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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기 Jul 16. 2024

재무팀장 C

나는 피해자였고, 공범이었다

C는 지방의 한 사립대 회계학과를 졸업했다. 

졸업이 가까워졌을 때 교직원으로 추천 임용되어 모교에서 1년 넘게 근무했다고 했다. 좋은 직장을 왜 그만뒀냐고 물었더니, '시골이라서 놀게 아무것도 없어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후에는 지방의 중소기업에서 회계 업무를 하다가, 5년 차가 넘어서 서울로 올라왔다.


C팀장이 서울로 올라와 두 번째 이직한 회사는 작은 회사였지만, 이름만 대면 알만한 중견기업의 자회사였다. 자본금 10억으로 설립된 1년 된 회사로 오너의 아들이 대표를 맡아 공격적으로 사업 전개 중이었다. 고향 선배라는 모회사 실장의 소개를 받은 C팀장은 대표와 인터뷰를 하고 3일 후부터 출근을 시작했다.




C팀장은 출근한 지 2년 여만에 횡령사고를 일으키고 회사에서 사라졌다. 뒤늦게 형사 고발 등을 진행했지만 C가 횡령한 돈은 회수되지 못했고, 법적 처벌이 이루어지면서 사건은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횡령사건이 일어나 회사는 몇 년 있다가 폐업 처리에 다름없는 모회사 흡수처리로 정리되었고, 몇 명의 직원을 제외하고는 모두 회사를 그만두었다.


지금에 와서, C팀장이 회사에 다니는 동안 했던 행동이나 말을 되돌아보면, 정상적인 회사 생활이 불가능했을 거 같은 생각이 들지만 당시 대표를 포함해 같이 일했던 동료들조차 그가 횡령 같은 짓을 저지를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그러니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 속은 모른다라는 말이 있나 보다.


C는 서울로 올라와 결혼한 누나의 집 근처에서 자취를 했는데, 누나집엔 거의 가지 않았고, 자취방에서도 밥을 해 먹는 일은 거의 없다고 했다. C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전날 입은 옷을 그대로 입고 후줄근하게 출근하는 일이 있었는데, 그럴 때 슬쩍 물어보면 'PC방에서 밤을 새웠다'라고 했다.

내 기억으로 회사일 외에 C와 주고받은 얘기는, 정확히 말하자면 C에게 들은 얘기는 스포츠토토, 주식, MMORPG 게임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던 거 같다. C와 같이 근무하던 시절 나는 앞의 세 가지 모두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가 스포츠토토로 몇십만 원을 벌었다거나, NC소프트 주식을 사서 몇백만 원을 벌었다는 등의 얘기를 할 때마다 '와, 대단하네'라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 특히나 PC방에서 게임을 하며 밤을 새운다는 것에 대해서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되었기 때문에 별로 친하게 지낼 기회가 없었다. 다만, 그가 내게 술을 산다고 해서 서너 명이 같이 술을 먹은 적이 있었는데 그럴 때의 이야기도 회사일 빼고는 대부분 위에서 얘기한 것들이 주된 화제였다.


한 번은 그가 회사에 지각을 한 적이 있었는데, 전날 입었던 것과 같은 옷에 후줄근한 모습을 하고 있길래 또 PC방에서 밤을 새웠나 하고 짐작할 뿐이었다. 그래서, 점심을 먹고 들어오다가 C가 내게 한 얘기는 충격 그 자체였다. 


전날 밤 친구와 강원랜드를 갔었다는 것이었다. 그가 한 얘기를 요약하면 이렇다.

'주식으로 돈을 좀 벌어서 친구랑 퇴근 후 강원랜드를 가기로 했다. 퇴근해서 저녁을 먹고 택시를 잡아타면 3시간이면 간다. 가서 좀 놀다가 돈을 땄다 싶을 때 손을 딱 놓고 다시 택시 잡아타고 오면 출근 시간 전에 돌아올 수 있다. 오늘 새벽엔 조금만 조금만 하다가 타이밍을 놓쳐서 지각한 거다. PC방에서 밤새는 거라 크게 다른 거 없다. 돈이 조금 더 들뿐이다. 나야 결혼도 안 했고, 애인도 없으니 가끔 친구랑 달려요.'

조금 놀라긴 했지만, 그가 태연하게 늘어놓는 얘기를 듣다 보니 C라면 그럴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가 내게 돈 얘기를 꺼낸 건 몇 차례의 술자리를 통해 '약간의' 친밀함이 쌓인 후였다. 

'주식을 하든 돈을 굴리든 해서 조금이라도 이자를 만들어 드릴 테니 소액이라도 있으면 나에게 맡겨라. 제 주변에 돈놀이하는 친구들, 술집 하는 친구들이 여럿이라 은근히 그런 돈 잘 굴린다. 일주일 단위로 이자 계산해 드릴 거다. 형님 같은 분은 따로 하는 것도 없으시니 내가 도와드리겠다.'


사람이 사기를 당하려면 눈이 멀고 귀에 뭐가 씐다고, 나하고 영 다른 세계에 사는 거 같긴 해도, 같은 회사 동료에 회계담당이기까지 한데 무슨 일이 생길까 하고 500만 원을 맡겼다.

