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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화 May 19. 2019

봄, 보아야만 하는

비록 이번 봄도 매우 짧았지만요 


모르는 새 날씨가 풀렸다. 강아지와 내내 햇볕 속을 걷다가 문득 알아챘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추웠는데, 장갑을 끼고도 손이 시려서 리드 줄 잡은 손을 왼손 오른손 바꿔가며 땡땡 언 얼굴로 산책을 했었는데. 언제 봄이 왔는지, 어쩐지 그 순간을 놓쳐버린 기분이 들어 따뜻한 빛 아래를 오래오래 걸었다. (2019.05.06) 





돌이켜보니 계절 그 자체를 온전히 느끼는 시간이 많이 줄었다. 어릴 때보다 밖에서 보내는 시간이 적어졌으니 필연적인 일일 수도 있지만 그 탓으로만 돌리기엔 조금 열없다. 더 더워진 여름이라든가 더 추워진 겨울이라든가 미세먼지라든가 -특히 미세먼지는 정말이지-, 원망할 대상은 밖에도 많지만 그보다는 마음먹기에 달린 일인지도 모른다. 밖에 나가는 일이 있어도 느릿느릿 날씨를 즐기기보단 목적지를 향해 바삐 걷는 일이 많아졌고, 변화무쌍한 계절은 감싸 안을 대상이라기보단 번거로운 일로만 치부하게 되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즐길 수밖에 없는 계절이 있다면 단연 봄이다. 

얇은 티셔츠에 가벼운 외투 하나 정도가 딱 어울리는 날씨, 햇빛 아래는 온기로 가득하고 차지 않은 바람이 살살 불어오는 산책길. 새순이 잔뜩 돋아나서 회색빛이던 도시가 편안한 색감으로 변하기까지 하니, 때에 따라 다른 꽃이 피어서 그 길을 더 밝혀주곤 한다는 건 말할 것도 없다. '봄'이라는 단어의 어원에도 여러 학설이 있으나 불의 옛말 '블'과 '옴'이 합쳐져 '따뜻한 불의 온기가 다가온다'는 뜻이라는 것이나, '보다'의 명사형 '봄'에서 비롯되었다는 말 모두 그 뜻을 온전히 담아내고 있는 것 같다. 얼었던 것들이 전부 녹아 온기가 다가오는 것도 좋지만 말 그대로 '볼 수 있는 것', 또는 '보아야만 하는 것'들이 늘어나는 것도 즐겁다. 그 어느 때보다도 길가에 색이 가득한 계절. 계획 없이 들렸던 봄꽃축제는 꽃보다 사람이 더 많아 지나치게 북새통이었지만, 강을 따라 연한 벚꽃이 가득한 풍경이 또 얼마나 좋으면 그리도 많은 사람이 모였을까 싶기도 했다. 세상이 아무리 좋아졌대도 봄에만 볼 수 있는, 채 1-2주면 만개했다가 사라지는 풍경이라 더더욱.



이 좋은 봄이 점점 짧아지고 있다는 얘기가 많다.말이 무성한 지구온난화 때문인지 몰라도 뜨거운 여름은 점점 길어지기만 하고, 겨울은 점점 추워지는 것 같고, 완연한 봄은 점점 짧게만 느껴진다. 안 그래도 짧은 것을 미세먼지다 황사다 해서 반절 정도는 버리는 셈 치게 되니 더욱 아쉽다. 혹은 너무 아끼는 계절이라 더더욱 그렇게 느끼는 것일지도 모르지. 기분 좋은 시간은 원래 빨리도 흘러가버리곤 한다. 시간에 박차를 가하는 감정이 따로 있듯 시계를 더 빨리 돌려버리는 계절도 얼마든지 따로 있을 수 있는 법. 이런 아쉬움이 남아 매년 그렇게 간절히 봄을 기다리게 되는 것 같기도 하다. 


이 글의 첫 문단을 써놓고 고작 10여 일이 지났을 뿐인데 벌써 한낮의 햇빛이 무섭다. 여느 때처럼 짧았던 올해의 봄도 막을 내리고 또다시 매서운 여름이 찾아올 모양이다. 금방 다시 찾아올 봄을 기다리며, 그간의 계절이 너무 덥거나 춥더라도 한 발짝씩은 더 느긋하게 내디뎌 변화를 온전히 느껴볼 계획이다. 

뭐, 봄만큼 아껴줄 수는 없겠다마는. 






봄의 산책 

+) 길지 않은 시간이나마 각 계절을 온전히 느끼게 되는 건 글쎄, 8할은 우리 강아지 덕분이다. 세 발짝에 한 번이면 킁킁대고 냄새를 맡느라 동네 한 바퀴 도는데 한 시간이 꼬박 걸리곤 해서, 덕분에 나는 여름도 겨울도 온전히 서서 받아내는 시간이 길다. 특히 봄에는 이리저리 보아야만 하는 것들이 많아 더더욱 지루할 틈이 없고. 정신없는 일상에 이런 느릿느릿한 걸음을 마련해줘서 고마울 따름. 앞으로도 같이 데리고 다녀줘,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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