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유행 변천사

by 예미니

단체 생활의 지지기반은 규율과 통제이다. 약속과 규칙 준수는 구성원의 당연한 의무이고, 지키지 않았을 때 돌아올 결과는 각자가 감당해야 한다. 용기인지 부적응인지 모를 그 묘한 경계에서 누군가는 과감하게 일탈을 시도하지만, 순응하는 다수는 아쉬운 대로 그 조직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끊임없이 자신들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싶어 한다. 학교도 생활규정이란 것이 있고 학생들은 지켜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러나 이 안에서도 누군가는 과감한 일탈을 시도하며 반항의 길을 걷고, 그런대로 순응 파인 다수는 생활지도와 학생의 개성 존중이라는 아슬아슬한 줄타기 속에서 자신들의 고유한 문화와 패션을 탄생시킨다. 유행은 삽시간에 퍼지고 그것이 집단의 문화로 자리 잡으면 더 이상의 통제는 불가능하다. 머리 길이 귀밑 3센티를 외치던 석기시대 이야기는 생략하겠다. 추억의 깻잎 머리와 강북멋쟁이를 탄생시킨 스키니 교복 바지, 한치의 틈도 보이지 않게 초미니로 수선한 교복 치마 패션을 기억하는가. 한때는 여드름이 청춘의 상징으로 불리던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도 있었지만 지금은 화장 안 한 여학생이 기껏해야 한 반에 한 둘이다. 10여 년 전부터 폭발적으로 증가한 로드샵 덕분에 화장품 파우치는 여학생들의 필수품이 되었다. 이제 그들은 지각한 것보다 눈썹을 못 그린 것이 부끄러워 발을 동동 구르며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교실에 들어온다. 종례를 앞두고는 저마다 수준급의 메이크업 실력을 뽐내는 변신의 귀재가 되었다. 몇 해 전에는 고가의 북쪽 얼굴 패딩이 대유행을 하더니 이제는 겨울만 되면 모두가 검은색 롱 패팅을 입고 북극곰 코스프레를 한다.


사실 학교 문화는 자생적이라기보다 당시 사회상의 모방이다. 광고와 마케팅이 만들어내는 대중문화에 누구보다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 10대이고 이들의 집단성 때문에 파급력이 큰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근래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한 배달업계가 우리 학생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다. 남학생들에게 청춘의 로망과도 같은 오토바이. 배달 아르바이트야말로 좋아하는 오토바이도 타고 돈도 벌 수 있는데 이를 마다할 학생이 누가 있는가. 최근 팔다리가 까져서, 다리가 부러져서 병원에 입원하는 학생들이 심심치 않게 나온다. 아이들은 길 가다가 넘어져서, 차에 치여서 다친 것이지 오토바이 사고는 아니라고 극구 부정한다. 과거에도 가끔 오토바이를 타고 등교해서 학교 근처 어딘가에 숨겨두고 오는 학생을 본 적은 있지만 요즘처럼 오토바이를 탈 수 있는 기회를 사회가 열어준 적은 없지 않나 싶다. 면허증도 있는데 뭐가 문제냐고 항변할 수 있겠지만 적어도 내가 운전하면서 마주했던 배달 서비스 오토바이들은 신호를 무시하고 주행하는 경우가 많았다. 내 눈에만 유독 많이 띈 것이라면 다행이겠지만, 학생이 분명한데 맨발에 삼선 슬리퍼를 신고 한 손으로는 핸드폰을 터치하면서 차 옆을 씽하고 지나갈 때면 내 심장마저 쪼그라드는 기분이다.


최근 학교에서 떠오르는 가장 최신의 유행은 문신이다. 타투라고 하면 뭔가 대중적인 이미지가 더해 보일지는 모르겠다. 가장 최신의 아이템인 만큼 아직까지 문신에 대한 규제는 학교 생활 규정에 반영되지 않았다. 1,2년 전에는 발목이나 팔뚝에 새기는 레터링 정도였던 것이 최근에는 양 팔, 어깨, 허벅지 등으로 부위가 넓어지고 있다. 하복을 입는 여름에는 문신이 다 드러나는데 토시도 하는 둥 마는 둥 선생님 눈을 피하면 그만이다. 학교생활규정의 관점에서 볼 때 솔직히 문신을 화장이나 의상과 같은 패션의 영역으로 다루어야 할지, 물리적인 신체의 일부로 봐야 할지 그 경계조차 모호한 게 사실이다. 아이들 사이에서 문신은 일종의 과시용이다. 꽤 고가인 시술비 때문에 학생들 사이에서는 재력의 상징이자, 시술의 고통을 감내하는 스트롱맨의 이미지까지 덤으로 얻게 되니 혐오가 아닌 부러움의 대상이 된다. 용기를 내어 일탈을 시도한 선구자들은 유튜브나 SNS에 노출된 셀럽들의 화려한 문신에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여기서 표현의 자유를 이야기하자면 이것은 끝없는 논쟁거리이다. 솔직히 나는 너무도 혼란스럽다. 흡연이나 술처럼 문신에도 나이 제한을 두어야 하는 것인지, 화장도 다 하는데 문신은 왜 안되냐고 한다면 또 어떤 기준과 잣대를 만들어야 하는지 머리가 어지럽다. 누군가에겐 아름다워 보이는 것이 꼰대 교사인 나에게는 지도 대상으로 보인다. 짧지 않은 교직 인생에서 꽤 많은 학생 문화 변천사를 거쳤다고 생각했는데 아직까지 문신은 받아들이기가 힘들다. 이것이 또 다른 통제 밖의 문화로 자리 잡는다면 그땐 나도 어쩔 수 없이 인정하게 될까. 내가 보수적이고 시대의 흐름을 보지 못하는 거라고 결론 내리기엔 뭔가 찜찜하다. 앞으로 또 어떤 유행의 파도가 기다리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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