500만 원을 맡기고 열흘이 지나니 30만 원 정도의 돈이 통장으로 들어왔고, 그다음 열흘 후에도 비슷한 돈이 들어왔다. 몇 차례의 이자와 함께 원금이 돌아온 이후 굴릴 돈이 더 없냐는 얘기를 해왔지만 나는 아내 몰래 딴 주머니를 차는 사람이 아니었기에 없다고 했다. 돈이 더 없다는 말을 하면서 왜 내가 미안함을 느꼈는지, 지금 생각해도 모를 일이다. 

얼마 후 C는 좋은 기회가 생겼다며, 단기로 돈을 쓰겠다는 사람이 높은 이자를 준다는데 돈을 좀 만들 수 있으면 만들어보라고 얘기를 해왔다. 별일이야 있겠냐 싶기도 하고, 얼마 전에 느꼈던 예의 그 미안함도 있고 해서 일전에 돌려받은 500만 원에 500만 원을 더 보태 천만 원을 어찌어찌 만들어서 전달해 줬다. 그리고, 이번에는 열흘 후 70만 원의 돈이 통장으로 들어왔다. 


사고가 터진 건 한 달 후였다. 준다던 이자는 이미 두 번이나 건너뛰었고, C는 무슨 일인가 묻는 내게 '저쪽에서 돈을 더 굴리는 거 같은데, 아마 다음 달에는 밀린 이자와 원금에다가 약간을 돈을 더 보태서 넣을 겁니다'라고 대답했다. 좀 갸우뚱하긴 해도 별문제야 있겠나 싶었는데, 사고가 터진 그 주 월요일 C는 회사에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몇 번이나 전화를 해도 받지 않았다. 


결국 사고가 터졌다는 걸 알게 된 건, 다음날 다른 팀의 팀장이 하는 말을 듣고서였다.

-**팀장님. 혹시 C에게 돈 빌려주신 적 있으세요? 아이고, **팀장님도 빌려주셨구나. 모르셨어요? 아, 어제 **팀장님 외근 가셨다가 바로 퇴근하셨죠? 전화요? 안 돼요. 전화 안 받죠? 회사돈도 건든 거 같은데 얼마나 되는지 아직 모르겠어요. 대표 표정 보니 장난 아니던데..


머릿속이 멍해졌다.

자취하면서 밥도 잘 안 챙겨 먹는다고 해서, 일부러 밥 챙겨 먹인 것도 여러 번이고,  선약을 깨면서까지 회사일로 속상하다는 C와 둘이 소주를 마시며 C의 하소연을 들어준 것도 한두 번이 아니었는데, 뒤통수를 맞은 것이다.


이른바 폰지 사기였다. C는 회사 사람들에게 각기 모르게 적게는 천만 원에서 많게는 수천만 원까지 돈을 빌리고, 이자를 지급해 왔다. 그리고 각각에게는 은밀하게 진행되는 건이라 다른 사람에게 알리지 말라는 얘기도 빼놓지 않았다. 그것으로도 부족해 회삿돈 7억을 횡령했다는 것이 나중에 밝혀졌다. 


후에 들었지만, 형사재판에 나온 그는 횡령한 돈과 직원들로부터 빌린 돈은 대부분 도박과 토토, 주식에 썼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C는 실형을 선고받았다.




나는 그가 횡령을 저지르는 데 있어 공범이나 마찬가지다. 그에게 돈을 빌려준 많은 직원들 역시 공범이다. 그가 주식과 토토를 즐기고, PC방에서 밤샘 게임을 즐긴다는 것을 알았을 때도 그저 모른 척했다. 특히나 그가 회계담당으로 회사의 자금을 다루고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퇴근 후 택시를 잡아타고 강원랜드를 간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도 별말하지 않았다. 단지 그가 내 귀에 대고 소액의 돈이라고 있으면 굴려줄 테니 맡겨라라고 속삭일 때 그리고 약간의 이자가 통장으로 들어왔을 때 주식투자보다 낫구나 하고 웃었을 뿐이었다. 


C의 범죄행위로 인해 여러 사람이 직장을 잃었고, 회사가 문을 닫았다. 나 또한 돈을 빌려주었고 이자를 받았다는 것 때문에 그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견제하지 못했다. 그랬으니 회사의 대표가 나를 책망하고 원망했어도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그러니 부끄럽지만, 나는 피해자인 동시에 공범이다.


C는 돈을 다루는 회계팀장이었고, 그래서 더 고도의 윤리의식이 필요했다. 그러나 그는 오래전부터 몸에 익은 생활 습관을 버리지 못했고, 허술하게 관리되는 회사의 회계 시스템을 이용해 금고의 돈을 자기돈처럼 썼다. 한번 돈을 쓰기 시작하고 문제없이 넘어가자 횡령 액수는 더욱 커졌고, 대상도 더욱 넓어져 회사 직원들의 주머니도 자기 주머니처럼 여기기 시작했다. C는 실형을 살았지만, 지금쯤 어딘가에서 자영업을 하며 잘 살고 있을 것이다. 그가 내게 했던 많은 말들과 행동 등을 종합해 보면 충분히 짐작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그를 찾아 어떻게 하고 싶은 마음은 사라진 지 오래다. 


C팀장은 그를 중요한 구성원이라고 생각했던 회사와 그를 동료라고 여겼던 사람들에게 범죄 행위를 저질렀다. 그에게서 문제될만한 모습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을 때 모른 척할 것이 아니라 나는, 우리는 어떤 방법을 쓰든-그게 상사에게 고발하는 형태였더라도- 제지를 했었어야 했다. 작은 것을 지나치고 묵과하다 보니 큰 문제가 되었고, 결국 그것은 나의 문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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