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기 Jul 01. 2024

2세 경영인들 (1)

실패의 원인은 안일까, 밖일까

ㅇ대표는 중견기업 창업자 회장의 차남이다. ㅇ회장은 슬하에 2남 1녀를 두었는데, 장남은 모기업의 대표를, 차남은 자회사 두 개의 대표를 맡다. ㅇ회장이 늦은 나이에 자신의 회사를 창업하다 보니 장남은 대학 졸업 후 일반 회사에 취업했다가 부친의 회사에 합류했다. 부친의 사업이 성장할 때 대학을 졸업한 차남은 졸업 후 일본 유학을 떠났다. 유학을 마치고 국내 굴지의 광고회사에 취업한 ㅇ대표는 10년쯤 경력을 쌓은 후 부친 회사의 자회사를 만들어 대표를 맡았다.


ㅇ대표가 자회사 대표를 맡아 합류할 시기엔 모회사의 사장으로 전문 경영인이 있었지만, 2년쯤 지나 전문경영인이 퇴임하고 부사장이던 장남이 사장이 되었다. ㅇ대표가 맡은 자회사는 두 가지에 집중했는데, 하나는 대기업 광고회사에 맡겼던 모회사의 광고홍보마케팅을 쇄신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모회사 사업부문의 니치마켓을 찾아 공략해 전체 시장 점유율을 높이는 것이었다.


ㅇ대표의 경영은 처음에는 성공하는 듯싶었다. 기존보다 적은 비용으로도 의미 있는 결과물들이 나오기 시작했고, 모회사 광고 외에 외부 광고를 수주해 매출을 올리기 시작했다. 또, 모회사 사업부문의 니치마켓으로 찾아낸 온라인 전용 상품은 최소의 비용으로 초기 시장에 안착하며 매출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ㅇ대표가 맡은 자회사의 실적이 조금씩 나아지는 시점에 사고가 터졌다. 온라인 전용 상품을 팔던 회사의 재무팀장이 횡령사고를 내고 자취를 감춘 것이다. 횡령액은 8억 정도로 확인됐다. 급한 불은 모회사로부터 융통받아 껐지만, 이후 자회사의 실적은 나아지지 않았다.

횡령사고가 터진 후 ㅇ대표는 재무팀장과 가깝게 지낸 사람들을 경계하고, 비난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조직 관리나 인사 관리에 대해서는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다. 특히, 횡령사고 이후로 회의 분위기는 참석자들이 자기 의견을 내놓고 말하지 못하는 형태로 조성됐다.


직원들이 그만두기 시작했다. 온라인 전용 상품 판매회사부터 시작해, 광고 마케팅 회사까지 경력 있는 직원들부터 이탈이 시작됐다. 이미 뭔가 해보자는 으쌰으쌰 하는 분위기는 사라지고 말았다.

능력 있는 직원들이 떠나간 회사에서 ㅇ대표 가장 가까이 앉아있는 직원은 오랫동안 서무와 잡무를 하다가 과장으로 진급한 지원 직원 한 명뿐이었다. 다만, 그가 하는 일은 ㅇ대표의 사업을 키우는데 도움 되는 분야는 아니었다.


온라인 전용상품을 판매하던 회사는 횡령사고가 일어난 지 3년 후에 문을 닫고 모회사에 흡수됐다. 광고 마케팅 업무를 하던 회사는 명맥을 유지하고 있지만, 모회사가 지원을 끊으면 언제든 문을 닫아야 하는 상태이다.  




ㅇ대표가 맡은 사업의 실패는 직원의 횡령사고가 가장 원인이라고 있다. 횡령사고가 없었다면 온라인 전용판매 사업도 계속 유지됐을 것이고, 사업과 조직 모두 그대로 변화 없이 이어갔을 것이다. 그러나 ㅇ대표가 맡은 사업의 부진과 실패 원인을 찾는데 횡령사고만큼이나 중요한 건, 먼저 ㅇ대표라는 사람을 살펴보는 것에 있다고 생각된다.


ㅇ대표는 평소 본인은 남보다 우월한 사람이란 생각이 강했고, 그런 생각 때문에 남을 업신여기고 남들과 같은 대접을 받는 것에 불쾌감을 많이 느꼈다. 겉으로 표시를 내지는 않았지만, 자신이 편하다고 생각하는 회사의 주요 팀장들과 술을 먹거나 자리를 할 때면 그런 내색을 노골적으로 비쳤다. 정치적 의견을 거리낌 없이 내비치며 자신과 반대되는 진영은 노골적으로 쓰레기 취급하는가 하면, 미국에서 여행용 핸드백으로 큰 부를 일군 사람을 싸구려로 돈 번 장사꾼이라는 식으로 매도하기도 했다. 또 자신이 부친의 성공으로 인해 물려받은 것들을 자신의 노력으로 얻은 것처럼 자랑스러워하면서 '자네들도 열심히 하면 이렇게 될 수 있어'라는 식으로 말하거나, 자신이 가져가는 수 억의 소득은 작다고 생각하면서, 재입사한 경력 7년 차의 직원에게 지급하는 연봉 4천만 원은 너무 많다는 얘기를 수시로 했다. 그러다 보니 ㅇ대표에게 쓴소리를 하는 사람은 점점 줄어들고, 횡령사고 이후로는 한 명도 남지 않게 되었다. 이후 ㅇ대표 주변에 남은 사람은 시키는 대로만 하는 사람들뿐이다.


ㅇ대표는 평생 동안 장남인 형보다 부족하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그럼에도 차남이라는 이유로 모회사가 아닌 자회사를 맡아야 했다. 그래서 자회사를 통해 형이 두드리지 않는 기회의 땅을 찾아 헤맸고, 조금 성공하는가 싶었지만 결국 실패했다. 장남은 남들이 보기에 사업에 관심 없고 주식투자와 레이싱에 관심 있는 한량처럼 보였지만, 수성에 집중해 부친이 남긴 사업을 키우지는 못했지만 허물지는 않았다. 장남은 지키기만 해도 칭찬받고, 차남은 지키는 것이 아니라 키워야 능력을 인정받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결과의 차이가 생겼을지도 모르겠다. 또, 굳이 월급쟁이의 관점에서 얘기하자면, 장남과 차남의 차이라기보다는 일찍이 남이 주는 월급을 받아가며 직장 생활을 하다가 부친의 회사에 합류해 같이 키워간 사람과 부친의 성공에 힘입어 유학을 다녀와 단지 경력을 쌓기 위해 국내 굴지의 거래처에 들어가 일하다 자회사를 설립해 합류한 사람의 차이라고도 있지 않을까?

이전 08화 벤처기업인 K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