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기 Jul 03. 2024

지점장 K

승진 후 나타난 독선

K는 입사 25여 년이 지나서 지점장이 되었다. 

K에게는 같은 직장에서 만나 언니동생하던 4명의 모임이 있었다. 모임은 본점과 타지점에서 근무중인 A와 B, 그리고 같은 지점에서 근무 중인 C로 구성되었는데, K는 C와 가장 친한 동료이자 언니였다. 골프 치고, 와인 마시고, 카페에 가고 주말에는 간혹 서로의 집에서부터 모여 하루를 같이 보내는 그런 모임이었다.


K가 지점장이 되고 6개월이 채 못되어 모임이 깨질 위기에 처했다.

동료면서 입차연차로 보면 오히려 낮은 '언니' K가 지점장으로 승진하자 C는 씁쓸한 면도 없잖아 있었지만, 진심으로 기뻐했다. 그러나, K가 지점장이 되고 나서 그의 민낱을 보게 된 것에 대해서 조금 늦었지만 다행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K는 지점장이 되자 지점 직원들과 친밀하게 지내면서 소통을 많이 하는 좋은 지점장이 되겠다고 결심했다. 그래서 지점 직원들에게 서프라이즈 선물로 케이크나 과일을 선물로 보내거나, 자신이 휴가를 다녀오면서 티셔츠 같은 것을 사 와서 몇몇 직원들에게 선물로 주기도 했다. 여기까지였으면 좋았을 텐데 K는 반응을 기대했다. 내가 이렇게까지 하는데, 사람들이 왜 반응이 늦지? 사람들이 매너가 없네. '김 과장, 어제 내가 보내준 케이크 받았어? 어? 그런데 왜 반응이 없어?', '이 차장, 지난번에 사준 티셔츠 안 입네. 별로야?' 이런 식으로 일방적인 선물에 대해 상대의 감사와 반응을 강제하면서 받은 사람을 불편하게 만드는 것이다.


어느 날 K는 C에게 주요 고객의 업무를 '잘' 처리해 달라는 요청을 했다. C는 K가 부탁한 고객의 업무를 처리하던 중 고객이 실수로 챙기지 못한 서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음에 가져오라는 말과 함께 업무를 처리해 주었다. 그런데 다음날 K는 C를 불러 누락된 서류가 있으면 업무를 즉시 처리하지 말았어야 한다며 C를 질책했다. K가 말한 업무 가이드는 맞는 말이다. 그러나 C는 K가 직접 그의 고객 업무를 '잘' 처리해 달라는 부탁을 했기에, 고객으로부터 누락된 서류를 나중에 챙겨 받기로 하고 업무를 처리해 준 것이었다. 만약 그런 요청이 없었다면 C는 고객에게 누락된 서류가 있어서 업무 처리가 안되니 서류를 준비해 오면 기다리는 일 없이 바로 처리해 드리겠다고 안내를 했을 거라고 했다. 그러나, K는 C에게 업무의 원칙을 강조하며 그렇게 일을 처리한 것에 대해서만 질책했다. C는 K와 더 하고 싶은 말이 없어서, 알겠다고 하며 그 자리를 벗어났다.

얼마 후 C는 휴가를 내고 딸과 여행을 다녀왔는데, C가 없는 집으로 K가 과일바구니를 보내왔다. C와 K사이의 일을 알고 있는 C의 남편이 집에 있다가 과일바구니를 받았는데, 이게 대체 왜 왔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왜 내 말을 안 들어


지점장이 되기 전 K는 좋은 언니, 친한 동료였다. 그러나 지점장이 되고 나자 권위와 위계가 있는 상사가 되었다. K는 지점장에 대한 인사평가의 기준인 동료와 아래직원들의 평가와 관리에 대해서도 신경이 쓰였을 것이다. 그러나 아래직원들의 평가를 서프라이즈 선물로 살 수는 없다. 또 업무에 있어 가이드대로 하는 정확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듣고 싶었는지 모르겠으나, 자신이 한 말부터 떠올리며 자신이 업무 요청을 잘못한 것은 아닌지 반성해야 하지 않았을까. 


이 이야기는 C의 입장에서 전해 들은 것이라 K의 입장에서 판단할 수는 없다. 이야기란 원래 타인의 단점을 부풀리고, 나의 입장과 장점을 내세우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해 들은 몇 가지 에피소드에서 관점과 입장을 배제한 채 사실만 바라보아도 K의 태도는 이해가 안 된다라고 말할 수 있다.


사기열전에 나오는 유명한 말 중에, 도리불언하자성혜(桃李不言下自成蹊)라는 말이 있다. 복숭아나무와 배나무는 말이 없지만, 그 밑으로 절로 길이 난다라는 뜻을 가진 말이다. K가 새겨야 할 말인듯하다.


또, 용재수필이라는 오래된 중국 책에는 이런 문장도 있다.

조조와 사마사는 간신이다. 그러나 군사를 지휘함에 명예는 다른 사람에게 미루고, 오명은 자신이 뒤집어 쓰는 것으로 여러 사람들의 지혜를 모았으니, 누가 그를 위해 전심전력하지 않겠는가? 


리더라면 배워야 할 점이 아닐까?

이전 09화 2세 경영인들 (1)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