되냐며, 부품과 노트북의 자산 가격이 얼마로 잡혔냐고 오히려 물어봅니다.

직원은 노트북과 부품도, 밀린 급여도 포기할 수 없었겠지만, 결국 임금 대지급이 아닌 노트북과 부품을 선택했다고 파산 관재인에게 전해 들었다.


사업을 하면서 많은 사람을 만났는데, 그때가 가장 힘들었다.

스스로가 무능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고, 모멸감을 느끼면서도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해서 곤혹스럽고 속상했다.


사업을 할 때 좋은 사장에 대해 많은 얘기를 한다.

직원들의 능력을 키워주고, 문제없는 조직을 만들고, 비전을 제시하고 등등

사업을 하며 어려움을 많이 경험한 나로서는, 좋은 사장의 조건 첫째는 딱 하나다.

'돈'

사업을 할 때 좋은 사장은, '내 기준으로는' 그리고, '직원들 기준으로도'

-매출을 만들어서, 이익이 나는 회사를 만드는 사람

-매출을 만들어서, 세금과 공과금, 월세를 밀리지 않고 잘내는 사람

-매출이든 투자든 가져와서 월급 밀리지 않고 꼬박꼬박 잘 주는 사람이 첫째다.


나는 월급을 밀렸으니 할 말이 없다. 사업을 못했고, 자금도 결국 바닥나는 상황을 만들었으니 그때 나는 좋은 사장이 아니었다. 그리고, 나는 그 직원이 일반적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다 그렇게 격렬하거나 다혈질이지 않다. 그렇다고 아주 나쁜 사람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그 상황이었다면 어땠을 지 모르니, 뭐라 단정지을 수 없다.


다만, 이런 얘기는 할 수 있다.

사람의 본 모습은 시궁창에 있을 때 잘 볼 수 있다.

썰물 때가 되면, 비로소 누가 발가벗고 헤엄을 쳤는지 알 수 있다고 워렌 버핏도 말하지 않았던가.

좋을 때, 밀물에 있을 때 사람을 잘 볼 수 있어야, 시궁창에 있을 때 썰물 때 당황하지 않는다.


나는 그 때 어느 모로 보나 한참 부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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