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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화 Aug 04. 2019

너, 인사 왜 해?

Why are you doing HR?


불과 얼마 전의 일이다. 오후 두 시쯤, 회사 대표(지사장)와 단둘이 미팅룸에 앉아 회의 중이었다. 누군가의 퇴사에 대한 회의였고, 퇴사라기보단 권고사직에 가까운 케이스였으므로 미리 상황 공유를 하고 진행 방식에 대해 논의하는 자리였다. 그날따라 하필이면 내 선배는 출장을 가있고 나머지 관계자들은 전부 외국에 있어서 그 회의는 오롯이 내 몫이 되었다. 대표랑 둘이 하는 회의가 누군들 안 부담스럽겠냐만은, 회의 안건도 안건이고 딱히 내가 원래 해오던 익숙한 일도 아니었어서 영 긴장했었다. 대충 브리핑을 끝내고 마지막으로 서류를 검토하며 당사자를 기다리는데, 갑자기 대표가 물었다.


Why are you doing HR?



너 인사 왜 해? 이 뜬금없는 질문에, 한참 긴장해있던 몸에서 갑자기 힘이 쭉 빠졌다.


“huh?”


이게 뭔 소린가 싶어 뭐라 대답도 못하고 바람 빠지는 소리만 냈더니, 스스로도 이게 굉장히 뜬금없었다는 걸 인지했는지 대표가 머쓱한 얼굴을 하며 중언부언 덧붙였다. 아니, 인사 일 하다 보면 맨날 이렇게 안 좋은 얘기 다룰 때도 많고, 사람들도 다 너한테 불평만 늘어놓고, 알잖아.

 

이어진 말에도 나는 딱히 대답을 돌려주진 않고 그냥 그의 말을 따라 했다. 맞아, 맨날 이렇게 안 좋은 일만 다루고 있고, 내 잘못도 아닌데 사람들은 다 나한테 몰려오고, 네 말이 맞아, HR 별로야.






 


아무리 캐주얼한 질문이었어도 내 상사의 상사의 상사가 물었는데, 적어도 마지막 마무리는 “그래도 나 많이 배우고 있고 HR 정말 보람 있는 일이야!”하는 새마을운동 구호 같은 것이 되었어야 하지 않을까-라고, 이 글을 쓰는 순간에 와서야 생각하고 있다. 그 순간에는 정말이지 그런 식의 입에 발린 말은 하나도 생각나지 않았다. 공격이 너무 급작스럽게 훅 들어와서 방어는커녕 축 늘어져버린 느낌. 나는 ‘You are right, HR sucks.” 하고 농담이라는 듯 웃었고 대표도 웃었다. 마침 미팅 당사자가 도착하는 바람에 그게 마지막 말이었다. 세상에, 그게 마지막 말이었다니.


그러니까 정확히 말하자면 나는 결국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HR 거지 같지 않아? 근데 왜 해?라고 물은 사람한테 ‘맞아 HR 거지 같아’ 까지만 대답한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왜 HR을 선택했는지, 왜 계속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하지 않은 걸까, 아니면 하지 못한 걸까. 글쎄, 애초에 내가 그 질문에 답을 가지고 있기는 한가? 아니, 그 의문을 가져본 적은 있었나?






그러니까 나는 왜 인사를 하고 있나.


실마리를 찾자면 우선 처음으로 돌아가 이야기를 시작해야 한다. 너무 보잘것없어서 쓰기에도 쪽팔린 이야기더라도. 때는 2015년, 나는 졸업을 몇 달 앞두고 열심히 일자리를 찾고 있었다. 여러 회사에 자소서를 넣었는데 한 70% 정도는 홍보/마케팅 직군이었고 나머지 한 30% 정도는 인사/경영관리 직군이었다. 글쎄, 왜였는지는 잘 모르겠다. 말이나 글로 하는 커뮤니케이션에 자신이 있어 대충 홍보나 마케팅을 타깃으로 자소서를 꾸며내긴 했지만, 솔직히 돌이켜보면 나는 딱히 관심 있는 ‘직무’라는 게 없었다. 취준을 시작하기 한 두 달 전까지만 해도 얼렁뚱땅 대학원이나 가야지, 하는 안일한 생각을 하던 사람이었고 뭐가 됐든 어딘가 기업에 취직해서 일하는 것에 대해 딱히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각 직무가 뭘 하는 건지에 대한 깊은 이해도 없었을뿐더러 그때는 내 꿈과 적성을 찾는 것보단 취직하는 게 우선이었다.


그런 안이한 마인드를 가졌던 것치고는 운 좋게도 한 회사에 입사하게 되었다. 지원했던 직무는 홍보였고, 내가 비록 기자가 되지는 못했지만 보도자료 정도는 써보겠구나 싶어 마음이 설레기도 했었다. 뭐 다른 건 잘 모르겠지만 글 쓰는 일은 좋아하는 편이었으니까.

그러나 입사 후 긴 연수를 다 끝내고 배치받은 나의 직무는 ‘인사’였다.



