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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기 Jul 11. 2024

M과 그의 아내

같은 목표를 바라보며 사는 것의 어려움

M이 이혼한 건 아이들이 각각 다섯 살, 세 살 때이다. 창업한 지 3년 차였다.

여행지에서 한눈에 반해 연애를 시작하고 헤어짐과 재회를 반복한 끝에 결혼한 아내였다. M은 유순하고 조용해서 친구가 많지 않은 반면, 아내는 호탕한 성격에 사람 만나기를 좋아해서, 결혼 몇 년 만에 장만한 아파트에서 이웃한 아이 엄마들이 언니, 동생 하며 따를 정도였다.


M은 직장생활 9년 차이던 서른여섯에,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창업했다. M은 학창 시절부터 다양한 IT프로그램을 직접 개발해 왔고, 회사에서도 최우수 개발자로 뽑혀 해외 연수를 다녀오는 등 개발자로서 이력을 차곡차곡 쌓아왔기에, 회사를 계속 다녔어도 꽃길을 걸었을 것이다. 직장생활 8년 차에 몸이 안 좋았던 것이 창업의 계기가 되었다. 2주간 병원에서 입원치료를 하는 동안, 달리 할 일이 없어 뚝딱거리며 장난처럼 개발한 프로그램이 한 온라인 카페에서 인기를 타기 시작해 창업까지 하게 되었다. 이후 개발한 프로그램을 사내 아이템 공모전에 출품해 최고상을 탔는데, 이익배분과 지분율 등 자회사 설립 과정에 이견이 커 결국 회사를 그만두고 창업을 하기에 이르렀다.


M이 자본금 3천만 원으로 창업한 회사는 3개월 만에 매출이 나기 시작했고, 그해 연말 결산을 해보니 약간이 이익이 난 것으로 확인됐다. M은 개발자임에도 재무를 꼼꼼하게 살피는 사람이었고, 손에 쥐고 시작한 자본금이나 외부 투자금이 아니라 매출로 들어오는 돈으로 급여를 지급해야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정상적인' 사업가였다.


M이 회사를 키우던 초창기에 합류한 사람들은 대부분 M 지인 또는 지인의 소개로 만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걔 중에는 M과 함께 일하던 사람도 있었고, 심지어 M의 직장 상사도 있었다. 전 직장에서는 상사였으나, M의 회사에 합류하며 M의 직원이 된 것이다.




M과 M의 아내 사이에 다툼이 시작된 건 첫째 아이를 낳고 나서부터다. 그리고 둘째를 낳은 후에는 M을 향한 분노와 불만의 강도가 훨씬 강해졌다. M의 아내가 화를 낼 때 하는 말들은 대략 이런 것들이었다.

-내가 너를 만나서 이 모양으로 살고 있다

-내가 하고 싶은 게 얼마나 많은 줄 알아?

-내가 애들하고 너 때문에 아무것도 못하고 인생이 쪼그라들고 있다

-이 멍청하고 바보 같은 인간아, 내가 너 어디를 보고 살아야 하냐

육아로 인한 스트레스 표출인 줄로만 알았던 것이 말도 안 되는 '그저' 분노 표출 같은 것으로까지 가는 동안에도 M은 묵묵히 아내의 불만과 폭력을 감내했다.


M의 아내는 연애시절부터 M을 자주 무시하곤 했는데, 그 이유는 M이 자기표현에 서툴고, 사람을 많이 만나지 않고, 자기의 관심분야 외에는 잘 모른다는 것이었다. M의 관심 분야는 프로그램 개발, IT 신제품, 새로운 기술 트렌드 같은 것들 뿐이었다.

M의 아내가 M에게 했다는 말 중에 가장 충격적인 건 연애시절 차 안에서 자신의 동생(M에게는 처남)과 함께 있을 때 동생에게 했다는 건데 대략 이런 내용이었다.

-어이구, 이런 바보는 나나 되니까 만나고 연애하는 거지. 누가 이런 바보를 만나냐?


결국 M은 아내와 이혼했는데, 이혼하면서 M이 갖고 나온 것은 자동차 하나뿐이었다. M의 아내가 아이들을 돌보기로 했기 때문에, 살고 있는 집을 아내 명의로 돌려주고 아이들이 클 때까지 생활비를 주기로 했다는 게 M이 전한 얘기였다. 육아에서 비롯된 스트레스가 시작이었는데, 아이들을 맡는 대신 M의 회사 외에 모든 것을 가져간다라는 것이 조금 이해는 안 갔지만 M이 그리 결정했다기에 같이 술을 마실 뿐이었다. 이후 M은 둘째가 초등학교에 갈 때까지 이따금 아이들의 집을 찾아가 (전) 아내, 아이들과 함께 저녁을 먹 했는데, 한 번은 저녁을 먹으면서 술을 마신 것 때문에 아이들이 있는 집에서 하룻밤을 묵고 나온 이후로는 집으로 찾아가지는 않는다고 들었다.  






