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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기 Jul 05. 2024

2세 경영인들 (2)

컨설팅과 실제는 다르다

ㅎ부사장은 중소기업 창업자 회장의 차남이다. ㅎ회장은 50년 전 회사를 설립해 한때 매출 400억 원 규모로까지 회사를 키웠다. ㅎ부사장은 미국 유학을 다녀와 컨설팅 펌에 다니다가 부친의 회사에 합류했다. ㅎ회장은 슬하에 3남을 두었는데, 장남에겐 규모가 크진 않지만 꾸준한 수익을 올리는 부문을, 차남에겐 창업과 성장의 기틀이 되었던 사업을 각각 분리해 맡겼다. ㅎ부사장은 회사에 합류하면서 동종업계의 기업들과 합병해 사업구조의 수직적 완성을 꾀했다. 합병을 통해 ㅎ부사장이 맡은 회사의 규모는 직원 300명에 매출 450억 정도가 되었다. 셋째는 미국 유학을 중도포기하고 돌아와 ㅎ부사장의 회사에 합류했다. ㅎ부사장은 사장이라는 직함을 두지 않고, 회장님 아래 부사장으로 존재했다. 장남은 분리된 별개의 회사에서 사장이란 직함을 갖고 활동했다.

 

ㅎ부사장이 계획한 사업의 수직 계열화는 처음에는 성공적으로 운영되는 거 같았지만, 5년도 안되어 밑천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회사를 유지하는 매출의 대부분은 오래된 사업부문에서 나왔고, 새로 합류한 사업부문은 비전은 그럴듯했지만 매출은 보잘것없었다. 그럼에도 오래된 사업부문보다 새로운 사업부문의 사람들이 어린 나이에 높은 연봉을 받는 등 사업부문간의 물리적 결합과는 별개로 화학적인 온전히 결합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렇게 몇 년이 흐르자 오래된 사업부문의 사람들로부터 '왜 우리가 쟤들을 먹여 살려야 하나'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고, 특히 팀장급 이상의 사람들 사이에서 알력이 생기기 시작했다.


잘하려고 한 합병이 서로 물고 뜯는 상황으로 변해간다

ㅎ부사장은 합병을 통해 사업을 결합시키면서 대부분의 사람을 그대로 끌어안았다. 그래서 합병된 회사에는 나이 든 사람부터 이제 막 회사생활을 시작한 사람까지 다른 부문에서 비슷한 업무를 하는 나이차와 경력차가 많이 나는 사람들이 공존했다. 또 사업 간 유기적 결합이 없이 수직적으로 뭉쳐있다 보니 각 사업은 따로 놀았고, 매출의 연결고리도 없었다. ㅎ부사장은 회사 내 구성원들의 화학적 결합을 위해 월간 전체 미팅, 동호회 활동, 점심 같이 먹기 등 여러 가지 노력을 했지만 쉽지 않았다. 결정적으로 새로운 사업부문에서 충분한 매출성장이 이루어지지 못한 것이 컸다. 그래서 매출이 나오는 사업부문 사람들 사이에서 우리가 왜 너희들을 먹여 살려야 하냐라는 말이 나왔다. 


ㅎ부사장의 구상과 비전은 거대했다. 참여하고 있던 사업부문의 가장 낮은 단계부터 가장 높은 단계까지 시장을 차지하겠다는 것이었다. 전체 시장이 크지는 않지만 그렇게 수직적으로 뭉쳐 다 차지하면 업계 1등이 되는 건 가능하리라 본 것이다. 그러나 ㅎ부사장의 사업부문 중 어느 것 하나 확실한 1등이 없는 상황에서 수직적으로 뭉쳐있다 보니 끌고 당기고 할 수 있는 여력이 없었다. ㅎ부사장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회사의 성장은 정체됐고, 결국 사업 간 수직구조 합병 이후 7년 만에 회사는 다시 세 개의 부문으로 갈라져 매각되었다. 사업부문을 가져가는 대신 부채를 안고 가는 조건이라 ㅎ회장과 ㅎ부사장이 가진 지분은 휴지가 되었다. 결국 ㅎ회장에게 남은 건 장남이 운영 중인 규모가 크지 않지만 꾸준한 매출이 나오는 오래된 사업부 문 뿐이었다. 



ㅎ부사장이 합병을 하고 사업을 시작할 때 합병된 회사의 대표 한 명이 합류했는데, 그는 재무이사를 담당했다. 후에 회사가 좌초를 했는데 결과적으로 금전적 이익을 본 사람은 그뿐이었다. 그는 회사의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고 판단하자 ㅎ부사장과 면담 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났다. 앞서 ㅎ부사장이 컨설팅회사에서 일할 때 동료를 한 명 영입한 적이 있는데 그는 합류 후 1년이 채 못되어 컨설팅업계로 돌아갔다. 그의 뛰어난 업무능력과 소탈한 성격 등을 회사의 구성원들이 받아주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ㅎ부사장은 합병을 하자마자 그 즉시 합류한 재무이사와 컨설팅회사에서 데려온 동료를 리드해 혁신의 드라이브를 걸거나, 기존 구성원들 중 뛰어난 멤버를 선별해 혁신에 드라이브를 걸었어야 했다. 인사와 조직을 혁신하고, 사업부문을 조정했어야 했다. 컨설팅 회사를 통해 수천만 원을 들여 혁신 및 사업구조개선안을 받았지만 책상 위에서 만들어진 혁신안은 실행되지 못했다. ㅎ부사장이 좀 더 빨리 회사로 들어와 더 적극적으로 문제와 개선점을 파악했으면 어땠을까. 기존에 잘하고 있던 사업을 바탕으로 혁신안을 만든 뒤 투자를 유치하고, 보유하고 있던 자금을 더해 사업을 추진했다면 다른 결과를 만들 수 있었을까? 


ㅎ부사장은 창업자 회장의 피를 갖고 세상에 나왔지만, 그의 사업적 열정과 재능까지 갖고 난 건 아니었다. 창업자 회장이 맨손으로 창업해 거리로 뛰어나가 상품을 알리고 판매하면서 키운 것과 달리, ㅎ부사장은 어려움에 처하자 부채와 지분을 정리하고 손을 털었다. ㅎ부사장이 창업자 회장 같았다면 아마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방법을 모색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ㅎ부사장의 두뇌와 경력은 창업자 회장이 삼 형제 중 치켜세울만한 수준이었는데, 컨설팅 업계에서 이미 자리를 잡은 기업들에게 미래 먹거리를 제안하거나 조직 혁신을 제안하는 정도로는 훌륭했을지 모르지만, 곳간이 비어 가는 기업을 처음부터 일으켜 세울 수준의 그릇은 아니었나 보다.

 

ㅎ부사장은 결국 컨설팅 업계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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