어디서부터 틀어진 건지는 모른다. 신입사원 티를 막 벗을 때쯤 한 번 선배에게 물어본 적은 있다. 어쨌든 인사에 있는 사람들이 내 자소서를 봤고 면접을 봤고 배치를 했으니까, 왜 홍보가 아니라 인사로 데려왔는지 대답이라도 듣고 싶었다. 슬쩍 물어본 질문에 첫 번째로 나온 대답은, ‘야 홍보는 원래 남자만 보내’였다. 참으로 간단명료한, 넘을 수 없는 벽. 선배는 네가 생각하는 것과 다른 직무라고 코웃음을 치기도 했다. 가면 하는 일이라곤 기자들이랑 밤새 술 먹는 것뿐이라고, 네가 그걸 견딜 수 있었을 것 같냐고. 뭔가 예상치 못했던, 지나치게 현실적인 답변에 좌절감을 감추지 못하는데 두 번째 대답이 뒤 따라 나왔다. ‘그리고 인마, 넌 누가 봐도 인사할 놈이야.’ 차마 그 이유를 더 묻지 못할 정도로 그 말엔 확신이 서려있었다. 그 후로도 나는 비슷한 질문을 여러 번, 각기 다른 선배나 상사에게 했고 대답은 전부 비슷했다. 너는 인사에 어울려, 넌 내가 면접 볼 때부터 알았어, 너 딱 인사할 애였다니까?



반쯤은 그 말들을 믿고 여기까지 온 것 같기도 하다. 어쨌든 사람 보는 게 업인 사람들이 내가 인사에 어울린다는데 뭐 틀린 소리는 아니겠지 싶었달까. 나중에 유통사에서 같이 인턴십을 했던, 그리고 아직 그 회사에 다니고 있는 친구로부터 뜬금없는 연락을 받고 나서는 더더욱 그랬다. 영업직으로 근무했던 인턴인데, 그때 영업팀 팀장으로 계시던 분이 이번에 인사팀으로 전보를 가셨다고 했다. 그러고 나서 그때 그 인턴 걔 지금 어디 있냐며 나를 찾으셨다고, 인사팀에 데리고 오고 싶다면서. 나 참. 이쯤 되니 이건 뭐 어느 회사에 갔어도 결국 인사를 해야 할 숙명이었나 싶기도 했고, 그 뒤로는 직무에 대한 고민을 딱히 해보지 않았다. 나 정말 인사에 어울리는 사람인가 봐, 하고 남들의 단편적인 평가를 차곡차곡 그러모아 내 안에 확신으로 심었다. 맞다니까, 저 사람들이 다 너 어울린대잖아, 하면서.


이직을 하면서도 직무를 바꿀 생각은 딱히 해보지 않았다. 주변에 인사라는 직무가 안 맞아 완전히 다른 직무로 새 출발을 한 친구들이 있었음에도, 그래서 겨우 3년 차에게는 그게 영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는 걸 알았음에도. 이제와 다른 일을 시작하는 게 무서웠던 것도 있지만, 다른 일 중에 딱히 하고 싶은 일이 없기도 했다. 어차피 회삿일은 다 거기서 거기인 것 같고, 웬만하면 그냥 내가 조금이라도 잘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게 낫다 싶기도 했고. 그러나 아직도 나는 확신이 없다. 내가 정말 인사를 잘할 수 있는 사람인가?








솔직히 말하면, 인사를 잘한다는 게 대체 어떤 의미인지 나는 아직 잘 모르겠다. 인사, 인사하고 떠들고 있지만 그래 봐야 일다운 일을 시작한 지 채 4년밖에 안 된 초짜에 불과하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있기는 하다. 인사는 대체 뭐 하는 직무인가, 그리고 어떤 사람이 인사를 잘하는 사람인가?


어쨌든 한 마디로 말하자면 사람을 다루는 일이고, 사람을 대하는 일은 어려운 일이다. 자로 재듯 딱딱 그어 완벽한 기준을 만들 수 있는 일도 아니고, 모두의 성과를 정확하게 숫자로 치환해서 완벽하게 보상을 해줄 수도 없고, 저번 케이스를 그대로 적용해서 매번 똑같이 대응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기준은 늘 요동치고 사람들은 늘 아우성치고 나는 어쩐지 그 사이에 끼어있는 것만 같다. 그래 봐야 결국 나도 이 회사의 직원일 뿐인데, 나는 직원들과 다 같이 서있다기보다는 그들로부터 한 걸음 떨어져 회사에 가깝게 서있다. 그 애매한 간극에 내 행동반경을 정하기도 어렵다. 나는 이 사람과 직장동료로서 이야기하고 있는데, 저쪽에서는 ‘인사팀 담당자’와 얘기하고 있을 때가 허다하니까.


그러나 똑같은 이야기를 다르게 말하면, 인사도 결국 커뮤니케이션의 문제다. 가끔은 그 누구보다 민감하고 섬세한 커뮤니케이션을 직조해내야 하는 직무고, 그것이 말이 되었든 글이 되었든 나는 여전히 거기서 보람을 느낀다. 내 말 한마디로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 손 떨리게 무섭지만 동시에 경이롭다. 원칙을 지키면서도 매분매초 사람을, 그들의 감정과 상황을 이해하고 생각해야 하는 일. 아직도 내게 '인사'라는 세계는 영 미궁이지만 적어도 나는 지금 이 일에 깃들어있는 아주 사소하고 미세한 예술, 그것이 주는 보람을 찾아가고 있다.






그러므로 일단은 계속해볼 생각이다. 앞이 깜깜하여 한 걸음 한 걸음 내딛기가 두렵고, 매 순간 외줄을 타듯 온 몸의 신경을 곤두세우고 균형을 잡으며 걷는 일이 영 몸을 피곤하게 하기도 하지만, 일단은. 너무 멀리 보고 두려워하기보다 매 걸음 속에서 조금씩 나아지는 스스로를 느끼면서.


비록 이번엔 처참히 실패했지만, 언젠가 누군가 내게 다시 물어줬으면 좋겠다. 너, 이 일을 왜 하고 있느냐고.

그리고 그때는 부디 상대의 의문을 말끔히 해소해 줄 답을 내놓을 수 있었으면.


그러기 위해선 일단 걸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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