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녜 May 19. 2019

늦봄의 끝에서

바야흐로 봄, 그리고 드디어 여름

바야흐로 봄.

뭔가 ‘바야흐로’라는 거창한 추임새는 봄이라는 계절에 잘 어울린다. 겨우내 움츠렸던 몸을 이제야 기어코 펴내는 계절. 잔가지만 가득이었던 메마른 숲이 언제 그랬냐는 듯 녹음으로 가득해지고, 도심의 풍경마저 한결 산뜻해지고 다채로워진다.

나는 추운 게 싫다. 예전엔 추우면 더 입으면 되지, 벗는 데는 한계가 있지 않냐며 여름보다 겨울이 좋다고 얘기하기도 했었는데, 이제는 여름과 겨울 중에 고르라면 단연 여름이다. 춥고 해가 짧은 겨울에는 에너지 레벨이 눈에 띄게 줄어든다.

그래서 겨우내 여름을 기다렸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사계절이 있는 나라. 겨울에서 여름이 되려면 짧지만 ‘봄’이라는 계절을 거쳐가야 한다.



봄. 봄이라는 계절의 범위는 날짜로 잡자면 어디부터일까. 3월부터 5월이라고들 하지만 최근 날씨로 보자면 3월 말 - 5월 초 정도이지 않을까.

하지만 이 짧은 기간 동안 나무들이 보여주는 변화는 놀랍다. 남쪽 동네에서 동백과 유채꽃이 폈다는 소식이 시작되면 다들 벚꽃 개화시기를 찾아본다. 이어서 동네 여기저기에 개나리가 노랗게 피어오르고, 벚꽃도 맺히기 시작한다. 시끌벅적한 벚꽃축제가 지나면 철쭉이 그 모습을 뽐낸다. 아파트 단지에도, 서울 차도 주변에도 옅고 진한 분홍색의 철쭉들이 가득해진다.


물론 민들레도 잔뜩!



사월 초, 우리 회사는 이사를 했다. 그리고 운 좋게도 꽤 많은 날 아침 출근 때는 아빠와 동행하고 있다.
고속도로를 타고 가다가, 구룡터널로 빠져 올라가서 회사로 향하는 길. 사월 초, 나뭇잎이 조금씩 올라오니 아빠는 나무 끝에 초록빛 맺힌 것좀 보라며 캬-소리를 내뱉었다. 처음에는 그저 어-하고 대충 대답할 뿐, 생기랄 건 눈을 비벼가며 찾아야 했다. 아빠도 나이가 드시니 자연이 더 좋은가 보다, 조금만 느껴져도 기분이 다른가 보다, 싶었다. 


그런데 며칠 만에 나무가 이파리로 가득해졌다. 꽃잎이 서서히 맺히더니 흩날리기 시작했다. 개나리와 철쭉이 길가를 노란색 분홍색으로 물들였다. 그리고 나도 아빠의 캬-소리에 물들어갔다. 그래 봄이란 이런 계절이었지, 겨울과 여름 사이의 짧은 계절이지만서도 얇아진 외투에 가벼운 어깨, 루프탑에서의 와인과 샥슈카, 푸드트럭 냄새가 솔솔 나는 계절. 길어진 해에 일광욕도 즐기다 따뜻해진 정수리를 어루만져보며 돌아오는 그런 계절.


여름을 기다리는 짧은 계절이지만, 가끔은 춥기도, 스산하기도, 미세먼지가 심해 숨이 막히기도 한 올봄이었지만, 아빠와 함께하는 아침 출근 드라이브로, 색이 가득하고 변화무쌍한 계절로 기억하게 될 것 같다.

그리고 이제는 드디어, 여름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봄, 보아야만 하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