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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기 Jul 18. 2024

ㅇ사장의 끈기

바닥에서 다시 올라가는 방법

ㅇ사장이 40대 중반일 때 남편의 가게가 망했다. IMF 영향이 컸다.

남편은 일용직이든 뭐든 돈 되는 일을 쫓아다녔지만, 빚으로 허덕이던 가게가 망한 것이니 살림도 바닥을 드러낸 상황이었다.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막 고등학생이 되었다.

남편의 가게가 망하자 가게일을 돕던 ㅇ사장도 취직을 해야 했다. 그렇게 앞뒤 가리지 않고 취직한 곳이 수원의 한 호텔 메이드 자리였다. 


1년을 넘게 남편과 함께 낮밤을 가리지 않고 일을 해도 형편은 나아지지 않았다. ㅇ사장은 다시 장사를 시작하려고 했지만 가진 돈이 없어 돈이 적게 드는 걸 고민하다가 김밥 장사를 떠올렸다고 했다. 처음엔 밤에 김밥을 말아 새벽에 출근하기 전 조금씩 길에서 팔았는데, 이내 이렇게 해서는 답이 안 나올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밤에 김밥을 말아 새벽에 팔고, 출근해서 호텔 메이드 일을 하면서 퇴근하면 어떻게 김밥을 말아야 맛있게 되나를 연구하는 생활이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밥을 이리저리 해보고

-지은 밥을 이리저리 비벼보고 

-김밥 속 재료를 종류별로 준비해서 다른 매칭으로 넣어보고

-김밥 속 재료를 다른 양념과 간으로 볶고 삶아보고


몇 달 동안 뜨거운 음식과 불에 손을 데고, 칼에 베이고 하며 밤잠을 아껴가며 연구했다고 한다. 그렇게 연구한 끝에 나름의 양념비율, 밥과 속재료 비율 등을 맞춰 자신만의 김밥 레시피를 완성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기존에 했던 것처럼 새벽거리에서 김밥을 팔았고, 사간 사람이 다음날 또 찾아오는 일이 반복되면서 가게를 얻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부부가 어렵게 다시 낸 가게는 신도시 시내의 테이블 여섯 개짜리 작은 분식집이었다. 남들보다 일찍 문 열고 늦게 닫고 하면서 김밥맛이 주부들과 출근하는 직장인들의 입소문을 타면서 아침저녁 그리고 아이들이 김밥이 필요한 날이 되면 김밥집 앞으로 줄을 서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하루에 20kg짜리 쌀을 몇 개를 씻어서 밥을 한다는 소문이 돌았고, 어느 날인가는 가게밖에서 포장을 기다리는 손님들 앞에 김밥 써는 기계가 등장했다. 지인의 말에 따르면 쌀을 씻다가 힘들다고 도망가는 아줌마가 생길 정도로 김밥이 많이 팔렸다고 한다. 그렇게 장사가 잘되니 10년도 안되어 김밥집이 있던 건물의 건너편 건물 2층을 모두 샀다는 소문이 돌았다. 나의 지인은 김밥집 사장님의 사촌이었는데 부부가 모두 좋은 대학을 나와 대기업에 다니고 있었다. 그러다가 사촌 언니가 김밥집으로 돈을 모아 건물을 샀다는 얘기를 듣고는 '직장인으로 살아봐야 과연 미래가 있는가'하는 생각에 사촌 언니를 만난 후 김밥집을 차릴 자리를 물색하러 다닌 적이 있다. 사촌 언니라는 ㅇ사장은 나의 지인에게 네가 하고 싶다면 도와주마라고 했다고 한다. 그러나 몸이 힘든 걸 각오해야 하고, 장사를 해보니, 맛도 중요하지만 결국 장사는 목이다라는 말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고 한다. 그래서 나의 지인은 부부가 주말이면 김밥장사를 할만한 자리를 찾아 동으로 서로 돌아다녔지만 결국 맛집투어만 한 셈이 되었다. 김밥집을 차릴만한 자리가 없었던 것인지, 현재 있는 걸 내려놓고 뛰어들만한 용기가 없었는지는 부부만이 알 일이다.


ㅇ사장에게는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ㅇ사장 부부가 김밥집을 차려서 장사에 불이 붙을 무렵엔 아들도 대학을 졸업하고 좋은 회사에 취업했다. 그리고 ㅇ사장 부부가 맞은편 건물을 산 지 몇 년 후에 회사를 그만두었다. ㅇ사장 부부가 하던 김밥집을 프랜차이즈화 하기 위해서였다. ㅇ사장 부부의 김밥집은 신도시를 중심으로 빠르게 늘어났고, 한때 50여 개를 넘어서기도 했다. 그러나, 늘어나던 가맹점은 어느 날부터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했고, 결국 가맹사업을 시작한 지 10년이 채 안되어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아마도 ㅇ사장 부부가 많이 지친 것이 가장 큰 원인이었을 것이고-ㅇ사장 부부는 이미 60대 중반을 넘어서고 있었다-, 몇 년 후 김밥 브랜드가 갑자기 늘어나면서 경쟁이 치열해진 가운데 소박한 동네 분식점을 표방하는 ㅇ사장의 음식이 경쟁력을 잃은 것이 원인이었을 것이다. 


아들이 진행했던 프랜차이즈 사업은 결과적으로 실패한 것처럼 보였지만, ㅇ사장 부부의 사업은 어마어마한 성공을 거두었다. 그 결과 ㅇ사장 부부는 '신도시 중심 시내에서 가장 큰 건물의 2층을 모두 사들인 사람이 김밥집 사장님이래'라는 소리를 들었다.

ㅇ사장 부부의 김밥집이 한창 유명세를 떨치던 때 나도 김밥을 사기 위해 여러 번 줄을 선 적이 있다. 나와 아내는 그집의 소박한 김밥을 먹을 때마다 '재료가 특별한 것 같지 않은데도 맛있네'라는 말을 여러 번 했다. 



세상에 운이라는 게 존재할까? 아마도 존재할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사업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운이 좋아 성공했다는 말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사업가들이 말하는 운이라는 것의 정체가 단순히 초코렛 상자 속에서 뽑아먹는 각기 다른 맛의 초코렛같은 건 아닐 것이다. 
ㅇ사장이 김밥 한 줄에 명운을 걸고 밤잠을 설쳐가며 불과 기름, 뜨거운 음식에 데고, 칼에 베이며 '스스로' 만들어낸 것, 그것이 운 아닐까?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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