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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화 Nov 12. 2018

행복의 건축, 행복해지기 위한 건축

알랭 드 보통 <행복의 건축>


알랭 드 보통의 글을 좋아하는 건 그가 항상 인간에 대해, 특히 인간이 더 행복해지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특유의 통찰력으로 현상 이면의 세밀한 감정과 욕구를 포착해내고, 그 애매모호한 것들을 독특한 언어로 표현해낼 줄 아는 사람. <행복의 건축>에서도 결국 작가가 이야기하는 건 건축 그 자체라기보다, 인간의 건축과 미의 추구에서 엿보이는 행복에 대한 열망이다. (행복이라는 단어가 딱 알맞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적어도 균형이나 이상, 완벽 같은 단어보다는 나을 것 같다)


미학을 논하는 데 있어 건축이 이렇게 적절한 주제일 거라고는 생각해 본 적 없지만, 작가는 언제나처럼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건축은 물론 어떤 종류의 '기능'을 제공하는 데 목적이 있지만, 우리는 거의 모든 건축에 대해 단순한 기능 이상의 것을 바란다. 건물에서 불필요한 장식을 모두 제거하고자 했던 이른바 모더니즘 건축가들 조차도 아름다움이라는 요소를 배제하지는 못했다. 다만 추구했던 아름다움이 다소 달랐을 뿐.



"아름다운 것을 보면 그것을 사고 싶다는 것이 일반적인 반응이지만, 우리의 진정한 욕망은 아름다운 것을 소유하기보다는 그것이 구현하는 내적인 특질을 영원히 차치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중략)... 우리가 원하는 것은 가장 깊은 수준에서 보면, 그 아름다움으로 우리를 감동시키는 대상과 장소를 물리적으로 소유하기보다는 내적으로 닮는 것이다."



이상적인 특질을 유지하기 위한 지지대로서, 결핍된 무언가를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써 인간은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건축 양식을 연구한다. 인간이 단순히 비바람을 피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닌 자신의 자아를 드러내는, 혹은 가지지 못한 무언가를 환기하는 공간을 집으로 여기는 건 그래서다. 건축이 가진 양가성-실용주의와 탐미주의-을 늘 매력적으로, 그러나 어렵게 느꼈던 내게는 명쾌하기만 한 설명이었다. 특히 시대마다 불균형의 지점이 바뀌고 개인마다 잃어버린 것이 다르기에 아름다움의 이상도 다를 수밖에 없다는 건 예술의 들쭉날쭉한 기준에 대한 참 듣기 좋은 해설이었고. 건축이 아름다움의 반영이라면 왜 그 이상적 특질은 시대에 따라 변하는가? 왜 건축양식은 시대에 따라서 달라져야만 하는가? 문제에 대한 답은 비단 건축에 국한되지는 않는다.



"우리는 우리가 개인적으로, 또는 사회가 전반적으로 소유하지 못한 특질들을 집중적인 형식으로 포함하고 있는 것을 찾아낼 때마다 그것을 아름답다고 부르게 된다고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우리는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으로부터 우리를 멀리 데려가고, 우리가 갈망하는 것으로 가까이 데려다줄 수 있는 양식, 우리에게 없는 미덕들을 적절하게 가지고 있는 양식을 존중한다."



스탕달의 말처럼 "행복을 바라보는 관점만큼이나 아름다움의 양식도 다양하다". 행복해지기 위한 건축을 설명하기 위해 작가는 여러 시대의 전범을 가져와 보여주었지만 결국 남는 건 나와 나를 둘러싼 환경에 대한 생각이다. 특징이라곤 없이 밋밋한 아파트와 딱딱한 사무실에서 인생의 대부분을 보내고 있는 내게-또 내 주위의 모두에게- 건축은 너무 크고 비싼 고민이긴 하지만. 언젠가부터 인테리어에 집착하고 점점 더 집착하게 되는 게 결국 그래서가 아닐까. 건물의 외벽이나 기둥의 모양은 건드릴 수 없지만, 적어도 내게 주어진 이 작은 테두리 안에서나마 나는 환경을 '설계'할 수는 있으니까. 확실히 최근의 나는 내 환경을 조금씩 건드리는 것으로 불균형한 자아를 대신 어루만지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꽃과 풀엔 관심도 없던 내가 강박적으로 식물을 곁에 두는 것도 어쩌면 자연 그 자체에 대한 결핍 때문일지도.


이런 생각에까지 이르면 항상 느끼지만 나는 이 작가가 꼭 자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친근한 점쟁이 같다. 누구보다 나에 대해 더 많은 걸 알려주는 좋은 스승이기도 하고. 덕분에 생소한 주제임에도 언제나처럼 즐겁게 읽었다. 전혀 다른 주제를 가지고 똑같은 결의 이야기를 풀어낼 줄 아는 이 사람이 부럽고 고맙고 이제는 좀 무서울 지경. 그리고 다음 책이 또 기다려진다.





"설계를 한다는 것은 우리가 이미 안다고 믿었던 것을 씻어내고, 끈질기게 우리의 조건반사 뒤에 감추어진 기제를 쪼개 보고, 불을 끄거나 수도를 트는 것과 같은 일상적인 행동의 신비와 아연할 정도의 복잡성을 인정하는 것이다."


설계를 업으로 삼은 사람도 아니건만 고마울 정도로 좋았던 한 줄. 알랭 드 보통을 좋아하는 건 다 이런 문장들 때문인 것 같다. 책에서 작가는 뛰어난 건축물을 언급하며 '우리는 천재가 단순해 보이게 만든 복잡함에서 기쁨을 느낀다'라고 했는데, 알랭 드 보통의 글이 내게 주는 느낌이 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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