M이 일에 집중하며 사업을 키우는 동안 아내는 일을 다시 시작하네마네 하다가 아이들을 데리고 미국으로 가버렸다. 미국에 아는 사람 하나 없는데도 이리저리 연줄을 만들고, 가서는 아이들 학교 보내는 등, 혼자 뭘 하는 걸 보며 어떤 면에선 대단한 사람이란 생각도 들었다.

M의 지원은 아이들과 (전) 아내가 한국에 있을 때 미국으로 갔을 때 줄어들지 않았고 오히려 늘었다. 가끔씩 뭉칫돈이 필요하다고 하면 보내줬고, 매달 보내주는 돈도 끊기지 않았다.

M과 술을 마실 때면, M과 나는 그의 아내가 과연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서 한 푼이라도 저금을 하긴 할까? 지금까지 얼마의 돈이 들어갔는지, 집을 포함해서 그런 돈이 어디에 남아있긴 한 건지 이런 얘기를 주고받았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이혼은 해버렸고, 다만 남은 건 아이들과의 관계뿐이니. M은, 그가 간혹 아이들과 통화를 하거나 방학 때 M을 보러 왔을 때 얘기를 하다 보면 엄마가 교육에 많은 신경을 쓰는 거 같지 않아 속상하다는 얘기를 하곤 했다.


M은 이혼 후 약 10년간 혼자 살았는데, 사업적으로는 성장을 거듭했다. 기존 프로그램을 업그레이드해 매출을 늘렸고 시장 트렌드가 바뀌면서 매출이 줄어들자 새로운 서비스를 만들어 출시해 재도약을 이끌었다. 그리고 그 기간 중 수십억의 투자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현재 M이 보유한 자산은 신도시 인근의 아파트 하나뿐이다. M이 사업에서 만들어낸 매출과 투자 이력을 들었을 때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었지만, 그가 아내에게 처음 이혼하면서 건넨 모든 자산 그리고 이혼 후에도 계속해서 지원했던 것들을 생각해 보면 얼핏 이해는 된다.


M은 뛰어난 개발력으로 좋은 서비스를 만들어 엄청난 규모는 아니지만 지속적으로 매출을 만들며 성장하는 기업을 만들었다. 보통의 사람들이 그 정도의 직장경력을 갖고, 사업까지 일궜다면 일반적으로 꽤나 풍족한 자산을 보유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M은 그러지 못했다. M은 자신의 친구와 술을 먹다가 딱 한번 운 적이 있다고 내게 말했다. 마포의 새 아파트에 입주한 친구네 집에 놀러 갔을 때 일이라고 했는데, 친구가 직장생활을 하며 일군 자산이 사업을 잘했다는 소리를 듣는 자신보다 훨씬 많다며 자기는 대체 뭘 한 건지 모르겠어서 너무 속상해 술자리를 파하고 나와 차에서 혼자 울었다는 것이다.


M이 결혼생활을 잘 유지하고, M의 아내가 M이 사업을 더 잘할 수 있도록 지원했더라면 M의 현재는 많은 면에서 달라지지 않았을까? 사업도 더 커지고, 본인이 속상해하던 자산도 일한 만큼 더 축적이 되어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결혼은 두 사람이 마주 보고 사는 것이 아니라, 같은 목표를 바라보는 두 사람이 함께 사는 것이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배우자가 직장생활을 하건, 사업을 하건 그리고 맞벌이를 하건 외벌이를 하건 적용가능한 말이 아닐까. 만약 M의 아내가 동지의식을 갖고 M과 많은 얘기를 하면서 같은 목표를 향해 가는 사람이었다면, M도, M의 아내도 더 행복하고 더 만족스러운 현재의 삶을 살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M은 아직도 사업을 유지 중이고, 최근 몇 년간 부침을 거듭하다가 작년부터 다시 흑자를 내며 순항 중이다. 그의 사업이 더 번창해서 마포의 아파트 주차장에서 흘렸던 눈물에 대한 기억을 잊었으면 좋겠다. 그럴 거라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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