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화 May 02. 2019

왜 글을 쓰냐고 물으신다면,

말할 수 없는 것, 그래서 글로 써야만 하는 것 



어릴 때부터 글은 내게 가장 익숙하고도 친밀한 표현 수단이었다. 초등학생 땐 숙제로 받은 일기보다도 시를 자주 썼다. 시가 뭔지도 잘 모르면서 노트 한 권이 꽉 차도록 내내 썼고 이곳저곳에서 열리는 백일장에도 꼬박꼬박 나갔다. 시적인 감성에 푹 빠져있었다기보다는 그저 주변의 칭찬이 나를 그렇게 이끌었다. 부모님과 선생님이 번갈아가며 칭찬해주고 가끔은 학교에서 상도 주고 하는데, 나처럼 인정 욕구가 강한 아이는 속수무책이었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아빠는 원래 종종 시를 쓰던, 한때는 시인도 꿈꿨었던, 스스로 만든 필명도 있던 사람이었다. 그러니 어린 딸이 말도 안 되는 시 한 줄을 써놓더라도 그게 얼마나 좋았을까. 시를 써서 모아 오면 직접 시집을 내주겠노라 했던 것도 아빠였다. 이루지 못한 꿈을 소극적으로나마 딸에게 투영했던 것 같은데, 물론 이거야 지금 와서야 느끼는 거고 그때 난 그냥 내가 타고난 시적 감각이 있는 줄로만 알았다. 크면 시인이 될 거라고, 시인은 배고픈 직업이라지만 나만큼은 시를 써서 성공할 수 있을 거라 믿었었으니까. 그 열정으로 중학교 때는 문예창작 영재교육원(세상에 영재라니!)까지 다니며 시 창작을 배웠으니 말 다했다.

하여간 그렇게 시작된 것이 어느새 장르를 넘나들었다. 매일같이 쓰는 일기는 종종 수필이 되었고 가끔은 맥락 없는 단편소설이 튀어나왔다. 무슨 글이든 꾸준히 써온 것이 입시를 위해 논술 공부를 할 때는 꽤 도움이 되기도 했고. 친구들의 생일 때는 항상 몇 시간씩 공들여 긴 편지를 써주었다. 물론 사랑하는 친구를 위한 정성 어린 선물이기도 했지만 그 과정 자체를 내가 즐기지 못했다면 할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그러다가 한 번은 이런 얘기를 들었다. 평소의 너와 편지 속의 너는 꼭 다른 사람 같다고. 좋아한다 사랑한다 하는 표현을 너에게 직접 들은 적은 없고 꼭 네가 쓴 편지 속에서만 마주하게 되는 것 같다고. 그 말을 듣고서야 내가 스스로도 알아차리지 못할 만큼 깊숙이, 말보다 글을 더 진실되게 마주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부끄러워서, 민망해서, 구구절절 이유야 많았지만 하여간 사람의 눈을 보고 직접적인 표현은 하나도 못 꺼내놓으면서, 백지를 받아 들면 조금도 숨김없이 진심을 꺼내놓는 사람.

돌이켜보면 그 어린 시절 아무것도 모르고 시를 쓸 때부터 그래 왔다. 무엇이 먼저였는지 모르겠지만 어릴 적에 나는 유난히 애어른 소리를 자주 들었다. 어른들은 나더러 침착하다 했고, 울지도 않는 것이 기특하다 했고, 어쩜 저렇게 어른스럽냐며 엄마를 추켜세웠다. 어른스럽다는 것이 곧 ‘감정적이지 않음’의 상태를 의미한다는 걸 나는 어렵지 않게 깨달았고, 그렇게 자랐다. 좀 더 감정적인 엄마보다는 항상 냉철해 보이는 아빠를 닮고 싶었고, 제 감정 하나 컨트롤 못 하는 사람들을 보면 혀를 차기도 했다. 그래서 내 속도 그랬느냐 하면 그렇지는 않았다. 씩씩하게 내 방까지 들어와서는 그제서야 펑펑 울며 감정적인 글을 한도 끝도 없이 적어내곤 했다. 그냥 그런 건 혼자서만 해야 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남들에게 보여주면 전부 약점이 되는 것이고, 아무래도 그렇게 바보처럼 보이고 싶진 않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모든 게 글로 흘러갔다. 


내가 써온 글을 모아놓은 공책과 파일을 뒤적여보면 10여 년 간의 패턴이 똑같다. 가장 힘들었을 때, 우울했을 때, 슬펐을 때. 감정이 아래로 아래로 가라앉을 때마다 나는 글을 썼다. 시고 소설이고 장르는 가리지 않았지만 그 감정선은 내내 비슷하다. 즐거운 이야기는 누구와도 나눌 수 있으니 굳이 글로 쓸 필요도 없었다. 누구에게 털어놓아야 할지 모르겠는 감정들, 이런 건 혼자 삭이는 거라고 배웠던 일들, 다른 사람과 눈을 마주하고는 차마 꺼낼 수 없는 이야기들에 대해 나는 썼다. 그래서 글은 꾸준하지 않고 띄엄띄엄, 그러나 늘 어떤 감정적인 사건이 있을 때마다 폭발했다. 감정의 분출구. 유일하게 내 속을 끝까지 들어내어 쏟아부을 수 있는. 빈 화면에 깜빡이는 커서나 티 없이 깨끗한 백지를 앞에 놓고서야 나는 비로소 나 스스로에게 솔직해질 수 있었다. 


그게 올바른 방법인지는 여전히 모른다. 그러나 어쨌든 나는 글을 쓰는 법을 알았기에 그 감정들을 혼자 잘 갈무리하여 차분히 내려놓을 수 있었다. 그 시작이 무엇 때문이었든 아빠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요즘 조금씩 내 '진짜' 감정을 '진짜' 사람들에게 흘리는 일을 연습하고 있다. 꽁꽁 쌓아뒀다가 몰래 글로 써내리기보단 한 마디라도 진심을, 누군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여전히 주변 사람들에겐 진짜 속 얘기를 잘 털어놓지 않는 침착하고 이성적인 친구인 모양이지만, 일단은. 결국 나를 여태껏 지탱해온 건 아무렇지 않은 척 남들 앞에서 웃던 얼굴이 아니라, 아무에게도 못할 말을 끄적였던 그 시간들이라고. 그렇게 글을 친구로 두고 있는 건 감사한 일이지만 실은 내 다른 친구들에게도 하지 못할 말 같은 건 없다고. 


고맙게도 그런 이야기까지 진지하게 들어주고, 이해해주고, 때로 새로운 감정을 불어넣어주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다. 혼자 쓰는 글이 아무리 편해도 백지가 내게 주지 못하는 것들도, 있다.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언젠간 그 균형을 온전히 맞출 수 있길. 바닥까지 가라앉은 감정도 담담히 말로 털어놓을 수 있길. 대신 행복한 일에 대해 몇 줄이고 기쁘게 써 내려갈 수 있길. ‘난 화나도 그리고, 슬퍼도 그리고, 행복해도 그린다’던 해티 스튜어트의 말을 조금 바꾸어 본다. 


난 화나도 쓰고, 슬퍼도 쓰고, 그리고 행복해도 쓸 거라고.

매거진의 이전글 쓰면 글쓴이가 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